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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등록 2018.08.05 06: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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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황정민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황정민(48)의 고백이다.

영화 '공작'은 그의 연기 인생에 큰 도전이다. 액션신 없이 등장인물들 간의 치열한 논쟁, 심리전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태의 한국형 첩보물이다. 모든 신이 관객들에게 액션처럼 보여졌으면 좋겠다는 것이 감독의 주문이었다. 우리끼리 '구강 액션'이라고 표현했다. 말을 액션으로 느껴지게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처음엔 배우들이 힘들어서 못 이겨냈다. 서로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다보니 똘똘 뭉치게 됐다. 액션 합을 맞추 듯이 여러 번 체크하고 연기하다보니 나아졌다."

또 "기본적으로 대사 양이 너무 많아 셰익스피어 연극이 생각날 정도였다"며 "연극 대본을 보듯이 시나리오를 봤다. 처음 연기했던 시절을 떠올렸다"고 돌아봤다.
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 '군도: 민란의 시대'(2014) 등을 연출한 윤종빈(39)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 5월19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된 작품이다.

8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국가안전기획부 소속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간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나만 알고 있는 것을 못 참는다. 광대의 기질인 것 같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헐~'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관객들도 영화를 보면 나와 똑같은 반응일 것 같다. 1990년대를 살아온 사람인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간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창피했다. 사람들에게 꼭 알려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황정민은 안기부 공작원 '박석영'을 연기했다. 북핵 실상 파악을 위해 북의 고위층으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받고, 육군 정보사 소령인 자신의 신분까지 세탁하고 대북 사업가로 완벽하게 위장하는 인물이다.

"첩보원인데 평범한 사업가로 보여야 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에너지가 살아 숨쉬어야만 했다.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게 힘들었다."
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박석영은 실존 인물 박채서씨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박씨는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위로 기소돼 6년간 옥살이를 하다 2016년 출소했다.

"대본을 보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의 기운을 느끼고 에너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만기 출소한 뒤인 지난해 5월에 박채서 선생을 직접 뵈었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묵묵히 견딘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황정민은 '흑금성'과 '박석영'을 오가며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1인2역인 셈이었다. 만약 허구였다면 특수 분장 등의 방법으로 다르게 표현했겠지만 '공작'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결국 사투리로 인물을 각각 다르게 그려냈다. 흑금성일 때는 표준어에 딱딱한 말투였지만 사업가로 보여야 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공작' 촬영을 끝낸 뒤 지난 2월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 '리처드 3세'에 출연했다. 10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라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치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연극을 한 것은 '공작' 때문이었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기존 방식대로 작품을 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은 아주 정확한 발음이어야 하고 장단음까지 다 체크해야 한다. 더블 캐스팅이 아닌만큼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겠다는 마음이었다. 많은 관객들이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내고 좋아해줘서 감사했다. 역시 어떤 일을 하는데 진심이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온다. 하하."
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황정민은 1995년 극단 학전에서 제작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했다 1998년 영화 '쉬리'에서 단역을 맡아 스크린에 진출한 이후 누아르·코미디·미스터리·시대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바람난 가족'(2003) '마지막 늑대'(2004) '너는 내 운명'(2005)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7) '그림자살인'(2009)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09) '부당거래'(2010) '신세계'(2012) '남자가 사랑할 때'(2014) '히말라야'(2015) '검사외전'(2015) '아수라'(2016) 등에서 주연을 맡았다.

작품 선택 기준은 극본이다. "보통 친구들에게 책을 선물하기 어렵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고민하는데 책장을 넘기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있다. 관객들에게 책을 선물한다는 느낌으로 작품을 택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야기다. 관객들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영화 '국제시장'(2014)과 '베테랑'(2015)으로 '쌍천만 배우' 타이틀까지 따냈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성적 톱5에 이 두 편의 작품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흥행배우로 발돋움했다.

차기작은 '국제시장'을 함께 한 윤제균(49) 감독의 '귀환'이다. "SF 영화를 처음 해본다. 한국 사람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SF라는 것이 흥미로웠지만 윤 감독을 너무 좋아한다. 착한 심성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현장에서의 작업 방식을 존경한다."

감독들의 구애를 끊임없이 받을 수 있는 비결로는 "같은 편이 되어줘서 인 것 같다"고 답했다. "감독을 믿고 따라서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이 사람한테는 뭘 맡겨도 내 편이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방패막이 되어줘야 한다"며 웃어보였다.

"모든 작품이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러니 허투루할 수 없다. 개봉하고 나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없다. 열심히 안 한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황정민 "구강액션, 셰익스피어 연극같았다"···北잠입 흑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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