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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세계 MVP 박신자, 얼마나 대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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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0-08-15 09:33:55
1967년 세계선수권대회 MVP·1999년 명예의 전당 헌액
박신자컵 서머리그, 유망주 발굴 위해 2015년 출범…16일 청주서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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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영태 기자 =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여자프로농구(WKBL) 제7대 신선우 총재 취임식에서 박신자 여자농구 원로가 농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15.07.03.since1999@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오는 16일부터 21일까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2020 우리은행 박신자컵 서머리그'를 개최한다.

2015년 출범해 올해로 6회째를 맞는다. 유망주 발굴과 비시즌 국내 농구 교류 활성화를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대회 이름의 주인공 박신자는 누구일까. 요즘 팬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다.

면면을 보면 100년이 넘는 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라는데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1941년생인 박신자(79)씨는 1960년대 여자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타플레이어다. 남자에 신동파(76)가 있다면 여자는 박신자였다.

포지션은 센터, 신장은 176㎝였다. 대표팀에선 최장신이었으나 국제무대에선 달랐다. 190㎝에 육박하거나 넘는 장신 상대들이 즐비했다.

이를 뚫고 한국을 세계선수권대회(현 월드컵) 시상대까지 이끌었다.

박씨는 1964년 페루에서 열린 제4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경기당 20.6점을 올리며 평균 득점 1위를 차지하며 대회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성적은 8위.

이 대회 이후 은퇴를 고민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현역 생활을 이어갔고, 1967년 체코에서 열린 제5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준우승에 올렸다. 구소련이 우승했다.

그러나 대회 최우수선수(MVP)상은 박씨의 몫이었다. 준우승팀 MVP는 당시에도 이례적이었다. 이 대회에서 평균 19.2점을 기록했다.

국제농구연맹(FIBA)은 "한국이 세계선수권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시상대에 오른 아시아 국가가 되면서 역사의 한 조각을 장식했다"고 기억했다.

박씨는 또 1999년 설립된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초대 헌액자로 이름을 올렸다. 동양인으로는 유일했다. 국제적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에는 대한체육회 선정 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국가대표 슈터로 명성을 떨쳤던 박정은(43) WKBL 경기운영본부장이 박씨의 조카다.

박씨는 출범 당시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에 대해 "어떤 운동선수나 같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대회를 한다는 것은 지금 내 나이에, 내 생애에 보너스"라며 기뻐했다.

한편, 올해 대회에는 WKBL 소속 6개팀과 실업팀인 대구시청, 대학 선발까지 총 8개팀이 출전한다. 부천 하나원큐가 3연패에 도전한다.

연맹은 유망주들의 출전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WKBL 구단에 한해 팀별로 만 30세 이상 선수 3명을 제외하기로 했다. 만 30세 이상 선수가 3명 미만인 구단은 자체적으로 지정해 제외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fgl75@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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