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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대로]교황 특사 목숨 뺏었던 北, 프란치스코 방북 응할까

등록 2021.11.07 09:00:00수정 2021.11.15 09: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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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文대통령 교황 방북 제안…성사 불투명
광복 후 교황청 韓 단독정부 수립 지지
교황특사 주교, 북한군에 압송 중 사망
7·4남북공동성명 후 천주교 반공 철회
개신교 선교사 3명 수년째 北 억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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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9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바티칸 제공) 2021.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정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차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방북을 제안했다.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 선언에 이어 교황 방북까지 제안하며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가능한 모든 시도를 다 해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교황청과 북한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다. 교황청에서 방북 의사를 밝힌 사례가 이미 있었지만 북한은 호응하지 않았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시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방북 의사를 전달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8년 10월 문 대통령을 만나 "북한이 공식적으로 초청하면 북한에 갈 수 있다"고 방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이 교황청 제안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사례는 아직 없다.

사실 북한과 교황청은 사이가 좋을 수 없는 관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은 천주교회를 탄압했다. 천주교회는 교황 비오 12세를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반(反)공산주의를 주창했다. 소련은 천주교회를 미국과 함께 적대 진영으로 여겼다. 북한 정권 역시 서구와 단일한 조직망으로 연결된 천주교를 제1의 정치적 불신분자로 규정하며 탄압했다.

1950년대 한국 가톨릭은 6·25전쟁을 '무신론 폭군에 대한 신앙자유 수호의 십자군 전쟁'으로 규정했다. 게다가 한국 가톨릭계는 휴전회담 개시 후 '통일촉구 궐기대회'를 수차례 열어 북진 통일 완수를 주장하는 등 조직적인 휴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이병수 건국대 교수는 '북한의 종교현실과 종교인식' 논문에서 "십자군 전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의 반공주의는 6·25 전쟁을 정치경제적 체제·이념 대립이 아니라 기독교를 수호하는 종교 전쟁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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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교황 요한바오로 2세

천주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부터 한국과 밀착하는 한편 북한을 적대시했다.

최선혜 가톨릭대 교수의 '한국 전쟁기 천주교회와 공산 정권―초대 주한 교황사절 번 주교(Bishop Byrne)를 중심으로' 논문에 따르면 정부 수립을 위한 한국만의 단독 총선거는 미군정과 유엔, 그리고 교황청 등 천주교회의 긴밀한 교류 속에 이뤄졌다.

당시 교황 비오 12세는 제3차 유엔총회에 한국 대표단을 지원할 것을 여러 교황 대사에게 명하는 등 외교적 지원을 했다. 교황청은 "소련 무신론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한 2년여의 항쟁 끝에 천주교회의 축복과 축하와 더불어 신생 대한민국이 이번 주에 탄생했다"고 평했다.

비오 12세는 또 "북쪽 지역을 러시아가 장악했지만 독립과 자치 정부가 남쪽에 탄생했다"며 한국 정부 수립을 축하했다. 비오 12세는 1949년 4월17일에는 한국을 정식 승인하고 교황 특사인 패트릭 번 주교를 최초의 주한 교황대사로 격상시켰다.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에 주 연설자로 초대된 번 주교는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건전하고 영속적인 민주주의 정부 형태로 세워진 것은 하느님의 섭리 아래 이뤄진 도덕적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번 주교는 북한을 "제1의 적"으로 규정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범세계적으로 악과 투쟁하는 전투에 천주교회는 가장 좋은 동맹", "천주교회는 공산주의와 싸우는 이 나라의 큰 우방" 등 발언을 하며 환영했다.

번 주교를 비롯해 캐롤 몬시뇰 등 미국 출신 천주교 성직자들은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천주교회의 선봉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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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교황 비오 12세. 2021.11.05. (자료=로마 교황청 누리집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북한이 이들을 곱게 볼 리 없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을 일으켰고 7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직자를 체포·살해했다. 북한군은 남하할 때부터 이미 고위 천주교 성직자 사진을 지니고 다니며 색출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번 주교는 모든 외국 사제에게 '서울에서 철수하고 체포되는 것을 피해 남하하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만일 목자가 도망간다면 양들은 쉽게 흩어질 것"이라며 서울 잔류를 택했다.

번 주교는 북한군에 대항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공관의 모든 문을 열어뒀다. 북한군은 7월11일 번 주교와 비서 신부인 부드 신부를 체포했다.

북한군은 약식으로 인민재판을 열어 번 주교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번 주교는 자신은 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교황을 대신해 선교사로서 종교를 전파하러 왔다고 항변했다. 북한군은 "미국인을 죽여라"고 외치며 일축했다.

번 주교 등 외국인 성직자와 수도자를 포함한 민간인 포로들은 곧 북으로 압송됐다. 9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북한군은 포로들을 끌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번 주교와 포로들은 1950년 9월부터 1951년 1월까지 평양, 만포, 중강진에 이르는 160여㎞에 달하는 거리를 끌려갔다. 이는 훗날 '죽음의 행진(Death March, March Till They Die)'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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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번 주교 생전 모습. 2021.11.07. (사진=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여름옷 차림으로 체포된 번 주교는 오랫동안 감기를 앓았다. 죽음의 행진으로 감기가 악화됐고 폐렴으로 번졌다. 고열에 시달리던 번 주교는 결국 1950년 11월25일 62세로 숨을 거뒀다. 번 주교의 사망이 알려지자 교황청을 비롯해 서방의 천주교회와 관료, 언론 등은 북한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후 20년 이상 이어진 천주교와 북한의 악연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반전을 이뤘다.

강력한 반공주의 노선을 걷던 한국 가톨릭은 7·4 남북공동성명을 지지하면서 전쟁보다는 평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가톨릭은 북진통일론을 포기하고 평화통일론을 수용했다.

1988년 이뤄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 이른바 88선언도 북한과의 화해를 선언한 계기였다.

진보 교단은 88선언에서 '분단에 기여한 교회의 죄를 원죄'라고 고백했다. 이들은 그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죄를 회개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그간 당연시됐던 기독교계의 반공주의가 흔들렸다.

그러자 북한이 태도를 바꿨다.

북한은 1988년 9월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건축함으로써 대외적으로 북한에 기독교회가 있음을 과시했다. 북한 천주교는 1989년 독자적인 조직인 조선카톨릭협회(당시 조선천주교인협회)를 발족시키고 평양에 새로 지어진 장충성당에서 처음으로 예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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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중국서 입북해 종교자료를 가지고 가다 지난해 10월 북한에서 체포된 한국인 선교사 김정욱씨가 27일 오후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을 공개, YTN에서 보도되고 있다. 2014.02.27. (사진=YTN캡쳐) park7691@newsis.com

이후 한국 가톨릭계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민족화해를 우선시하는 통일 운동이 전개됐다. 1990년대 이후 북한 가톨릭의 공식 기구인 북한선교위원회도 일부 호응했다.

반면 한국 개신교의 경우 보수 교단의 종교화된 반공주의가 진보 교단을 압도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북한에 억류된 한국 국민 6명 중 절반인 3명이 모두 개신교 선교사라는 점도 북한이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짐작하게 한다.

2013년 10월8일 밀입북 혐의로 체포된 김정욱 선교사는 국가전복음모죄와 간첩죄 명목으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 받고 8년째 억류돼있다. 2014년 10월 체포된 김국기 선교사와 같은 해 12월 붙잡힌 최춘길 선교사 역시 무기노동교화형 선고를 받고 억류돼있다.

이병수 교수는 "화해의 가교가 돼야 할 기독교는 증오와 대립을 부추기는 분단신학, 반공신학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예수의 복음과 상관없는 반공주의와 배타주의가 신앙인들의 내면을 규율해 온 결과 교회의 존재 자체가 기독교 선교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분단 이후 수십년째 기독교계와의 앙숙 관계를 해소하지 못한 북한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제안에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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