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네이처에 발표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에 대한 논문의 또다른 의미
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서울=뉴시스] 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사진= 우실하 교수 제공) 2021.11.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2021년11월)에 '알타이어족'으로도 불리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의 기원지가 '서요하 유역 기장 농업 지역'이라는 중요한 연구 논문이 발표됐다. 현재 한국어를 포함해 98개 언어가 속해있다.
이 논문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의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10개국의 학자들이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분야를 종합한 대규모 공동 연구의 결과였다.
연구 결과는 '농경'의 확산을 통해서 언어의 확산이 이뤄졌는데, (1) 트랜스유라시아어족(=알타이어족) 언어의 기원지는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黍] 농업 지역'(=요하문명 지역)이며, (2) 신석기시대에 '원시 한국어-일본어(5500년 전)'와 '원시 몽골어-퉁구스어(5000년 전)'로 1차로 분화되었고, (3) 청동기시대에는 원시 한국어, 원시 일본어, 원시 몽골어, 원시 퉁구스어, 원시 튀르크(=돌궐)어로 2차로 분화되었으며, (4) 이후에 각 지역으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신석기-청동기 시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알타이어족)의 분포. (사진=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제공) 2021.11.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논문에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지로 밝혀진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 바로 '요하문명' 지역이고, 요하문명의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고고학문화인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7000-BC 6500)의 시작이 바로 9000년 전이다. 요하문명의 흥륭와문화 흥륭구(興隆溝)유적에서 발견된 8000년 전의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1460알 중 1400알, 96%)과 조(1460알 중 60알, 4%)'는 2012년에 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세계 중요 농업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논문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언어가 4000년 전을 기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처 들어온 유목-목축민들이 전파했다는 기존의 '유목민 가설'을 비판하면서,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의 기장 농경민'에서 기원하여 확산된다는 '농경민 가설'을 제시한다.
필자는 '서요하 유역'에서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있는 '요하문명(遼河文明)'에 대해서 여러 권의 책을 쓰며 연구해오고 있다. 이 논문은 한국어의 뿌리인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다.
곧, 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1) 9000년 전 최초의 빗살무늬토기, (2) 9000-8000년 전 최초의 재배종 기장-조, (3) 8000년 전 최초의 옥결(玉玦·옥 귀고리), (4) 8000년 전 최초의 적석묘, (5) 7000년 전 최초의 복골(卜骨·점을 친 뼈), (6) 5500년 전 최초의 계단식 적석총, (7) 4300년 전 최초의 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8) 3000년 전 최초의 비파형동검 등이 발견되고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다(아래 표 참조).
이 가운데 (1), (4), (6), (7), (8)은 요하문명과 한반도 지역에서는 모두 발견되지만 황하문명 중심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다.
[서울=뉴시스] 요하문명의 중요 신석기-청동기 시대에 발굴된 최초의 것들. (사진=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제공) 2021.11.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문명은 전형적인 북방문화 계통으로 황하문명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위 논문에서도 황하문명 지역은 '중국-티베트어족' 언어의 기원지고, 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이어족 언어의 기원지라고 본다. 곧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이 이질적이고 독자적인 문명권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요하문명 지역을 화하족의 조상인 황제족(黃帝族)이 일군 문명이자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삼고, 동북아시아의 상고-고대사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후대에 출현하는 모든 소수민족들은 모두 황제족의 후손이고, 그 황제족의 후손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역사는 이미 중국사의 일부가 된지 오래다.
한국인들은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만주 일대를 '고조선의 문화권/세력권/세력 범위' 등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그 한 가운데서 수 천년 동안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요하문명이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서울=뉴시스] 요하문명 지역 주요 신석기-청동기 시대 고고학문화 분포. (사진=우실하 한국항공대 인문자연학부 교수 제공) 2021.11.1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둘째, 요하문명 지역은 언어적으로도 황화문명 지역과는 별개의 독자적 문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이제는 요하문명에 대해서 모르고는 동북아시아의 언어·역사·문화·철학·종교를 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필자는 여러 책과 논문에서 요하문명이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논의한 바 있다. 요하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동이족의 선조들이었고, 예맥족의 선조들이다.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요하문명과 연결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시각에서 요하문명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논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각 분야에서 요하문명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야 한다.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