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경동시장 노점 덮친 철거 칼바람…"당장 어떻게 사나요"

등록 2023.03.21 07:11:4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16일 동대문구 노점상 6곳 철거

아픈 가족 부양하는 상인들 많아

노점상이 긍정적인 효과도 있어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있던 노점상이 철거된 이들이 20일 오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03.20. fe@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있던 노점상이 철거된 이들이 20일 오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3.03.2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지난 17일 새벽 2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사거리에 있는 노점상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자리에서 수십년간 밤과 대추, 야채, 찐빵, 생선 등을 팔던 노점상 6곳이 하룻밤 새 터전을 잃은 것이다. 당황한 상인들이 날이 밝자 관할 구청을 찾아갔지만, 허가받지 않은 노점에 대해 법과 원칙에 맞는 절차를 진행했을 뿐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지난 19일 오후 직접 둘러본 경동시장 사거리에는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노점상 대신 갈색 화단 30여개가 조성돼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노점을 운영했던 한 상인은 단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사람이 오가는 교차로만 응시하고 있었다.

한 순간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이들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취재진이 만난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었고,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한병현(60)씨는 이 자리에서 10년 넘게 생선 노점을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암투병 중인 부친과 심혈관 질환을 가진 모친을 부양하고 있다. 최근에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노점 수입이 줄어 일용직 노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제는 노점 문을 영영 닫아야 할 처지다.

한씨는 "꼴랑 하루에 5~8만원 벌고, 병원비로 3~400만원 나간다. 노점을 운영하면서 그나마 버텼는데, 이제는 버틸 재간이 없다"며 "몰아도 웬만큼 몰아야지, 이렇게 끝까지 몰리면 방법이 없다. 너무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소희(73)씨는 그간 노점에서 밤·땅콩 등 견과류를 팔았다. 천식을 가진 남편을 돌보며 가계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그 역시 노점에 불어 닥친 칼바람에 생계 수단을 잃어버렸다.

김씨는 "당장이 너무 막막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가게가 철거돼 당장 굶어 죽을 판이다. 남한테 사기 안 치고 도둑질 안 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먹고 살게 없어졌다"며 "노력해서 벌어 먹고 살겠다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며칠 전 철거 칼바람을 가까스로 피했던 경동시장 인근 다른 노점상들도 조만간 구청의 조치가 있을까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최모(82)씨는 "이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옆에 있는 (경동)시장에서 물건을 떼와다 파는 것밖에 없다"며 "바로 옆에서 노점상들이 없어지고 있어서 이 가게까지 없어질까 겁이 난다"고 했다. 최씨는 40년간 야채 노점에서 대파와 냉이 등을 팔았다.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있는 노점상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03.20. fe@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있는 노점상 앞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2023.03.20. [email protected]


노점상은 면세 대상이 되는 데다 설치 유지비가 거의 들지 않다 보니 기존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한 이들의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서울 시내 지자체들은 신규 사업자를 받지 않는 등 노점을 점차 줄여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노점은 2018년 6669개, 2019년 6296개, 2020년 6079개, 2021년 5762개, 지난해 5443개로 감소했다.

무질서한 노점을 정비해 시민의 안전한 보행권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2019년 시행된 '거리가게 허가제'를 법과 원칙대로 다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노점상은 사업자 등록이 안 된 탓에 각종 세법에서 '과세 사각지대'에 있는 데다 음식 노점은 대부분 식품위생법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비싼 임대료를 부담하고 경쟁하는 상인들의 반발도 적지 않다.

이에 서울 종로구와 중구는 노점 실명제를, 서대문구는 공공임대상가에 노점을 이전하는 정책을 시행 중이다. 경동시장이 위치한 동대문구는 특별사법경찰 제도를 도입해 불법 노점에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철거된 노점상 자리에 화분이 놓여있다. 2023.03.20. fe@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철휘 기자 =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앞에 철거된 노점상 자리에 화분이 놓여있다. 2023.03.20. [email protected]


다만 노점의 긍정적인 측면을 주목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전날 경동시장 앞에서 만난 한 시민은 "물가도 비싼데 노점 물건 상태가 괜찮으면 여기서 사는 편이다"며 "(물건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싸게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시장 내 유명 카페를 찾았다는 다른 시민은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어서 시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며 "시장 분위기랑 레트로한 카페가 잘 어우러져서 여기를 찾게 됐다"고 전했다.

실제 노점상은 문화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실제 유튜브 채널에 명동 거리 음식(myeongdong street food)을 검색하면 명동 노점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남긴 후기 영상 수십 개가 뜬다. 이 중 일부는 조회 수가 900만 회에 달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