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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보컬 조정희, 그윽한 백화제방

등록 2023.12.03 12:45:56수정 2023.12.04 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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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4집 '각자의 꽃' 호평

[서울=뉴시스] 재즈보컬 조정희.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재즈보컬 조정희.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감성 재즈보컬 조정희가 최근 발매한 정규 4집 '각자의 꽃'은 인위적으로 세공된 티가 전혀 없다.

깊은 고민 끝에 남겨진 감정의 정수가 녹아든 노래는 조정희 보컬의 그윽한 바디감과 맞물려 확신에 찼다. 기술적으로 잘 부른다는 것과는 다른 장점이다. 물론 조정희 보컬의 기교는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나지만, 이번엔 정서가 먼저 청자에게 뭉근히 젖어든다.

'감정의 최단거리'로 나아가는 '사랑 노래'가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선 '각자의 꽃'을 들으면 된다. 모두 각자 인생을 피워내지만, 결국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걸 조정희의 노래와 가사는 보여준다. 백화제방(百花齊放)이란 이런 것이다. 멜론 트랙제로 전문 위원인 박정용 벨로주 대표는 "누구보다 진한 목소리가 창조적인 편곡과 연주 안에 가득 차 터질 것 같다"고 들었다. 다음은 최근 대학로에서 조정희를 만나 나눈 일문일답.

-국내에서 재즈, 특히 재즈보컬 앨범은 내기 힘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정희 씨가 앨범을 내주신 것만으로도 국내 음악 다양성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데요. 무엇을 모티브로 삼은 음반입니까?

"작업을 시작한 때는 올해 1월 중순, 구상은 작년 가을쯤이었어요. 음반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한 작업을 하다가 노래 인생을 정리해봤는데요, 10여년 넘게 노래를 하면서 2016년께 목이 되게 아팠어요. 소리를 낼 때마다 목이 너무 아파 노래를 못할 정도였죠. 그 때 '음악을 할 수 없는 삶'에 대해 처음 생각을 해봤어요. 그럼 '어떤 것을 해야 행복할까' 고민을 한 거죠. 노래 없는 삶에 대해선 아무런 대비가 없었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저와 무대 밑 저 사이의 괴리감에 대해서요. 사람들 앞에선 너무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돌아섰을 때는 너무 허무해지고… 이런 다양한 모습들을 글로 한번 적어보기 시작했죠."

-글로 적음으로써 생각이 정리된 건가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글이었어요. 진짜 누가 보면 너무 창피할 것 같은데…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거였죠. 글들을 계속 적어가다가 '이걸 가사로 옮겨서 노래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피아니스트 이선지 씨가 곡을 예쁘게 잘 만드시거든요. 선지 씨에게 '제가 요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와주실 수 있느냐'고 부탁드렸죠. 아홉 곡 중 여섯 곡의 멜로디를 선지 씨가 쓰셨고 세 곡은 제가 썼어요. 작사는 제가 전부 다 하고요. 처음엔 되게 심각한 자기 고민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결국은 편하게 말들을 풀어가다 보니까 '사랑 얘기'처럼 변하더라고요. 이제 좀 노래를 가볍게 전해드리고 싶기도 해서 사랑 이야기를 테마로 삼았어요."

-이런 작업 과정들이 결국 치유의 과정이 된 건가요?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알게 된 건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힘든 일들을 잘 이겨내고 있었구나'였어요. 노래 자체가 주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누구한테 들려주기 위한 노래뿐만 아니라 연습실에 앉아서 노래 부르는 것도 저한테 위로가 많이 됐어요. 멜로디가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음반은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가사도 좋았습니다. 영어랑 한국어가 섞여 있는 것도 있고 한국어로만 돼 있는 가사도 있습니다.

"가사 작업은 상황에 맞춰 되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것 같아요. 첫 번째 트랙 '어 타임 포 러브(A time for love)'는 한글 가사도 쓰고 영어 가사도 썼어요. 노래를 직접 불러보면서 영어 가사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영어로 붙였죠. 사실 한글 가사는 조심스러워요. 자칫 잘못하면 너무 촌스러워지거나 너무 속상한 가사가 될 수도 있거든요.

-한국어 가사는 노래 부르기 '어려운 발음'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받침이 있고 되게 센 발음도 많고 하다 보니까 노래하다가 소리가 나가는 길이 턱턱 막히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한국어 가사는 진짜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해요. 기역 발음, 비읍 발음, 치읓 발음이 진짜 힘들거든요. 이 발음들은 목구멍을 계속 열 수 있을 때까지 열고 나중에 닫아야 해요."

-윤정오 씨가 참여한 믹싱 & 마스터링(Mixing & Mastering)도 좋았습니다.
[서울=뉴시스] 재즈보컬 조정희.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재즈보컬 조정희.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3.12.0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제가 원하거나 궁금해하는 부분을 모두 들어주셨어요. 그리고 음악을 같이 만들어주셨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모든 트랙이 끝나고 아우트로처럼 나가는 부분에서 보컬에 갑자기 공간감을 주면서 저 멀리 날려주신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 부분을 '사운드 메이킹' 해주신 건데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즈를 비교적 뒤늦게 시작하셨다고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였어요. 20대 중후반에 관심을 갖고 30세에 시작했죠. 국문과를 나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밴드를 결성하고 그렇게 재즈를 시작한 거죠. 예전에 대중음악을 부를 때는 뭔가 꽉 짜여진 틀에 저를 집어넣는 느낌이었어요. 테크니컬한 면모도 많이 보여줘야 되고 내 색을 좀 지워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되게 힘들었죠. 근데 재즈를 만난 이후부터는 너무 자유로운 거예요. 제 감정대로 멜로디를 패러프레이징해서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고, 코드에 어긋나도 괜찮고. 다 어긋나도 다시 해결하면 되니까 너무 자유로운 거예요. 거기에 완전 매료됐던 것 같아요. 그런 지점들이 저를 긴장시키고 흥분시키고 기쁨을 줬죠."

-그러면 데뷔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재즈 트리오 '아웃포스트'의 데뷔작 '아웃포스트'(2011)에 실린 '소피스트 블루스(Sophist Blues)'를 피처링했어요. 그게 재즈 작업의 시작이었죠. 박근쌀롱 '습관의 발견'(2011) 게스트 보컬로 나섰고 제가 꾸린 밴드 '3월의 토끼' 첫 EP '라라를 위하여'가 2012년에 나왔죠."

-재즈동요 음반도 만드시고 다채로운 작업을 하셨습니다. 올 초에도 재즈동요 음반('재즈동요이야기2_달조각')을 내셨던데 이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재즈동요 음반은 2012년에 처음 나왔는데, 2010년에 시작한 연탄 봉사가 계기가 됐어요. 처음엔 저 혼자서 '맨땅에 헤딩'을 하다가 엄청 고생을 했어요. 다른 뮤지션들이랑 함께 하면서 조직적으로 할 수 있게 됐죠. 그러다 태백 폐광촌에서 아이들을 위한 마을 운동을 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뵀는데 그곳엔 남겨진 아이들이 많다고 했어요. 그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이 세워지고 문화공연도 열렸는데, 그 공연에 저를 초대해주셨어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재즈를 들려주려고 하니까 다 영어라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즈 동요를 준비해갔고 도서관 1층 로비에서 같이 공연했던 게 너무너무 행복했죠.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재즈 동요 음반을 만들었는데, 어른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콘셉트로 계속 꾸준히 만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린이들도, 어른들도 들을 수 있는 재즈를요."

-전도연 씨가 주연한 '굿 와이프' OST '더 라이트'를 비롯해 '로맨스가 필요해 3', '엔젤아이즈' '무정도시' 등 유명 드라마 OST에 작사·보컬로 참여하셨습니다. OST 작업은 어땠나요?

"작업 방식이 재즈와 너무 달라서 많이 배워요. 재즈는 수정할 부분을 거쳐 비교적 전체적인 느낌을 보는데 가요는 토씨 하나하나를 진짜 디테일하게 잡으시더라고요. 감독님의 디렉팅도 구체적이고요."

-다른 작업도 잘 소화하시고 정말 정희 씨는 유연한 뮤지션입니다. 새로운 것도 많이 하시고, 아이디어도 많이 갖고 계시니 향후 계획도 궁금합니다.

"조그마한 동화책 같은 거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 연 쇼케이스에서 선보인 MD도 제가 디자인을 했는데 동화책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짤막한 글이지만 따뜻한 말을 전해주는 내용이 담긴 소책자로요. 거기에 삽입될 음악도 만들고 싶고요. 기존에 있는 곡을 편곡해도 좋고요. 그렇게 예쁜 동화책을 만들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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