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중단 4년 금강산관광…재개 '앞'이 안보인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것은 2008년 7월11일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초병이 쏜 총격으로 사망하면서부터다. 당시 박씨의 피격사망 사건은 국민들을 큰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다음날부터 금강산관광은 전면 중단됐다.
북측의 행위는 남북 당국 간 합의서를 위반한 것이었다. 남북 당국이 2004년 1월29일 체결한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의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에 따르면 북측은 금강산관광지구에 출입 및 체류하는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하고 인원의 신체, 주거, 개인재산의 불가침권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격 사망사건 직후 정부는 북측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고,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금강산관광을 잠정 중단했다. 정부는 진상규명 활동에 북측이 협조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도리어 남측에 책임을 전가했다. 남한은 이후에도 당국 간 대화 제안을 했지만 북측은 매번 거부했다.
이에 따라 금강산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 금강산 관광객은 2005년 29만8000명, 2006년 23만4000명, 2007년 35만 명, 2008년 20만 명에 달했으나 정부의 관광 중단 조치가 시행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관광객이 매년 1만 명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면서 사업을 주관하던 현대아산, 영세 협력업체들, 금강산을 가던 관문이었던 강원 고성지역은 막대한 경제손실과 생계난으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11일 통일부와 현대아산 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주 사업자인 현대아산의 관광매출 손실이 5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북한은 2010년 4월 금강산지구 남측 시설을 동결·몰수한 데 이어 지난해 4월 현대아산의 독점 사업권 지위를 박탈하고 8월에 재산권 처분 통보 등 법적 조치까지 완료했다. 또 금강산 지구 내 현대아산 소유의 ‘온정각’을 ‘별금강’이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중국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인력도 구조조정됐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관광이 중단되면서 금강산 현지 숙박·판매시설에 투입됐던 조선족들이 중국으로 돌아갔고 사업 중단 이후 현지에 있던 대규모 인력을 먼저 구조조정했다”며 “인력이 1084명에서 280여 명으로 줄었고 현지에 남아있는 인력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금강산에서 식당, 숙박업, 기념품 판매점 등을 해온 33개 협력업체는 관광중단으로 시설투자비 1330억 원, 매출손실액 20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금강산기업인협의회는 최근 김천식 통일부 차관을 만나 생계비 보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은 정부의 관광 중단 이후 중국인 관광객 끌어모으기와 투자 유치에 나섰다. 북한 당국이 중국 관광객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올해 들어 하얼빈~원산 직항로와 연길~평양~금강산, 심양~평양~금강산 코스를 개통하고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금강산 유람선 관광이 정식 개통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당국자는 “협력업체들에 저리와 신용보증을 해주는 등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사과와 함께 신변안전과 재발방지 대책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뒤 금강산관광 재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종흥 금강산코퍼레이션대표 “정부, 피해업체 구제노력 안해”
“금강산관광 사업 중단 이후 사업 실패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씨는 “2008년 7월11일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같은 날”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날은 4년 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탄에 맞아 숨진 날이다.
그는 2007년 5월 지인의 권유로 금강산 관광지구에 20억 원을 투자했다. 금강산의 호텔과 골프장에 납품할 맥주를 만드는 공장을 가동했고 레스토랑과 면세점 내 귀금속품, 초콜릿, 허브, 생활용품 등 5개 매장까지 갖췄다.
그러나 사업이 잘 될 것이란 그의 기대는 불과 1년 만에 물거품으로 변했다. 피격 사망사건이 터지고 경색된 남북관계가 현 정부 내에서 풀릴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관광재개에 대한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었다.
이씨는 “박왕자 사건이 나기 얼마 전에 입주했기 때문에 사실상 업체들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며 “투자액만 20억 원에 달하고 재고품과 채무까지 합하면 38억 원에 달한다. 적자 속에서 피해만 보다 끝났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이씨는 회사 대표에서 방문판매원으로 전락했다.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화장품과 소변검사기 등을 팔며 한 달 생활비를 벌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원래 잘나가던 ‘삼성맨’이었다.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퇴직하기 전인 49세에 삼성시계 상무까지 지냈다. 가끔 이씨는 자신에게 닥친 날벼락 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금강산 사업에 투자만 안했다면 이런 큰 고통은 없을텐데….”란 자책은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다.
이씨는 “3년 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하지만 ‘절망하는 것 보다 작은 촛불하나라도 켜는 게 낫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힘들지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어느덧 4년이나 흘렀지만 금강산관광 재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씨는 “정부가 대출해준 118억 원도 그냥 해준 게 아니라 아파트 등을 담보로 한 채무인데 정부가 생색을 내고 있다”며 “정부는 금강산지구를 특별재난 지역으로 지정해 기업 생존차원의 운영자금과 생계비를 지원해 줘야 한다”고 성토했다.
yunghp@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87호(7월24일~30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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