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조계종, 여성 총무원장 나와야

1989년 최초의 여성주교 임명을 두고 미국 성공회 내부는 격돌한다. 반대 측에서는 선악과를 먹게 한 게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고 찬성 측에서는 그것이 이브가 아닌 지금의 여성을 주교로 임명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남성들만 성직자를 독차지한 것은 남에게는 잘 베풀면서 안에서는 폐쇄적으로 운영한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제라도 반성하고 앞을 향해서 나아가자고 했다. 결국, 미국 성공회에서는 여성주교가 탄생하게 된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폴리네시아 등에서는 성품(聖品)됐던 여성주교 안이 정작 성공회의 본류인 영국에서는 부결됐다. 여성의 주교 임명은 성서에 어긋나며 여성은 주교로 성품 받기에 부적합하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동등한 창조물이며 세례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에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영국 교회만이 계속 여성차별을 용인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이 의심받는 현실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냈다.
로마 교황청도 아직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성공회에서는 최근에 여성수도자인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기에 이르렀다. 최근 히트한 영화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한 12사도 중 한 명이자, 예수의 신부이자 가르침을 잇는 ‘최고의 사도’로 묘사되기도 했다.
2007년 7월 18일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의 유서 깊은 함부르크대학 회의장에서 세계불교여성대회 ‘승가와 여성 불자의 역할에 관한 제1차 국제회의’가 열렸다. 한국에 비구니율원을 처음으로 설립한 봉녕사 승가대학장 고(故) 묘엄스님을 비롯해 전국비구니회 회장 명성 스님 등 많은 비구니스님이 참가했다. 이 자리는 양성평등 입장에서 부처가 입적한 지 2500년이 지나도록 티베트불교에 한 번도 전해진 적이 없었던 비구니 계맥을 도입한다는 비전으로 전 세계의 율장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를 계획한 사람은 30년 전부터 비구니 율장 연구위원회를 조성하고 계획한 달라이라마였다.
그러나 20일 기조연설에서 달라이라마는 “만약 지금 이 자리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당연히 티베트에 비구니 계맥을 복원하라고 말씀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부처님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계맥을 복원하라고 독단적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티베트로 돌아가면 다른 종파들의 수장들과 율장의 권위자 스님들과 회의를 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비구니계 계맥의 복원이 아닌 최초의 도입은 불발되고 티베트로의 귀향과 아울러 강력한 힘을 가진 기존의 불교 기득권 세력의 설득이 전제돼야 함을 알게 됐다.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티베트망명정부의 수반도 어쩌지 못하는 티베트의 악습과 기득권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19일 달라이라마는 비구니계의 도입에 앞서 여성 승려에게도 불교학박사에 해당하는 게시마(Geshema Degree)를 수여할 수 있게 하는 역사적 결정을 내린다.
194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푸른 눈의 티베트 승려 텐진 파모 스님은 티베트의 영적 스승 가운데 한 분인 캄톨 린포체의 유일한 여 제자가 됐다. 그러나 티베트도 비구니계가 없어서 미얀마, 태국 등의 불교국가처럼 여성수도자가 승려 즉 비구니가 될 수 없는 곳이다. 일반신도들과 마찬가지로 지켜야 할 10개의 계율만 받을 뿐이다.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차별과 고초를 겪어야 했다. 결국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책 제목과 같은 서원을 세우고, 비구들도 하기 어려운 12년간의 히말라야 설산 동굴 수행을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룩한다. 2004년 6월 28일 김포의 중앙승가대학교에서 파모 스님은 “한국 비구니 승단은 교육 시스템, 수행법 등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는 세계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고 감탄했다.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이하 불시넷)는 지난달 28일 개정안 부결은 중앙종회 의원들이 몇몇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불시넷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가 계율에 반하는 성차별 발언을 한 중앙종회 의원들은 사과하고 최근 성매매로 사회법으로 100만원 벌금을 선고받은 스님이 비구니 스님들이 없는 재심 호계원에서 문서 견책 즉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 일은 종단에 만연한 성차별적 문화를 바로 보여준다며 경위 조사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개정안 부결 당시 회의장에서 퇴장한 중앙종회비구니의원 일동도 지난달 26일 “비구니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현실에서 더는 비구니 승가의 대표 역할을 할 수 없다. 비구니를 폄하하지 말고 상생과 화합을 위해 역할을 존중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 새 원장 김종규(41) 법무법인 인본 대표 변호사는 오랫동안 내연 관계를 유지한 스님에게는 당사자끼리 합의를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린 사례는 종단의 도덕성에 큰 흠집을 냈으며, 비구니스님들의 호계위원 진출 거부는 승가의 도덕적 잣대를 발전시킬 기회를 걷어차 버렸다고 일침을 가했다.
로마 가톨릭에서도 영국성공회에서도 여성 사제조차 나오지 않았다. 세계 불교국가 대부분 비구니 법맥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명맥을 이으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단순히 이걸 보고 다른 종교나 다른 나라보다 우리 비구니의 위상이 우월하니 충분하지 않으냐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 비구니 법맥이 살아있는 것은 부처의 여법한 뜻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 출가자의 수의 급격한 감소가 말해 주듯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는 가장 선진적일지는 모르나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더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 비구니 사찰은 운영조차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은 이미 불교 신자라면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성대통령이 나온 우리나라,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제도를 가진 우리나라 여성 불교계를 텐진파모를 비롯한 전 세계의 종교계가 주시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여성 호계위원에 머물지 말고 여성 총무원장의 탄생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막는 종헌과 종법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그러한 진취적인 맑고 향기로운 모습만이 천 년을 이어온 조계종이 선지식의 부재, 신도들의 고령화, 승려들의 질 저하 등을 비롯한 총체적인 위기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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