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달라이라마, 여성으로 환생해야 한다①

6월 11일 최근 집권 노동당을 이끌고 있는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야당인 보수 세력이 오는 9월 총선에서 승리하면 여성을 주변화시키고 낙태법을 저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6월 13일 호주를 방문 중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시드니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다. 이에 “여성 달라이라마가 더 유용한 상황이 되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계는 불평등과 고통에 대해 둔감한 도덕적 위기 상황이며 자비심을 가진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더 자비롭기에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더 있다”고 답했다. 여성 달라이라마가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올 가능성이 더 있다고 언급한 것이지만, 세계 언론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 사실을 전했다. 이런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12월 6일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한 달라이라마는 “만약 여성이 자신의 유용성을 충분히 보여준다면 달라이라마도 여성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티베트 역사상 지금까지 여성 달라이라마는 없었다. 연말에 달라이 라마는 일본 산케이(産經) 신문과 인터뷰에서 생전에 후계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2008년 11월 23일 달라이 라마는 망명 티베트인 특별회의가 끝난 뒤 “2001년 이후 절반쯤은 은퇴한 상태며 중국이 제15대 달라이 라마를 임명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차기 달라이라마로 어린 여성을 지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세계는 티베트 자치권 요구를 무시한 중국 정부에 차기 달라이라마 후계자 임명 권한만은 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분석된다.
2010년 10월 26일 달라이 라마는 캐나다 토론토에 문을 연 티베트 문화 센터 개관기념 행사에 참석해 1만 500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자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더 민감하고, 남자보다 매력적이라 더 관심을 끌 수 있으므로 여성 환생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또 2011년 7월 12일 중국의 한 유력 언론은 달라이라마가 환생 될 자신의 후계자는 러시아에서 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옛날 유다의 헤롯왕이 이 이야기를 들었다면 2011년 7월 이후에 러시아에서 출생한 아기들은 살아남기 어려웠을 일이다. 2011년 8월 3일 달라이라마는 프랑스 일간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선거 방식으로 후계자를 선정할 수도 있다. 만약 불교의 정신적 지도자로 여성이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오면 여성이 안 될 이유가 없다”면서도 “내 환생이라고 여겨지는 소년을 지목해 바로 후계자로 지명하는 대신 15세나 20세가 됐을 때 결정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며 죽기 전에 후계자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달라이라마는 중국 정부가 판첸라마의 예처럼 자신의 사후 권력 공백 현상을 이용할 것을 염려한다. 그리하여 후계자인 제15대 달라이라마는 망명정부에서 탄생할 것이며 자신의 생전에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특히 후계문제의 최종 권한은 자신에게 있으며 그 누구에도 없다면서 환생을 믿지 않는 중국 공산당은 더더욱 아니라고 말했다.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지상에 남아 중생의 깨달음을 돕는 신성한 존재인 ‘첸레지그’의 화신으로 믿는다. 하지만 환생 등을 믿지 않은 공산당체제의 중국 정부가 유독 환생한 후계자 문제만은 간여하겠다는데 일침을 놨다.
불교의 수행자는 12연기에 따른 인연 법을 따라야 한다. 사후의 문제를 생전에 결정하려는 것은 인연 법을 무시한 처사임에 틀림이 없다. 정치적인 독립과 종교적인 영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티베트의 현실은 우리나라 불자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달라이라마는 여법하게 사후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여하튼 후계자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둔 달라이라마의 의도는 단지 중국정부를 피곤하게 하는 데 있다. 중국정부는 다 거짓말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실제로 달라이라마의 의중은 어디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선 시대의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의 왕위계승에서 보이듯이 왕위계승과도 같은 후계 달라이라마의 결정은 달라이라마도 모를 수 있다. 전통적으로도 생전의 달라이라마가 결정할 일은 더더욱 아닌 듯하다. 맑고 밝지만, 욕심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2011년 8월 취임한 롭상 상가이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신임총리일 뿐이다. 일부 언론이나 소위 티베트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달라이라마의 후계자나 망명정부의 실질적인 지도자는 더더욱 아니다. 정교가 이미 분리됐다고 보는 시각도 티베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달라이라마의 은퇴는 티베트 망명 정부의 수반으로서의 표면적인 은퇴일 뿐이다. 티베트 자치구를 포함한 옛 거대한 티베트 지역인 대장구(大藏區·대티베트구)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티베트인 모두의 정신적이고도 실질적인 수장이니 지도자 자리를 내놓은 것은 전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달라이라마의 은퇴는 티베트망명정부를 뛰어넘어 원래 제자리 더 크고 높은 그 자리를 찾아간 것에 불과한 것이다.

제14대 달라이라마의 수행은 매우 훌륭하다. 하지만 과거의 달라이라마가 모두 그랬던 것은 전혀 아니다. 이걸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의 교황과 마찬가지로 세계 불교의 지도자를 달라이라마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교적으로 우리에게는 1993년 11월 4일까지 성철스님이 계셨듯 인도 다람살라에 티베트인인 달라이라마가 현재 생존하고 계신 것뿐이다. 1959년 달라이라마가 망명한 이후로도 여전히 달라이라마의 티베트는 왕국일 뿐이다. 그것도 정교 즉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신정(神政)이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인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어느 황제보다 더 강력한 권력자일 수 있다. 이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벌써 몇 번에 걸쳐서 어린 여성의 후계 가능성을 언급했다. 세계가 여성 인권을 강조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맞는 매우 정치적인 발언이다. 불교적인 방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 수행자가 세 번 넘게 언급한 것은 지켜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렇지 않으면 구업(口業)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다. 매우 축하할 일이며 국가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달라이라마도 이젠 말로만 후계 가능성을 언급하기 보다는 실제로 여성 달라이라마로 환생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미 입에서 나온 말은 불교적으로는 모두 약속이다. 그렇다면 이젠 달라이라마가 이를 지켜주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최근 까루린포체의 썅빠까규 총본산이 북인도 다즐링 소나다사원에서 프랑스 보르고뉴 라보레이 사원으로 변경됐다. 매우 혁신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럽에서 출가한 서양인 라마를 비롯해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받은 세계의 사람들도 문화적으로 티베트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혈연적으로도 티베트인들과 결혼한 외국인들이나 그 자녀, 특히 여자아이 가운데서도 달라이라마는 나와야 한다. 나아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처럼 우리나라에도 이른 시일 내로 이주배경이 있는 다문화 대통령이 당선돼 ‘다문화’라는 단어 자체를 국립민속박물관에 유물로 소장하게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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