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세계 민주주의 유산으로 빛날 '넬슨 만델라 어록'

등록 2013.12.06 14:10:30수정 2016.12.28 08:28:58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AP/뉴시스】1994년 당시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자료 사진. 평생을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일관했던 만델라가 5일 95살을 일기로 타계했다고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이 발표했다. 2013.12.06

【AP/뉴시스】1994년 당시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자료 사진. 평생을 인권을 위한 투쟁으로 일관했던 만델라가 5일 95살을 일기로 타계했다고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이 발표했다. 2013.12.06

【서울=뉴시스】문예성 기자 = '남아공 민주화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자유를 향한 열정, 고난 속에도 굽히지 않는 강한 의지는 그의 생전 어록에 고스란히 남아 남아공 국민과 세계인의 민주주의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다음은 그가 생전에 한 연설이나 말 가운데 일부이다.

 ▲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만델라는 지난 1964년 4월20일 리보니아 재판 최후 진술에서 자신의 투쟁 노선과 인종 평등의 사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비전을 밝혔다.

 "나는 재판 개정 초반에 정부 측이, 남아프리카의 투쟁에 외국인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다고 시사한 내용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동포의 지도자로서 내가 행한 모든 것은 남아프리카에서의 내 경험과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내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 어떤 제3자가 말해준 것 때문이 아닙니다.

 법정에 전해진 것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사보타주(고의적인 사유재산 파괴나 태업 등을 통한 노동자의 쟁의 행위)를 계획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계획한 것은 경솔한 판단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폭력을 좋아 해서도 아닙니다. 백인들이 '내 백성(흑인)'에 대해 독재를 행하고,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한 오랜 세월 동안 발생했던 정치적 상황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평가한 결과에 따라 계획한 것입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싸움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진실로 민족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고통과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아프리카인의 투쟁입니다. 그것은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한 투쟁입니다. 나는 평생을 아프리카인의 이 투쟁에 바쳐왔습니다. 나는 백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고, 흑인 지배에 맞서 싸워왔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아 함께 조화롭게 사는 자유민주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여겨왔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이상입니다. 필요하다면 나는 그런 이상을 기꺼이 죽을 준비가 돼 있습니다"

 ▲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만델라는 1994년 5월10일 남아공 초대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남아공의 앞날에 대한 소망을 밝혔다.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우리를 갈라놓은 공간들을 채울 다리를 놓을 시간이 왔습니다. 새 시작을 할 시간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저희는 마침내 법적인 평등을 이뤄냈습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이 가난, 탈취, 고통, 성적 차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협동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의 조화, 재건과 새로운 세계의 협동을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 나라에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합시다. 아프리카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 "잊지 않겠지만 용서한다"

 만델라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함께 잘 살아가는 새로운 나라, 여러 색깔로 이루어진 무지개가 아름답게 빛나듯이 아름다운 '무지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델라는 집권 뒤 과거사 문제에서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원칙을 내걸었다. 이 원칙에 따라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P.W. 보타 전 대통령을 찾아 화해를 요청했고, 때로는 흑인들의 반발에도 백인 세력을 끌어안았다.

 ▲ "무관심, 냉소 이기심 탓에 휴머니즘에 부끄럽지 않게"

 만델라는 1993년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W. 데 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명연설을 남겼다.

 "우리가 무관심과 냉소, 이기심 탓에 휴머니즘 이상에 부끄럽지 않게 살지 못했다는 말이 미래 세대에게서 나오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휴머니즘이 더는 인종주의와 전쟁이라는, 별이 없는 한밤중에 묶여 있을 수는 없다고 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 옳았음을 우리가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진실한 형제애와 평화가 금과 은, 다이아몬드보다 더 값지다고 말한 그가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는 이 상이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칭찬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온세상에서 차별 시스템의 종식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 "내 아들은 에이즈로 숨졌다"

 민주주의로 이행한 뒤 남아공의 최대 현안은 에이즈였다. 에이즈와의 싸움을 선언하고 구호재단을 만들었다. 만델라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선 활동을 활발히 펼쳤고 2005년에는 비밀에 부쳐졌던 장남 마가토 만델라의 죽음의 원인이 에이즈라고 밝히면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이(에이즈 퇴치)는 전쟁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고 논쟁하는 동안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논쟁하고 주장을 펼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 "나는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걸어 왔다"

 그는 1995년 출간된 자서전 '자유를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았고, 자유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소년 시절의 자유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내가 젊은 시절 나의 자유를 이미 빼앗겼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부터 나는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나는 나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의 형제와 자매들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습니다.

 나는 내 동포들에게 사람으로서의 존엄과 자존심을 지킬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백성 누구 하나에게 묶여진 쇠사슬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 묶여진 쇠사슬이며, 모든 내 국민들을 묶은 쇠사슬은 나에 대한 쇠사슬이었습니다.

 길고 외로운 여러 해 동안 내 민족의 자유에 대한 내 갈망은 흑인과 백인을 포함하는 모든 국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다면 남에게 나의 자유를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는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나는 주춤거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도중에 발을 잘못 내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커다란 언덕을 올라간 뒤에야 올라가야 할 언덕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비밀을 알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쉬면서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멋진 경치를 보며 내가 온 길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머나먼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감히 꾸물거릴 수가 없습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