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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양민학살' 피해자 유족 국가배상금 47억→12억 대폭 축소

등록 2015.06.05 12:23:03수정 2016.12.28 15: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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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연손해금 산정 기간도 3년 늦춰져
 3차 상고 부담…인지대만 수천만원

【서울=뉴시스】김난영 기자 = 1949년 경북 문경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사건(이하 문경 학살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국가배상금이 두번째 파기환송심에서 대폭 축소됐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신광렬)는 문경 학살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채의진(77)씨 등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2차 파기환송심에서 국가가 총 12억1327만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이는 파기환송 전 국가배상금인 47억7481만여원에서 대폭 축소된 금액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전쟁 전후 희생사건은 피해 발생일로부터 무려 60여년이 넘게 경과됐고 피해자 숫자가 매우 많다"며 "위자료 액수 산정엔 피해자 상호 간 형평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 숫자 등에 따른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문경 학살 사건 이후 2차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까지 국내 통화가치의 현저한 변동, 국가의 배상의무 지연에 따른 유족들의 추가적인 정신적 고통, 유사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피해자들 간의 상호 형평,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희생자 유족 숫자 등을 종합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배상액 지급 지연으로 인한 지연손해금은 2차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인 지난 4월29일부터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불법행위 시점과 변론종결 시점 사이에 장기간의 세월이 흘러 통화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긴 때는 덮어놓고 불법행위시부터 지연손해금이 발생한다고 볼 경우 현저한 과잉배상 문제가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채씨 등은 해당 판결에 따라 손해배상금이 거액 축소된 데 이어 기존 1차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인 2012년 4월20일부터 산정키로 했던 지연손해금 산정 기간도 줄어들어 3년 정도 불이익을 받게 됐다.

 문경 학살 사건은 1949년 경북 및 태백산 지역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펼치던 육군이 같은 해 12월23일 문경 석달마을에 불을 지르고 80여명의 양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사건이다. 당시 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들의 70%가량은 전투능력 및 공비와의 협력활동 가능성이 없는 어린이나 노약자, 여성이었다.

 군 관계자들은 이후 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북한 게릴라들이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허위 보고를 했고, 군 당국은 해당 보고를 토대로 문경 학살 사건에 대해 "공비가 국군을 가장하고 부락에 침입해 살인방화 등을 감행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채씨는 이후 1960년대 국회에서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조사를 시작하자 문경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쓰는 등 활동을 했다. 그러나 채씨는 해당 활동으로 오히려 반국가행위를 했다고 몰려 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후 2007년 6월 문경 학살 사건에 대해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선별절차나 법적 근거 없이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하게 집단학살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채씨 등은 이에 2008년 국가를 상대로 "불법 학살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 손해를 배상하라"며 이 사건 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문경 학살 사건 이후 50년 이상이 흘러 채씨 등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시효로 인해 소멸됐다고 판단,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 역시 같은 취지로 채씨 쪽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2011년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 노력을 게을리한 국가가 뒤늦게 유족들이 제기한 소에 대해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1차 파기환송 이후 서울고법은 이듬해 4월 63년 만에 채씨 등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47억7481만원을 배상금으로 산정했다. 국가는 그러나 이 사건을 대법원에 재상고했고, 지난해 대법원은 형평성 등을 고려해 이 사건 배상금 액수를 줄이라는 취지로 사건을 다시 파기환송했다.

 채씨 등은 1차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인 2012년 5월 국가로부터 배상금을 받았지만 자신을 도와준 단체 등에 기부해 현재는 재산이 많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줄어든 배상금을 근거로 그 차액을 국가에 반납해야 할 경우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채씨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향 박갑주(48·사법연수원 30기) 변호사는 "채씨 등의 상고 의사는 확고한 상황"이라면서도 "인지대만 수천만원인데다 한 사건이 세번째로 상고심에 올라가면 심리불속행 결정이 날 것으로 우려돼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아울러 "대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1차 파기환송 이후 2012년 서울고법의 파기환송심 종결시부터가 지연손해금 산정일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법률상 지연손해금 산정 시기는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2차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부터 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과거사 사건에서의 지연손해금 기산점을 불법행위시가 아니라 사실심 종결시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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