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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서번트는 절제, 피아노는 욕심껏 연기했어요"

등록 2018.01.09 12: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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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자폐증의 일종으로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는 '서번트 증후군'을 다루거나 '피아노 연주'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드라마는 많다. 

서번트는 이미 국내외에서 수많은 배우가 해낸 캐릭터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2005년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말아톤'(감독 정윤기)의 주인공인 마라톤 천재 '초원'이다. 조승우라는 걸출한 배우가 맡아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라는 대사를 유행시키며 '서번트 = '말아톤' 초원 =조승우'라는 공식마저 만들어냈다. 해외에서는 '레인맨'(1988)의 더스틴 호프만이 비상력 기억력을 가진 서번트 '레이먼드'를 열연했다.

피아노는 어떤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배운 악기가 리코더(피리)라면 그다음은 피아노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피아노를 잘 칠 줄 몰라도 연주 장면이 어색한 것은 귀신같이 찾아낼 사람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영화에서 서번트와 피아노 연주를 접목한 것도 모자라 서번트를 앓는 주인공이 영상만 보고 고난도 피아노 연주를 해내는 천재로 그려진다면 어떨까. 관객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그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는 '이중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쉽지 않은 두 가지 연기를 모두 잘 해내야 하는 탓이다.

오는 17일 개봉하는 이병헌, 박정민, 윤여정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감독 최성현)에서 '조하'(이병헌)의 아빠 다른 동생 '진태'가 바로 서번트인 피아노 천재다. 충무로에서 '괴물 신인'으로 통하는 박정민이 열연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email protected]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정민은 쉽지 않은 캐릭터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이 작품을 놓치면 속상할 것 같았다.”

박정민은 "매니저가 이런 시나리오가 있다고 보여주면서 이병헌 선배님이 출연하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병헌 선배님이 왜 그런 소소한 드라마를 하시지?'라고 의아해했던 것이 사실이다"면서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왜 이 작품을 하려 하시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이 기회를 놓치면 타격이 오래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도 너무 좋은 데다 이병헌 선배님도 출연하시니 당연했다. 너무 하고 싶어 매니저에게 졸랐다"고 고백했다.

"내 또래 배우들이 이 시나리오를 봤으면 모두 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는 박정민에게 "'절친' 강하늘이 하고 싶어 했다면 양보했겠느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강하늘은 '동주'에서 '윤동주'로 그와 호흡했다.

박정민은 "'빨리 군대나 가라'고 했을 것이다. 하하하"라고 너스레를 떨며 "하늘이에게도 양보하지 않았을 만큼 시나리오가 좋았다"고 잘라 말했다. 작품에 가진 그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욕심을 내긴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서번트도, 피아노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기 때문이다.

서번트를 연기하려면 '말아톤'과 조승우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하지만 박정민은 "그 벽을 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원래 '말아톤'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상영할 때 극장에서 여러 번 봤고, 다운로드가 가능해진 뒤에는 다운을 받아 정말 계속 봤다. 게다가 조승우 선배님 연기는 대단했다. '말아톤'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영화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꼭 이겨야지'하는 의식이나 경쟁심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박정민은 말투와 표정, 손동작 하나하나에도 섬세함을 기해 서번트의 특징을 담았고, 의상부터 안경, 가방 등 소품 하나까지 아이디어를 더하고 직접 준비해 캐릭터 현실성을 높였다.

특히 그는 서번트에 관해 제대로 알기 위해 한 특수학교에서 4개월 동안 매주 하루 7시간씩 봉사 활동을 했다.

박정민은 "서번트 증후군, 우리와 조금 다른 세상을 사는 그분들에 대한 제 마음을 표현하려고 봉사 활동을 했다. 자칫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하지만 학교 관계자분이 '함께 해주신 것을 공개하면 (자원봉사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셔서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민은 봉사 활동을 시작할 때도 조심스러웠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제 서번트 증후군 혹은 그런 장애를 가진 분들이나 가족들, 복지사들이 영화를 볼 때 불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은 그다웠다.

"외부인이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 누군가를 관찰하고 하는 자체가 무례할 수 있어 고민했다. 감독님도 '썩 좋은 일은 아닐 수 있다'며 반대하셨다. 2~3주가량 고민하다 학교에 문의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인데 단지 연기 때문이 아니라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봉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연기를 위해 그 친구들을 관찰하거나 특징을 따오지는 않겠다. 그렇게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는 생각으로 봉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절대 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뭔가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자원봉사 담당 선생님이 내게 '우리 반에 있는 아이들의,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특성은 따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본 누군가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할 경우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책과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자폐증이나 서번트의) 일반적인 특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배우 박정민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1.09. [email protected]


피아노는 더욱 힘들었다. 난생처음 쳐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가는 방법은 있었다. 박정민과 대역을 컴퓨터 그래픽(CG)으로 합성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CG나 카메라 트릭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올곧게 박정민의 연기로 수많은 피아노 연주 신을 스크린 위에 펼쳐놓았다. (물론 소리는 대역인 유명 피아니스트가 한 연주다.)

왜 그랬을까. "캐스팅된 뒤 감독님과 피아노 연주 신을 논의할 때 윤여정 선생님과 이병헌 선배님은 'CG로 해야 장면이 깔끔하게 나올 것'이라고 지적하셨다. 하지만 감독님은 '관객이 피아노 연주가 대역일 것으로 의심하는 순간 영화의 사실성이 무너진다'며 내가 직접 연주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하는 신인 감독의 고집은 박정민과 의기투합하면서 힘을 발휘했다.

"그때 마침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가 개봉했는데 라이언 고슬링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감독님과 나는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상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배우가 직접 연주해야 저런 느낌이 나온다'는...."

박정민은 촬영 3개월 전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해 촬영 기간 3개월까지 총 6개월 동안 영화에 나오는 곡과 편집돼 공개되지 않은 곡까지 9곡을 하루 4시간씩 연습했다. 피아노 악보를 보고 연주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건반 위치와 치는 순서를 '암기'했다.

"피아노 연습을 시작하고 나서 곧 후회했다. 마냥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연습한 것을 보여드리고 'CG로 갔으면 한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감독님도 고민하셨다. 그러던 중 피아노 연주신 첫 촬영을 했다. 일단 내가 직접 치고 판단하기로 했다. 첫 촬영은 (한)지민 누나와 나란히 앉아 '헝가리 무곡'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었는데 누나 덕에 잘 쳐낼 수 있었다. 그래서 감독님도, 나도 용기를 내 그냥 직접 치기로 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박정민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보조출연자 700명을 동원하는 등 사흘 동안 찍은 '갈라 콘서트' 장면에서 과감히 나섰다.

"첫날은 관객 신만 찍을 것이라 나는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필요 없이 연습실에서 연습하면 됐다. 그러나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 앞에서 연습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설계한 연기도 시험해볼 수 있고, 관객 리액션도 더욱 잘 나올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본래 시나리오에는 '차이콥스키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짧게 적혔을 뿐, 진태가 연주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행동을 할지는 지정되지 않았다. 박정민이 알아서 서번트 피아노 천재라면 정말 그럴 것 같은 표정과 행동들로 이를 채워나가야 했다.박정민은 보조 출연자들 앞에서 자발적으로 리허설해 이를 점검하려 했던 것.

그 생각은 주효했다. 이는 영화 후반부 모성애 신에서 간신히 눈물을 참은 관객이 끝내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게 만드는, 감동을 자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정민은 연기 욕심을 절제해 서번트를, 폭발시켜 피아노 연주를 해내는 방식으로 진태를 창조해냈다. 지난 2016년 '동주'(감독 이준익)의 '송몽규'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황금촬영상' '디렉터스 컷' 등 굵직한 시상식 '신인상'을 휩쓴 끼와 열정은 시간이 흐르고, 작품을 많이 했어도 전혀 식지 않은 채 더욱 뜨겁게 분출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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