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그먼 "팍스 아메리카나 몰락…일개 불량배 국가로 전락"
"미국적 가치에 대한 제도적 거부 현상 나타나"
【서울=뉴시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미 제국의 몰락(Fall of the American Empire)’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제도적인 거부(systematic rejec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2018.06.19.
미국은 전후 지난 70여 년 동안 경제적,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법치 등 미국적 가치를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로마시대 이래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제국으로 자리매김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미국의 가치를 한꺼번에 내팽개치면서 일개 “불량배(Bully)” 국가로 전락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미 제국의 몰락(Fall of the American Empire)’이라는 글을 통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제도적인 거부(systematic rejec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은 자유세계의 리더였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리더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러한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있다”라고 개탄했다.
다음은 크루그먼 교수의 NYT 기고문 요지.
미국 정부가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면서 부모의 품에서 아이들을 떼어놓고 있다. 아이들은 울타리가 둘러쳐진 격리시설에 수용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고 대신 자기의 정적들을 추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는 살기등등한 독재자는 칭찬하면서 민주적인 동맹국 지도자들에게는 모욕을 안기고 있다. 글로벌 무역전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공통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일들은 모두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성격과 연관돼 있다. 그는 백악관의 역대 주인들 중 최악의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큰 맥락에서 이를 봐야 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미국적 가치에 대한 “제도적인 거부(systematic rejection)”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실질적으로 위대하게 만들었던 가치가 제도적으로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오랜 동안 강력한 국가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군사적 지배력을 모두 갖춘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고대 로마제국 이래 볼 수 없었던 수준이었다.
세계무대에서 우리의 역할은 항상 돈과 총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이 품고 있는 이상과 관련된 것이었다. 미국은 자유와 인권, 법치 등 보편적 원칙을 대변했다.
물론 미국도 종종 그런 이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실재하는 것이다.
스웨덴 경제학자인 군나르 뮈르달이 지난 1944년 자신의 저술 ‘미국의 딜레마; 흑인문제와 현대 민주주의’를 통해 미국의 문명은 “계몽주의적인 분위기(flavor of enlightenment)”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국시민들은 자신들이 흑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미국이 표방하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주목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선(善)과 미국의 힘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 대답은 바로 지난 70년 동안 미국의 선과 미국의 위대함은 나란히 움직였다. 미국이 이러한 이상을 품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다른 나라들도 알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이상을 인정한다는 사실이 미국을 위대한 강대국으로 만들어 주었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낳는 요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과 영국의 동맹국들은 세계의 많은 부분을 정복했다. 우리는 영속적인 지배자 노릇을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꼭두각시 정부를 수립할 수도 있었다. 이는 바로 소련이 동유럽에서 했던 방식이다. 물론 미국은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이런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주로 패배한 적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그들이 다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미국의 핵심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세우도록 도와주었다. 그럼으로써 미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동맹국이 되도록 한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일종의 제국이다. 미국은 오랜 동안 “동급자 중 일인자(First among equals)”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역사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미국은 두드러지게 선량한 제국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미국은 누구에게나 털리는 돼지 저금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역협상은 미국을 보다 위대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돈 문제 이상의 것이었다.
근대 무역제도는 경제학자들이나 기업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니다. 프랭클린 D.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이었던 코델 헐이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는 “국가들 간 번창하는 무역은 지속적인 평화를 쌓는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믿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만들어진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이와 동일한 전략의 일환으로 마셜 플랜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탄생에 다소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매캘런=AP/뉴시스】미국 텍사스주 매캘런에서 17일(현지시간) 부모와 함께 불법이주하다 적발된 아이들이 콘크리트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워있다. 사진은 미 관세국경보호청(CBP)가 제공한 것이다. 2018.06.18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은 하나를 가리키고 있다. 국경에서 (불법이민자의 부모와 아이들을 떼어놓는) 잔인한 일을 벌이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법치를 공격하고, 악한을 칭찬하면서 민주적인 지도자들을 모독하고, 무역협정을 깨는 등의 모든 일들은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의 종언”을 알리는 표징들이다. 우리를 다른 강대국들과 차별화시켰던 미국의 이상들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상을 거부하는 것이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 약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자유세계의 리더였다. 재정적, 군사적으로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리더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러한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있다.
미국은 70년 전의 지배적 강대국이 아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면 그들이 뒤로 물러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망상이다. 우리는 지금 전면적인 무역전쟁으로 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모두 무역전쟁의 결과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일부 산업들이 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않고 있다. 그는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들을 내팽개치고 있다. 미국을 그저 또 다른 불량배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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