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더워도 긴팔 입어요"…폭염에 노출된 구룡마을 주민들[현장]

등록 2024.06.20 06:00:00수정 2024.06.20 09:42:13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주민 "통풍 안돼도 뱀 있어서 긴 소매에 장화 신어"

"비가 와도 습도 높아져…집안·밖 더운 건 매한가지"

19일 서울서 올해 첫 폭염특보 발효…구룡마을 '비상'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40여년째 사는 오세국(57)씨는 '불볕더위'에도 고추 농사를 할 때 '긴팔 상의'를 고수해야 한다. '산 출신' 모기떼의 습격 때문이다. 오씨는 "아무리 더워도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며 "모기는 물론 뱀까지 있어 한여름에도 목이 올라온 양말에 장화까지 신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오씨의 집. 2024.06.20. frien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40여년째 사는 오세국(57)씨는 '불볕더위'에도 고추 농사를 할 때 '긴팔 상의'를 고수해야 한다. '산 출신' 모기떼의 습격 때문이다. 오씨는 "아무리 더워도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며 "모기는 물론 뱀까지 있어 한여름에도 목이 올라온 양말에 장화까지 신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오씨의 집. 2024.06.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고라니 3마리가 새벽에 돌아다녀서 그물망을 치다 보니 바람길이 막혔어요."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40여년째 살고 있는 오세국(57)씨는 '불볕더위'에도 '긴 소매 상의'를 고수해야 한다. 산에서 내려온 모기떼의 습격 때문이다. 오씨는 "아무리 더워도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을 수가 없다"며 "모기는 물론 뱀까지 있어 (고추 농사를 할 땐) 한여름에도 목이 올라온 양말에 장화까지 신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전날(19일) 오후, 뉴시스가 만난 구룡마을 주민들은 저마다의 더위나기에 여념이 없었다.

5평 남짓 집에서 산다는 오씨는 여지껏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로 여름 나기를 해왔다고 했다. 오씨는 "에어컨이 있으면 부자"라며 "70~80만원이나 든다"고 했다. 오씨는 스티로폼이 덕지덕지 붙은 높이 2m 정도 되는 천장을 가리키며 이런 방법으로 햇빛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선풍기 외에 오씨가 찌는 더위를 버틸 수 있는 수단은 아이스박스 속 얼음물이 전부다. 오씨는 "막걸리는 오히려 더 덥게 만들어서 못 마신다"며 "오늘 오전 4시30분~오전 9시까지 농사를 지은 후 지금까지 얼음물을 세 병이나 마셨다"고 했다.

 오씨는 "태양빛을 그대로 받으면 내부 온도가 한 40도는 된다"며 "평균 연령 78세인 이곳 구룡마을 사람들에게 더 더울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 농촌이었던 구룡마을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주거지를 강제로 철거당한 철거민들이 모여 조성한 판자촌이다. 강남구는 구룡마을을 무허가촌으로 규정했고 이에 따라 마을은 지원 체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폭염 취약계층' 구룡마을 주민들은 올해에도 불볕더위에 놓일 참이다. 기상청이 전날 서울에 올해 첫 폭염특보를 발효한 데 따른 것이다.

기상청은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오르면서 서울에 폭염특보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져 무더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식당은 구룡마을 내 피서지 1순위였다. 20평 규모의 가게엔 에어컨과 선풍기의 전선이 얽히고 섥혀 후텁지근한 내부 공기를 가시고 있었다. 오리와 옻닭을 파는 안모(69)씨는 "여기에서 다들 술도 마시고 오리 먹으면서 더위를 피한다"고 했다. 사진은 해당 식당. 2024.06.20. friend@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식당은 구룡마을 내 피서지 1순위였다. 20평 규모의 가게엔 에어컨과 선풍기의 전선이 얽히고 섥혀 후텁지근한 내부 공기를 가시고 있었다. 오리와 옻닭을 파는 안모(69)씨는 "여기에서 다들 술도 마시고 오리 먹으면서 더위를 피한다"고 했다. 사진은 해당 식당. 2024.06.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구룡마을에서 29년을 살았다는 이강민(70)씨는 폭염특보가 발효된 전날 나무 밑에서 온몸으로 더위를 맞이하고 있었다. 집 안이 오히려 더 덥고 습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안이나 밖이나 더운 건 매한가지"라며 "비가 오면 물도 새고 습도도 높아 밖에 있곤 한다"고 했다.

이씨는 마을 초입에 있는 버스 종점에서 편의점까지는 대략 2㎞ 떨어져 있어 쉽게 물을 사러 나가지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이유로 식당은 구룡마을 내 피서지 1순위였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전선이 얽히고설킨 20평 규모 가게에는 10여명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구룡마을 8지구에서 오리와 옻닭을 파는 안모(69)씨는 "여기에서 다들 술도 마시고 오리 먹으면서 더위를 피한다"고 했다.

가게 내 에어컨은 켜져 있었지만 온도계는 30도 이상을 넘나들었다. 구룡마을에서 폭염을 어떻게 이겨내 왔는지 안씨에게 묻자 "다 그렇게 산다"라며 "가정집에서 에어컨 켰다가 불이 난 적이 있어서 걱정되긴 한다"고 답했다.

아흔을 넘긴 이복진씨와 이웃 정모(67)씨도 에어컨을 켜지 않은 채 구룡마을에서 폭염을 버텼다고 했다.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고 한 이씨는 TV를 켜놓은 채 누워서 더위를 식히는 중이었다.

정씨는 "뒤가 숲이라 새벽에는 서늘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둘은 은박 보랭재를 벽에 붙이거나 문에 '뽁뽁이'를 붙이는 등의 방법으로 여태껏 여름을 보냈다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부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오후 3시 기준으로는 전국 곳곳에서 관측 이래 6월 최고기온 최고치가 경신됐다.

경북 경산 하양읍은 낮 최고기온이 39도까지 올랐고, 경기 여주 점동은 38.8도, 양평 옥천면은 38.1도를 기록했다. 경북 경주의 경우 기온이 37.7도까지 올랐는데, 이는 2010년 관측 이래 6월 기온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광주는 37.2도까지 올라 66년만에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했다. 종전 6월 최고기온은 36.7도(1958년 6월25일)였다.

기상청에 따르면 20일 이날도 낮 최고기온은 서울 35도, 수원 34도, 춘천 35도, 청주 35도, 대전 35도, 전주 33도 등 주요 지역에서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전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