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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겪은 '시니어 아미'…"트라우마 남았지만, 나라 위해"[6·25 74년②]

등록 2024.06.24 06:00:00수정 2024.06.24 08: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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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생 '시니어 아미' 박선협씨 인터뷰

"9살 때 6·25 발발…하굣길에 아이 시체 봐"

"당시 잘 몰랐지만…트라우마로 성격 변해"

이후 직업군인 길 선택…"이 한 몸 나라에"

"날 업어 키운 넷째 형 행방불명…보고파"

[서울=뉴시스]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22일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은 원산의 아이들(1950.10.31).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2018.06.22.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사진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22일 공개한 사진이다. 사진은 원산의 아이들(1950.10.31).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2018.06.22.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홍연우 우지은 기자 =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국민학교 2학년이었죠. 학교를 가려면 시오리길을 왕복해야 했는데, 중간에 산이 하나 있었어요. 하굣길에 그 산을 지나다 네다섯 구의 어린아이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걸 보고 놀라 집까지 뛰어온 기억이 납니다. 그 후에 낮엔 군인들 군가소리, 밤이면 총소리가 울리며 마을이 완전히 풍비박산 났죠."

24일 6·25전쟁 발발 74주기를 하루 앞두고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는 가운데, 직접 전쟁을 겪고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다시 총을 든 '시니어'를 만났다. 전쟁으로 아빠처럼 따르던 넷째 형을 잃어버렸다는 박선협(83)씨는 "아직 전쟁 트라우마가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이 한 몸 바쳐 나라를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 장노년 민간 예비군 단체 '시니어 아미'(Senior Army) 회원으로 활동하는 박씨는 지난 21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전쟁을 겪으며 트라우마가 남았다. 성격도 방어적으로 변했고, 아직도 눈을 감으면 당시 인민군이 '애국가'라며 가르쳐 준 노래의 가사가 기억날 정도다. 노래는 '아침은 빛나…'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전남 해남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난 뒤 인민군이 우리 마을까지 내려온 적이 있다. 그들은 밤새 주민들을 불러 모아 집합을 시키곤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박씨는 "그때 부모님은 밤마다 경찰, 선생님들을 숨겨줬는데 그 분들이 고맙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헐레벌떡 집을 나서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6·25전쟁 당시엔) 너무 어려서 뭘 잘 몰랐다. 총에 맞으면 아프겠단 걱정은 했지만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당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전쟁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며 "아군과 적군을 구분해 돌격하고, 막대기를 들고 총 쏘는 시늉하곤 했다. 서로 욕하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는데 돌이켜보면 전쟁으로 받은 충격을 그렇게 나름의 방식으로 해소한 거 같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사진은 폐허가 된 원산(1950.11.08).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2018.06.22.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사진은 폐허가 된 원산(1950.11.08). 사진은 기사내용과 직접적인 연관 없음. 2018.06.22.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email protected]



그럼에도 상처는 남았다.

박씨는 "어릴 적 내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매우 격정적인 사람이 됐다. 방어적으로 변해 걸핏하면 화를 내고 목소리가 커진다"며 "성인이 된 이후 상담사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전쟁 당시 받은 충격은 나도 모르는 새 체질화 돼 고치기가 쉽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전쟁이 남긴 상흔에도 박씨는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어릴 때 6·25전쟁을 겪고, 이후 군인으로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내 한 몸 나라를 위해 바치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정신"이라며 "시니어 아미 설립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에 팍 꽂혀 바로 찾아갔다"고 했다.

이어 "점점 출생률이 낮아지고, 고령자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 않느냐"며 "결국 저를 포함해 나이 든 사람들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국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6·25전쟁 발발 74주기를 앞두고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는 가운데, 직접 전쟁을 겪고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다시 총을 든 '시니어'를 만났다. 전쟁으로 아빠처럼 따르던 넷째 형을 잃어버렸다는 박선협(83)씨는 "아직까지 전쟁 트라우마가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이 한 몸 바쳐 나라를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시니어 아미'와 함께 사격 훈련 중인 박씨. (사진=박선협씨 제공) 2024.06.24.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6·25전쟁 발발 74주기를 앞두고 북한의 도발이 잇따르는 가운데, 직접 전쟁을 겪고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다시 총을 든 '시니어'를 만났다. 전쟁으로 아빠처럼 따르던 넷째 형을 잃어버렸다는 박선협(83)씨는 "아직까지 전쟁 트라우마가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이 한 몸 바쳐 나라를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시니어 아미'와 함께 사격 훈련 중인 박씨.  (사진=박선협씨 제공) 2024.06.24. *재판매 및 DB 금지


은퇴 이후에도 박씨는 계속해서 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가 가입한 시니어 아미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간 단체로, 지난해 6월 창설 이후 모인 회원만 수천 명에 달한다.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가입에 나이나 성별 조건은 없다. 최고령 가입자는 98세, 최연소 가입자는 38세다.

이들은 '나라가 부르면 우리는 헌신한다'는 기치 아래 자체적으로 훈련을 진행한다. 이들은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사격 훈련을 진행하고, 모의 전투를 벌이며 유사시 병력으로 동원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9살이던 소년이 이젠 83살 노인이 됐지만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아픔은 여전하다. 13남매 중 막내인 박씨는 인터뷰 말미 6·25전쟁으로 행방불명된 넷째 형 이야기를 하며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추기도 했다.

그는 "나를 업고 다니던, 그런 큰 형이었는데 전쟁으로 생사를 알 수 없게 됐다"며 "너무 보고 싶어 살아만 있어 달란 마음으로 이산가족 찾기 신청도 해봤는데 결국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형이 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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