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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대책 나올까" 자영업자의 한숨 [北 대남방송 7개월①]

등록 2025.01.25 08:00:00수정 2025.01.25 10: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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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으로 관광업 타격… 자영업자 생계 위기

방음 창호만으로 해결 못 해…실질적 지원책 시급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23일 오후 인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의 야산에 대남 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2025.01.23. dy0121@newsis.com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23일 오후 인천 강화군 송해면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개풍군의 야산에 대남 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2025.01.23. [email protected]


[인천=뉴시스] 김동영 기자 = "'내가 죽어야만 대책을 마련해 주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생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됩니다."

지난 23일 오전 5시16분께 여명이 채 밝지 않은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고려천도공원. 한적한 시골 마을의 고요함을 깨뜨린 것은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영하의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새벽. 한적했던 마을은 갑작스러운 소음으로 뒤덮였다.

북한을 마주한 철책 너머로 기계가 돌아가는 낮은 굉음, 바람 소리에 섞인 사이렌 소리가 기묘하고 을씨년스럽게 다가왔다.

기괴한 소리는 바람결을 타고 들쭉날쭉하게 이어졌다. 매섭게 찬 공기를 따라 불어오는 이 기묘한 음향은 그 자체로 주민들의 삶을 옥죄었다.

삭막한 철책과 음산한 소음이 어우러진 풍경은 더 이상 평범한 농촌마을의 새벽이 아니었다.

적막과 소음이 만들어낸 공허함과 긴장감은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주민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25일 강화군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강화군 북단 송해면과 양사면 일대에서는 북한의 대남 방송이 밤낮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대남 방송 소음은 2~3시간 간격으로 반복되며, 중간의 짧은 정적을 제외하면 마을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

특히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소리가 더욱 커져 주민들을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소음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북한과 맞닿아 있는 송해면 당산리다.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남 방송 소리가 너무 심해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소음 때문에 가족 모두가 지친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는 주민들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일부 주민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상황이다.

이에 강화군은 소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당산리 주민 35가구를 대상으로 방음 창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군은 3억5000만원의 예비비를 긴급 투입해 방음 창호 설치를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소음 차단을 위한 강화군의 대응으로 주민들의 일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남 방송 소음은 단순히 주민들의 삶을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귀신 소리가 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광지로서의 명성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송해면과 양사면 일대의 야영장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캠핑장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소음이 너무 심해 손님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이 없다 보니 캠핑장에 상주할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며 "(캠핑장에 거주할 수 있는) 집도 없고 손님도 없는데 캠핑장에 우두커니 있을 이유가 없다"며 "월세는 계속 나가는데 수입이 없다 보니 빚만 쌓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주는 강화군과 국방부에 민원을 넣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국방부에서도 '지원 방안이 없다'고만 하더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업주는 "내가 죽어야 대책을 마련해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생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며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남방송의 장기화로 인해 지역 경제와 자영업자들의 손실은 방음 창호 설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깊은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강화군이 주민들을 위해 방음 창호를 설치하는 등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지만, 자영업자들에 지원 대책은 전무한 상태다.

강화군과 인천시는 단순한 방음 대책을 넘어 관광업의 신뢰를 회복하고, 자영업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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