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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도 좋아한 '해뜰날'…'자수성가' 송대관, 가난한 이들 희망 노래했다

등록 2025.02.07 12: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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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심장마비로 돌연 별세

1990년대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기도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송대관.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해뜰날' 중)

7일 심장마비로 별세한 가수 송대관(79)의 대표곡 '해뜰날'(1975)은 빈자(貧者)들의 희망가로 통한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이 노래는 위로이자, 앞날을 꿈꾸게 하는 빛나는 등불이었다.

작곡가 신대성이 멜로디를 붙이고 송대관이 작사한 이 곡은 가난하게 자란 가수 본인의 애환이 묻어나 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한 송대관의 어린 시절은 무척 살림살이가 팍팍했다. 가수 성공을 목표로 상경할 당시에도 표 살 돈이 없어 무임승차를 할 정도였다. 1992년 발표한 '차표 한 장'이 크게 히트한 이후 서울역에 차비를 몇 배로 돌려준 사연은 유명하다.
[서울=뉴시스] 송대관 '해뜰날' 커버.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송대관 '해뜰날' 커버.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게 자수성가한 가수의 상징이 된 송대관의 '해뜰날'을 역시 혼자 힘으로 성공한 기업인들도 좋아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전 명예회장이 대표적이다. 강원 빈농의 가정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한국 대표 기업을 이끌었던 그는 전형적인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 정 전 명예회장은 직원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꼭 이 노래를 불렀다.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는 "'해뜰날'은 1970년대에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경제 개발시대에 주제가처럼 불렸다"면서 "이 노래에서 '쨍'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했다.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시대의 응원가'였다"고 짚었다.

하지만 송대관 대표곡 중 하나인 '네박자'를 빌리자면, 인생은 항상 정박자가 아니다. 송대관 삶에서 우여곡절은 이어졌다. '해뜰날'로 가수왕까지 됐지만 결혼 이후 그의 삶은 해가 지기 시작했다. 컬러 TV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수입원인 공연 시장이 이전까지 않자 송대관은 잠실 등지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 1976년 10월30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상을 수상한 고(故) 송대관. (사진=MBC 제공) 2025.02.07

[서울=뉴시스] 1976년 10월30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상을 수상한 고(故) 송대관. (사진=MBC 제공) 2025.02.07

이후 처가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1980년대엔 미국에서 살았다. 전두환 정권 시대인 지라, 혹자는 고인이 민주화 운동을 한 것이 아니랴고 추정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던 송대관은 샌드위치 가게, 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그러다 향수병이 도져 귀국해 '차 표 한장' 등의 히트곡을 내며 1990년대를 풍미한 '트로트 4대 천왕'(현철·설운도·송대관·태진아)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2010년대엔 또 그의 삶에서 해가 졌다. 2013년 아내의 부동산 등의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휩싸인 것이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500억원대 재산이 은행 등에 넘어갔고 280억원 대의 빚을 지기도 했다. 이후 고령의 나이에도 행사장 등을 누비며 변제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기도 한 송대관은 가수들의 권익과 위상 정립을 위해서도 앞장섰다. 가수 남진에 이어 2008년 대한가수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서울=뉴시스] 송대관, 남진.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송대관, 남진. (사진 =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제공) 2025.02.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회장 취임 직후 송대관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제 신조가 '인조이 마이 라이프(Enjoy my life)'다. 재방송 없는 인생, 열심히 살아도 늘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 부족한 것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 작사가, 작곡가, 연주인, 제작자, 방송인 등이 모두 힘을 합쳐 나아가다보면 보다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온다." '해뜰날'의 세계관을 담은 것처럼 긍정으로 넘쳤다.

2001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들에게 수여되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최근 컨디션 난조를 호소한 송대관은 전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치료를 받다 이날 오전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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