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지워진 이름, 무대서 만나다…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객석에서]
이상훈 작가 동명 소설 원작…역사 속에서 사라진 장영실 추적
1막은 조선·2막은 유럽 배경…장영실이 다빈치 만났다는 설정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 눈길…대취타·밀양 아리랑 활용한 음악도
1인 2역 소화하는 배우들 열연…급격한 전개와 마무리는 아쉬워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한복 입은 남자 그의 흔적을 쫓아…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서 끊임없이 손을 뻗어 세상의 끝에 몸을 던져 한복 입은 남자"(넘버 '한복 입은 남자' 中)
역사 속에서 지워진 이름이 한국 뮤지컬 무대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은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노비 출신인 장영실은 천문, 과학 기술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종3품 대호군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1442년 장영실이 감독한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가 부서지는 사건이 발생한 후 곤장 80대형에 처해졌다는 기록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작품은 장영실과 세종은 물론 비망록의 진실을 추적하는 학자 강배와 비망록 속 진실을 좇는 방송국 PD 진석 등을 통해 '역사 이후의 장영실'의 삶을 파헤친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장면 (사진=EML뮤지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막은 조선을 주 무대로 사실에 기반한 장영실의 삶을 따라간다. 무대 위에는 자격루, 혼천의, 신기전 등 장영실의 발명품이 재현되며 그의 업적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사람들을 돕고자 했던 장영실과 세종이 나누는 우정도 애틋하게 그려진다. 또한 부서진 안여 사건은 세종이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해 꾸민 선택으로 해석돼 둘의 관계에 더 깊은 정서를 입힌다.
2막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장영실이 대신들의 모함을 피해 이탈리아로 건너갔다는 상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장영실이 피렌체에서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 그의 스승이 되고, 조선 초기 과학을 유럽에 전파했다는 '과감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서양인이 그린 최초의 한국인 그림으로 알려진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 모델 역시 장영실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대담한 서사 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화려한 무대 디자인이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조선과 유럽 등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계속해서 변주되는 가운데 무대는 장면마다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무대에 구현된 경복궁 근정전은 마치 그 안에 들어와있는 듯한 입체감을 주고, 2막에서 선보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도 상징적인 건축미를 그대로 옮겨와 몰입감을 한층 끌어 올린다.
'대취타'와 '밀야 아리랑' 등을 한국적 요소를 가미한 음악도 극을 더 풍성하게 한다.
세종이 장영실을 보내며 부르는 '너만의 별에'나, 조선을 떠나야만 하는 장영실의 심정을 담은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같은 넘버는 인물의 선택과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다만 방대한 분량의 원작 소설을 무대로 옮기면서 2막 이야기가 급격하게 전개되다 마무리되는 인상을 남긴다. 인물들에 대한 서사와 감정선을 따라가기에는 설명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공연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럼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이러한 서사의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우며 무대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특히 이탈리아에 남은 장영실이 조선과 그곳에 두고 온 사람들을 떠올리며 부르는 '그리웁다'는 천재 과학자가 아닌 외로움과 그리움에 아파하는 인간 장영실의 내면을 오롯이 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꿈과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처한 위치에 따라 이를 펼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장영실'은 없는지도 생각해볼만 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모든 배역이 1인 2역을 맡아 과거와 현대를 넘나든다. 과학자 영실과 학자 강배 역에는 박은태·전동석·고은석이 연기한다. 세종과 방송국 PD 진석 역은 카이·신성록·이규형이 맡았다.
공연은 내년 3월 8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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