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군 3월 독립운동가에 대술면 이승복 선생 선정
한말 애국지사 손자,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창립
항일 언론 '청구신문 발간' 등 언론·교육가로 활동
![[예산=뉴시스] 충남 예산군 2026년 3월 독립운동가 이승복 선생. (사진=예산군 제공) 2026.03.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3/12/NISI20260312_0002082627_web.jpg?rnd=20260312173407)
[예산=뉴시스] 충남 예산군 2026년 3월 독립운동가 이승복 선생. (사진=예산군 제공) 2026.03.1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895년 대술면 상항리에서 태어난 이승복(李昇馥) 선생은 한말 애국지사 이남규 선생의 손자다.
그는 형 이민복과 함께 러시아 노령과 북만주로 이주해 이동녕·이회영·이시영·이상설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모색했다.
1920년에는 박은식과 함께 ‘청구신문’을 발간해 항일 언론 활동도 펼쳤고 일제 경찰에 체포돼 6개월간 구금되기도 했다.
그는 또 같은 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된 대한국민군 지원을 위해 김병희와 함께 귀국, 군자금 모집 활동 등을 벌였다.
1921년에는 이시영·조완구·조소앙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연통제 조직 결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1926년 사상단체 정우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민족협동전선 단체인 신간회 결성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1927년 1월 신간회 창립 발기인으로 참가한 그는 같은 해 2월 이관용·권태석 등과 함께 예산지회를 조직했다.
뒤이어 그는 동아일보 이사 겸 영업국장으로 재직하며 민족의식 고취와 청년 독립운동가 양성, 교육 활동에 힘썼다.
1951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연구하다 1978년10월31일 서울에서 서거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은 정부로부터 서훈받은 군 출신 독립운동가를 매달 한명씩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해 기리고 있다"며 "이승복 선생은 민족협동전선 신간회 창립 이끈 예산이 낳은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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