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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작가 박찬경, ‘눈을 뽑은 회화’ 작가 변신…‘안구선사’

등록 2026.03.19 14: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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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서 9년 만의 개인전

사찰 벽화·민화 차용한 회화 20여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찬경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3.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찬경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3.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눈은 뽑혔고 칼은 바닥에 꽂혔다. 그리고 한 남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걸어간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에서 열린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는 다소 잔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9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최근 작업한 회화 20여 점으로 구성됐다.

미디어 영상 작업으로 더 널리 알려진 박찬경(61)이 회화로 돌아왔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이기도 한 그는 2011년 형과 공동 연출한 단편영화 ‘파란만장’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바 있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박찬경은 “미술의 출발이 그림이었기 때문에 회화는 항상 고향 같은 존재”라며 “회화가 저항이냐, 회귀냐고 구분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온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품 ‘안구선사’는 중국 당나라 승려 ‘구지선사’ 일화를 변형한 것이다. 모방하던 동자의 손가락 대신 눈이 뽑힌다.

작품은 위아래가 병치된 만화적 화면 구성이다. 얼굴을 가린 채 칼을 든 승려와 눈이 뽑힌 동자승이 한 장면에 놓인다. 손에 들린 눈은 피를 흘린 채 또 하나의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이 장면은 공포라기보다 기묘한 평온 속에 머문다.

뽑힌 눈은 더 이상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대상이 되고, 바닥의 눈은 ‘땅의 눈’처럼 세계를 대신 바라본다. 보는 주체는 사라지고 시선은 외부로 흘러나온다. 그 사이를 수행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지나간다. 폭력 이후의 평온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남는다.

“눈이 뽑히는 설정은 일종의 자기풍자입니다. 한국 문화에는 해학과 풍자의 전통이 강합니다. 특히 민화에는 자기를 낮추고 비트는 태도가 있습니다.”

박찬경은 “그런 해학에는 자조적 요소가 있다”며 “스스로를 웃음의 대상으로 삼는 전통을 다시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각예술가는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비틀고 풍자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박찬경 개인전 '안구선사'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세 점으로 구성된 ‘눈’ 연작은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빛을 방사하던 눈은 곧 대상이 되고, 다시 광선을 쏘는 장치로 변한다. 시선은 인식이 아니라 작동이며, 중립이 아니라 개입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우리가 세계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매개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전쟁으로 불타는 현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본다”며 “요즘의 시각은 중노동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회화 작업으로 이어진다. 화면에는 돌처럼 보이는 형태가 층층이 쌓여 있고, 옆에는 날짜가 적혀 있다. 작가는 이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매일 이어지지 못한 시간까지 포함된 이 축적은 반복과 중단의 기록이다.

그는 이를 ‘헛수고’라고 부른다. “미술은 효율과 기능에서 벗어난 영역”이라며 “돌을 쌓는 일은 헛수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기도와 정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란사〉 2024 Oil on canvas 70 x 70 cm (3 panel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란사〉 2024 Oil on canvas 70 x 70 cm (3 panel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성 미술'이라고도 표현한 이번 전시는 종교적 이미지와 신체 훼손,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교차시키며 시선의 구조를 해부한다. 일부 장면은 직설적으로 읽히지만, 디오라마적 구성과 반복되는 ‘눈’ 모티프를 통해 개념적 긴장을 유지한다.

전통 이미지의 재조합도 특징적이다. 사찰 벽화와 조선 민화를 차용하면서도 이를 문화유산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탱화, 민화, 만화적 형식이 뒤섞이며 숭고와 유머, 그로테스크가 공존한다. 전통은 계승이 아니라 변형되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불교 고사를 변형한 ‘혜가단비도’, ‘혜통선사’ 등은 수행과 폭력, 깨달음과 희극이 공존하는 ‘선불교적 그로테스크’로 확장된다.

‘족자’ 연작은 동서양 회화의 경계를 흔들고, ‘괴석’과 ‘프로젝션’ 연작은 인간 중심 시선을 벗어난 풍경을 제시한다. 특히 괴석은 ‘인류 이후의 세계’를 암시한다.

천주교 집안에서 성장했고 불교 신자는 아닌 그는 사찰을 오가며 작업을 이어왔다. “전통을 다루면서 그림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며 “민화와 산수화를 다시 보게 됐고, 그림을 그림으로 해석하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관람은 무료.
혜가단비도 2026 Oil on canvas 130.5 x 194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혜가단비도 2026 Oil on canvas 130.5 x 194 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국제갤러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찬경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고자” 준비한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3.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박찬경 작가가 19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졸고 있는 전통의 관념과 이미지들을 깨우고자” 준비한 개인전 '안구선사(眼球禪師)'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6.03.19. [email protected]


박찬경 작가는?

1965년생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박찬경은 198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 예술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사진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분단과 냉전, 전통과 민간신앙을 주요 주제로 작업해온 그는 영상, 사진, 설치를 넘나들며 한국과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탐구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19’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Park Chan-kyong: Gathering’(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 워싱턴, 2023), ‘안녕 安寧 Farewell’(국제갤러리, 2017), ‘신도안’(아뜰리에 에르메스, 2008) 등이 있다. 또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25),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 타이베이 비엔날레(2016)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참여했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2014)의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국제갤러리 한옥 기획전 ‘아득한 오늘’(2025)을 선보이는 등 기획자로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테이트 모던, 카디스트(KADIST), M+ 등 국내외 주요 기관에 소장돼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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