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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윤수일, 시대 外力 관통한 경계인…데뷔 50년에 마침내 '오리지널'

등록 2026.04.17 17: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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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없는 사운드로 韓 시티팝 원형 빚어내

음악 나이 지천명(知天命)에 현재진행형 나침반

5월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서 50주년 전국 투어 포문 열어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모든 건축물은 외력(外力)과 내력(耐力)의 싸움이다.

시대의 유행, 급변하는 기술, 좁은 시장이라는 거센 외력 앞에서도 결코 붕괴하지 않는 세계가 있다. 올해로 데뷔 49주년, 다가올 50주년을 앞둔 싱어송라이터 윤수일(69)의 음악이 그렇다. 후배 가수인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로제(Rosé)의 '아파트(APT.)'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고 그의 1982년작 '아파트' 역시 '구축 아파트의 재건축'으로 불리며 역주행했다. 그러나 이 유쾌한 소동은 단지 우연한 외풍이 아니다. 도리어 윤수일이라는 아티스트가 반세기 동안 겹겹이 쌓아 올린 견고한 내력이 세상에 다시 증명된 사건에 가깝다.

지난해 11년 만의 정규 25집 '2025 우리들의 이야기' 발매에 이어 오는 5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50주년 전국투어 '디 오리지널(THE ORIGINAL)'의 포문을 여는 윤수일을 최근 충무로에서 만났다. 아날로그의 낭만부터 디지털의 속도전까지 생략 없이 관통해 온 이 거장은, 자신의 음악적 원형질을 "우주처럼 넓은 고독"이라 칭했다.

"뼈를 깎는 고독을 감내하며… 음악은 빚을 갚는 일"

윤수일은 반세기를 지탱해 온 철학에 대해 "음악을 무척 사랑한다"는 소박한 진심을 꺼냈다.

"항상 음악에 정진하고 싶고, 그러면서 '음악이라는 것이 우주처럼 넓으니까 거기에 저만의 어떤 길을, 또는 스타일을 개척해 나간다'는 그런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것 같아요. 예술가는 고독이 숙명이라고는 하지만 그 고독이 사실 쉽지는 않잖아요. 바탕이 되는 음악을 만들 때의 어떤 뼈를 깎는 아픔이랄까, 고독이랄까 이런 거는 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잘 감내해서 왔던 것 같습니다."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시대의 한계 앞에서 좌절한 적도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시장도 좁고 영어권도 아니기 때문에, '시장이 좀 더 넓었으면 좋겠다.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다'는 생각에 열정을 다른 곳에 쏟을까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를 다시 무대로 돌려세운 것은 부채 의식, 즉 타자를 향한 윤리였다.

"저 같은 케이스는 데뷔곡('사랑만은 않겠어요')으로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빚을 졌고, 그 감사의 표현은 역시 내가 힘들더라도 음악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로제의 '아파트' 열풍에 자신이 재조명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할 따름이며, 곡들마다 가지는 운명이 있다"고 관조했다. 50주년 콘서트 타이틀을 '디 오리지널(THE ORIGINAL)'로 명명한 것 역시 "원론적으로 돌아가 원래 제 음악적 스타일을 들려드리고, 원곡에 가까운 무대를 펼쳐보겠다"는 본질에 대한 탐구다.

경계인의 예술…록 트로트와 시티팝의 혁신

윤수일은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데뷔 후 아날로그, 디지털의 음악적 변혁기를 겪으면서 밴드 음악을 바탕으로 정진해 왔다. 특히 자신의 밴드를 이끈 1980년대 당시 신시사이저 활용 등 상당히 앞서가는 음악을 했다. '아름다워'와 '아파트'를 비롯 자신이 부른 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

1982년 발표한 정규 2집 타이틀곡 '아파트'는 국민 응원가로 통하고, 1984년 발표한 3집 타이틀곡인 '아름다워'는 MZ세대에서 '한국 시티팝 원조'로 통하며 디깅(digging)돼 재조명됐다. 한국적인 음악을 하되 기존 가요 역사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지향점이 그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본인의 시그니처인 록 트로트 장르에 클래식을 접목해 고급스러움을 더하는 등 전통과 변주의 이중주도 해왔다.

윤수일의 디스코그래피는 익숙한 것들을 충돌시켜 낯선 미학을 탄생시킨 '경계의 예술'이다. 서구의 록 사운드와 한국의 전통적 정서(트로트)를 결합한 '록 트로트'의 창시자인 그는, 특정 장르의 문법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았다.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9살 때까지 경남에서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제 음악의 밑바닥에는 트로트 풍, 소위 '뽕끼'가 내재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이 흘러가는 유행을 답습할 게 아니라 음악적인 변화, 혁신을 하는 것이 가수로서의 긍지라고 생각했죠. 록 스피릿에 어떻게 트로트가 들어가냐 하겠지만, 록 스피릿은 어차피 우리 한국에서 나온 정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경계를 허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장점과 우리의 것을 믹스해 우리 사회 입맛에 맞는 음악을 만들고자 한 결과물입니다."

1984년작 '아름다워' 등을 통해 '한국 시티팝의 원조'로 재조명받는 서사 또한 흥미롭다. 급격한 산업화 속 청춘의 불안과 공허를 세련된 신시사이저 사운드로 포장해 낸 그의 감각은 철저한 시대의 기록이었다.

"1973년 가방 하나 둘러메고 스카라 극장 앞 고속버스에서 내렸을 때의 그 심정, 정말 불확실한 세상에 던져졌는데 어떻게 헤쳐 나가야 되나 하는 불안감을 담고 싶었습니다. 당시 '아름다워'는 펑키(funky) 사운드로 접근했는데, 편곡과 연주가 너무 어려워서 한 5년 동안은 국내 연주자들이 연주를 못 해 거의 버리다시피 한 실패작이라 생각하기도 했죠.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연주자들이 발전하면서 결국 그 편곡이 잘 된 것이라는 평을 받게 됐습니다."

윤수일은 소리의 공간감을 빚어내는 데 있어서도 타협이 없었다. 1980년대 밴드를 이끌며 열악한 국내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할리우드 악기점에 가서 해외 콘서트 사진을 보여주며 직접 모니터 스피커 통을 만들어 차에 싣고 다녔을" 정도로 사운드 프로듀싱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한눈팔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내력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수일. (사진 = ㈜윤수일 제공) 2026.04.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과거의 영광을 소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윤수일은 정규 25집 '2025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했다. 타이틀곡 '꿈인지 생신지'를 비롯해 '살아있다는 것으로',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등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며 현재진행형 뮤지션으로서의 날 선 감각을 증명했다.

그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혹독하리만치 단순한 수행의 반복에 있다. "자기가 하던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다짐하죠. '게으르지 말자. 그리고 내 가는 길을 한눈팔지 말자.' 제가 요즘 새로 나오는 친구들의 음악적 감각도 후배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50주년 공연에 대해 그는 "평생 딱 한 번뿐인 공연에 걸맞은 내용을 착실히 준비해 '아직도 윤수일이 살아있네'라는 소리를 꼭 듣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음악 나이 지천명(知天命), 반세기를 걸어오며 마침내 하늘의 뜻, 즉 음악의 정답을 알게 됐을까. 그는 정답을 내어주는 대신 끝없는 길을 가리켰다.

"음악은 우주같이 넓어서 정답이 없습니다. 그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50주년이 왔고, 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는 게 저의 답입니다. 없는 정답을 찾아서 지금도 꿋꿋이 걸어가는 순례자, 그렇게 표현하시면 좋겠습니다."

유행이라는 외풍은 언제나 거세게 불어오고 또 흩어진다. 그러나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우주를 팽창시켜 온 순례자의 음악은, 어떤 거대한 외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력(耐力)이 돼 우리 곁에 굳건히 서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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