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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극사실회화의 힘…'아이스캡슐' 작가 박성민의 '진화'

등록 2026.07.18 06:00:00수정 2026.07.18 06:30:25

'아이스캡슐' 넘어 도자기 표면으로 확장한 시선

'시선이 사유가 될 때'…슈페리어갤러리서 개인전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_32×32cm_2026 *재판매 및 DB 금지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_32×32cm_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멀리서 보면 단색의 추상회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화면은 전혀 다른 풍경을 드러낸다.

도자기의 기포와 티끌, 미세한 균열, 유약이 흘러내린 흔적까지. 고해상도 사진을 출력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지만 모두 붓으로 그린 그림이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재현은 인간의 손이 어디까지 정교해질 수 있는지를 넘어, 인간의 시선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서울 강남 슈페리어갤러리는 오는 21일부터 박성민 개인전 '시선이 사유가 될 때(When the Gaze Becomes Thought)'를 개최한다.

'아이스 캡슐' 연작으로 이름을 알린 박성민(58)은 얼음 속 딸기와 블루베리 등 과일과 식물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사진보다 더 생생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은 발표와 동시에 판매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0여 년 이어온 극사실의 대상은 2024년부터 달라졌다. 과일 얼음 대신 도자기 표면의 기포와 균열, 유약의 흔적을 집요하게 관찰해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형태는 추상이 됐지만, 그리기는 더 극단이 됐다.
 
변화한 것은 대상이지 시선은 아니다. 박성민은 여전히 사물을 오래 바라보며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감각을 회화로 옮긴다.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 부분 확대. 도자기 표면의 티끌 균열까지 그대로 담아내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 부분 확대. 도자기 표면의 티끌 균열까지 그대로 담아내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신작 'Evolution'은 언뜻 거대한 색면추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화면을 이루는 색과 질감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도자기 표면을 집요하게 관찰한 결과다. 기포와 균열, 유약의 번짐을 극도로 확대하는 순간 형상은 사라지고, 물질이 품은 시간과 흔적만 화면에 남는다. 극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였더니 추상이 나타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그리는 걸까.

박성민은 이를 단순한 극사실의 확장이 아니라 '보는 방식의 변화'라고 했다.

"사람들은 스쳐 본 순간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모든 사물은 양파껍질처럼 수많은 층위를 품고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시각만으로 그 본질을 안다고 착각한다"며 "내 작업은 무엇을 쉽게 파악하는가보다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인식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초기 작업이 사물에 직접 접근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의 작업은 몇 번의 시각적 레이어를 거쳐야 비로소 의미에 도달하는 간접적인 접근"이라며 "표면의 질감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극사실은 추상의 영역으로 옮겨간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형태보다 '부분'에 집중한다. 도자기의 표면은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 물질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풍경이다. 극사실은 더 닮게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쉽게 판단하는 인간의 인식을 잠시 멈춰 세우는 장치가 된다.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_53×45.5cm_2026 *재판매 및 DB 금지

박성민_Evolution_Oil on canvas_53×45.5cm_2026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성민, Ice Capsule 100 x 100cm Oil on Canvas 2015.

【서울=뉴시스】박성민, Ice Capsule 100 x  100cm Oil on Canvas 2015.




이번 전시는 초기 '아이스 캡슐' 연작과 최근의 도자기 작업을 함께 선보이며 작가의 회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얼음을 그리던 화가는 이제 도자기를, 그 표면을 그린다. 하지만 그가 끝내 응시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이다.

AI가 이미지를 순식간에 생성하고 복제하는 시대, 회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성민은 그 답을 재현의 포기가 아니라 극사실의 끝에서 찾는다. 더 세밀하게 그릴수록 사물은 오히려 추상의 얼굴을 드러내고, 관람자는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작가는 작업노트에 "우리가 무심결에 스쳐 지나친 부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그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내 작업은 무엇을 쉽게 파악하는가보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형태보다 부분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 부분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전시 제목 '시선이 사유가 될 때'는 그의 회화를 가장 잘 설명한다. 박성민은 사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안다고 믿어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화가다.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한 박성민은 2003년 신사임당미술대전 대상, 2004년 동아미술상과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일찍부터 스타작가로 주목받았다. 2006년 첫 개인전 이후 1년마다 꾸준히 전시를 열어 이번이 17번째 개인전이다.

전시는 8월 10일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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