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청약이 그림의 떡이 된 이유
등록 2026.07.17 09:00:00
![[서울=뉴시스] 정진형 건설부동산부 기자](https://img1.newsis.com/2020/03/25/NISI20200325_0000501044_web.jpg?rnd=20200325172758)
[서울=뉴시스] 정진형 건설부동산부 기자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최근 한 유명 아이돌 가수가 서울 강남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는 설이 제기됐다. 박탈감을 느낀 청년층이 현행 청약 시스템에 불만을 쏟아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청약 제도에 대한 불신은 어느 때보다 높다. 잇따르는 청약 통장 해지, 이른바 '청포족' 물결이 그 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청약통장 전체 가입자 수는 2583만4034명으로 한 달 새 10만603명 감소했다.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로는 54만2334명 줄었다.
정말 청약 제도가 범인일까. 불과 2~3년 전만 해도 '로또 청약' '줍줍'은 청약 과열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시세 차익 기대감에 누구나 청약을 시도하면서 번번이 청약홈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이 빚어졌다. 2024년 '동탄역롯데캐슬' 무순위 청약 때는 1가구 모집에 294만4780명이 몰리며 역대 최고 경쟁률을 찍었다.
로또 청약 논란으로 몸살을 앓은 뒤 청약 제도는 청년과 무주택자의 기회를 넓히는 방향으로 손질돼 왔다. 청약통장 가입,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수로 점수를 매기는 가점제 청약 제도에선 청년층이 당첨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에 민영주택 중소형 물량의 30%를 추첨제로 배정하고, 무주택 가구에게 우선 공급하게 했다. 해당 가수 역시 청년 무주택자에게 청약을 통한 내 집 마련 길을 열어주겠다는 제도 취지가 정상 작동했기에 당첨된 셈이다.
분양가상한제도 이번 논란의 본질에는 비켜서 있다. 분양가상한제는 땅값(택지비)과 건축비를 더한 금액 이하로 아파트 분양가를 제한하는 제도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무주택자가 주변 시세보다 싼 값에 주택을 공급받게 하자는 게 도입 취지다. 하지만 가파른 집값 상승세 속 분양가 억제로 인해 당첨만 되면 주변 단지 시세보다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로또청약'을 만드는 온상으로 지목됐다.
다만 분양가상한제가 사업성을 떨어트려 주택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은 받았을지언정 이번 청약 논란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분양가상한제로 시세보다 낮게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이 박탈감 논란을 촉발했다.
대출 규제는 이번 논란의 가장 유력한 범인으로 지목할 만하다. 지난해 잇따라 도입된 대출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가 6억원으로 묶였고, 고가 아파트는 가액대별로 2억원씩 한도가 줄어든다. 서울 전역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돼 주담대 담보인정비율(LTV)이 40%로 낮아졌고,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규제가 더해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3.3㎡(평)당 평균 분양가는 6165만원으로, 전월에 이어 역대 2위 가격을 찍었다. '국민평형'인 전용 84㎡ 기준으로 20억원을 훌쩍 넘기는 셈이다. 분양가상한제로 공급 가격을 억눌러도 대출 규제가 있는 이상 현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만 도전할 수 있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는 LTV 70%에 정책대출을 받지만 '그림의 떡'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주택 청년에게 대출 규제가 과도하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 다만 그렇다고 무한정 대출을 열어주는 것이 답이 아님은 분명하다. 2022년 코로나 엔데믹 이후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악화 속 무리한 대출로 내 집을 마련했던 '영끌족'이 고통을 겪었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청약 제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청년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기저에는 내 집 마련 사다리가 치워졌다는 불안감이 깔려있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내 집을 키워간다는 기성세대의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평균 상승률은 8.98%로 19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목돈을 마련하는 수단이던 전세도 전세사기 여파와 임대차시장의 '월세화' 흐름 속에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의 나라에서는 힘껏 달려야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 있다. 두배는 달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청약 제도는 기다리면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온다는 믿음이 기반이다. '더는 죽어라 달리지 않아도 된다' '믿고 기다리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청약 사다리를 복원하려면 결국 공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3기 신도시 착공률이 7%대에 머무를 정도로 주택 공급은 더디다. 정부가 예측 가능한 주택 공급을 가능케 하는 실행력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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