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함민복 13년 만의 시집 '물빛인쇄소'…자연에서 길어 올린 생의 이치

등록 2026.08.01 08:00:00

[서울=뉴시스] '물빛인쇄소' (사진=창비 제공) 2026.07.3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물빛인쇄소' (사진=창비 제공) 2026.07.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잔잔 잔잔 제 몸을 구부려/반짝 반짝 빛을 출력하는 바다//긴긴 가르침/곁에 있어도//마음에 마음을 문대보는 일/마음에 마음이 새겨지길 바라는 일//떨리고/아직 가슴이 타//눈물렌즈/사랑은 물빛인쇄소" ('물빛인쇄소')

시인 함민복이 13년 만에 시집 '물빛인쇄소'(창비)를 펴냈다. 강화도로 거처를 옮긴 뒤 마주한 바다와 숲, 나무를 오래 바라보며 길어 올린 시편들이다. 자연을 응시하던 시선은 삶과 죽음,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성찰로 한층 깊어졌다.

표제작 '물빛인쇄소'는 바다 위로 번지는 빛을 종이에 글자를 찍어내는 인쇄에 빗대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담는다. 자연은 더 이상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일깨우는 스승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자연과 끊임없는 교감은 시인의 펜이 멈출 수 없게 한다. 오랜 시간 자연을 관찰한 시인은 전진을 종용하는 속도의 시대에 반(反)하는 태도로 생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붓에 향이 차오를 때까지/붓이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목련나무' 중)
"꽃은 색의 세계에서 피어난 색이다//(중략) 꽃은/이별의/한복판이다"('허공을 받들며' 중)

이번 시집의 또 다른 중심축은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다. 시인은 죽음을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을 비춰주는 또다른 얼굴로 그리며 "죽은 나무에도 죽음이 살아있다"고 말한다.

"잠시 머물러 있음인/삶을 비춰주는 죽음 한그루/냄새 풍기지 않는 저잖은 삭음의 시간/산 나를 버리고 죽은 내가 되어본다"('죽은 나무' 중)

"죽음이 이리 왕성하게 살아 있어/죽음은 없다/삶은/없는 죽음을 담고/무겁게 들고 있는/공구함"('공구함' 중)

시인의 시선은 결국 사람에게 가 닿는다. 언  땅을 뚫고 돋아나는 새싹처럼 낯선 이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경계는 허물어지고 공동체는 다시 연결된다.

송현지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배제의 운동에 맞서 그는 몸을 돌리고 시선을 달리함으로써 서로 다른 존재들이 다시 서로를 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고 평했다.

이어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나고 얽힐 때, 그 만남은 막다른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길이 열리는 문이 된다"며 "'치열함'이란 상대를 제거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들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은 채 세계를 위한 '올곧은 방향'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