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 혐오의 시대 '듣기'라는 가장 압도적인 윤리
등록 2026.08.01 15:11:01
7월31일 롯데콘서트홀 첫 내한공연 현장 리뷰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 (사진 = 이다영 제공) 2026.08.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8/01/NISI20260801_0002201806_web.jpg?rnd=20260801145950)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 (사진 = 이다영 제공) 2026.08.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휘자인 슈나이더를 포함한 내로라하는 19명의 연주자가 뭉친 빅밴드가 무대 위에 구축한 것은 단순한 재즈가 아니었다. 그것은 음표들이 x축(시간과 선율)과 y축(수직적 화성)을 교차할 때, 지휘자의 손끝에서 z축(깊이와 공간감)이 피어나는 치밀한 '3D 사운드스케이프'였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공간을 조각하는 일'이라는 슈나이더의 지론처럼 이들의 무대는 소리로 그려진 캔버스라기보다 거대한 건축물에 가까웠다.
이날 무대는 유기적인 자연과 차가운 기술 사회라는 상반된 풍경을 입체적으로 교차시켰다. '블루버드(Bluebird)'에서 줄리앙 라브로(Julien Labro)의 아코디언이 아주 높은 음을 부드럽게 유지하며 새의 날갯짓과 생명의 환희를 그렸다면, 스캇 로빈슨(Scott Robinson)이 이끈 '스푸트니크(Sputnik)'는 12개의 조성을 반음씩 거치며 우주 쓰레기가 부유하는 디지털 세계의 외골격을 묘사했다.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듯, 금관악기들은 기하학적인 화성을 차갑게 쌓아 올리며 철저한 단절의 감각을 극대화했다.
공연의 철학적 중심이자 절정은 '아메리칸 크로(American Crow)'였다. 연주에 앞서 마이크를 쥔 슈나이더는 객석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거대 기술 기업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분노를 큐레이션(curated rage)하고 조종합니다.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서로의 소리를 듣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어진 연주에서 마이크 로드리게스(Mike Rodriguez)의 트럼펫은 대화를 복원하려는 듯 애절하고 끈질기게 선율을 이어가지만, 이내 리듬 섹션의 파괴적인 변박과 밴드 전체가 쏟아내는 불협화음의 굉음에 무참히 덮여버린다. 소통의 붕괴를 소리로 증명해 낸 섬뜩한 미학이었다.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07/01/NISI20260701_0002174395_web.jpg?rnd=20260701080052)
[서울=뉴시스] 마리아 슈나이더. (사진 = 플러스히치 제공) 2026.07.0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무대 위 조명이 객석을 비췄을 때, 19명의 연주자가 빚어낸 궤적은 관객들의 얼굴과 만나 비로소 완벽해졌다. 앙코르 '스톤 송(Stone Song)', '워킹 바이 플래시라이트(Walking by Flashlight)'를 앞두고, 슈나이더는 상기된 얼굴로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밤, 이 거대한 홀을 가득 채운 여러분의 고요하고도 짙은 경청이야말로 가장 압도적인 우리 음악의 일부였습니다. 데이터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호흡의 순간입니다." 완벽함만을 강요하는 세계에서, 기꺼이 서로에게 틈과 여백을 내어주고 아날로그적인 숨결을 섞는 이 조율의 과정은 다정한 위로가 된다. 타인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일, 그것이 혐오의 시대를 통과하는 가장 압도적인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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