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수식어 '안판석 드라마' 그건 최고라는 뜻이었다
등록 2026.08.12 19:54:33
드라마 거장 안판석 감독 12일 오후 별세
작가 중심 드라마 세계 유일한 거장 감독
MBC PD 출신 '하얀거탑'으로 이름 알려
이후 안판석 드라마 업계 보증으로 통해
2014년 '밀회' 큰성공, 드라마 수준 높여
유작 10월 방송 '연애박사' 마지막 인사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드라마는 흔히 작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많은 양을 단시간에 찍어내야 해서 소위 작가의 글발이 갖는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김수현 드라마나 김은숙 드라마 혹은 김은희 드라마 같은 말이 붙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마 국내에선 그의 작품에만 이런 수식어가 없었다.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온 작가들이 있었지만 그의 드라마는 그의 드라마로 불렸다. 안판석 드라마.
드라마 거장 안판석(65) 감독이 12일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았고 최근 뇌출혈이 겹치며 투병해왔으나 병세가 악화하며 이날 오후 별세했다.
1961년생인 안 감독은 1987년 MBC에 PD로 입사하며 드라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1991년 '고개숙인 남자'에 처음 연출로 참여했고, 1994년 드라마 '짝'을 만들기도 했다. 안판석이라는 이름을 내건 첫 작품은 1994년 베스트극장 '사랑의 인사'였다.
'안판석 드라마'라는 말이 처음 생긴 건 2007년 '하얀거탑' 때였다. 가족극와 로맨스물 일색이었던 시기에 들끓는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한 인간을 담은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최고 시청률 20.8%. 다만 이 작품은 숫자 이상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격적인 메디컬 드라마를 보여줬다는 점 그러면서 동시에 정치 드라마이자 법정 드라마를 완성해냈다는 점에서 드라마 감독으로서 최고 연출력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연 배우인 김명민은 국내 최고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이 됐고, 주제곡 'B Rossette'는 지금도 각종 광고·예능에서 종종 쓰이는 음악이다. '하얀거탑'은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연출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안판석 드라마'가 자리잡았다. 특정 직업군 세계를 최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영상화 하는 한편 동시에 인간 본성을 파고드는 통찰을 보여주고, 영화 못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게 안판석 드라마의 특징이 됐다. 2012년 '아내의 자격'을, 2013년 '세계의 끝'을 내놓은 안 감독은 2014년 '밀회'로 또 한 번 한국 드라마를 한 단계 도약시켰다.
'밀회'는 피아노 천재 이선재와 그를 지원하는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클래식 음악계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스무살 차이가 나는 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파격을 보여줬다. 단순히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청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이들의 사랑을 시청자에게 온전히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밀회'는 수준 높은 음악드라마이자 긴장감 넘치는 불륜드라마 그러면서도 가슴 아픈 성장드라마였다는 평을 아직도 듣고 있다. 이 작품은 '하얀거탑'에서 김명민이 그랬던 것처럼 유아인과 김희애를 배우로서 서너 단계 도약시켰다. 안 감독은 이 작품으로 역시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연출상을 받았다.
안판석 드라마가 생기면서 안판석 사단이라는 말도 생겼다. 안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한 정성주·김은 작가, 배우 박혁권·장소연·김창완·장현성·이무생·길해연·서정연·허정도 등이 안 감독과 함께 드라마를 만들었던 이들이다. 안 감독은 이들과 '풍문으로 들었소'(2015)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봄밤'(2019) '졸업'(2024) '협상의 기술'(2025) 등을 함께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제목 자체가 유행어가 된 작품이었고, '봄밤'은 로맨스에 여성연대를 담아낸 드라마였다. '협상의 기술'은 기업 인수·합병 과정을 드라마화 하는 최고 수준의 직업 드라마로 각광 받았다.
안 감독은 마지막 드라마를 만들어놓고 세상을 떠났다. 오는 10월 방송 예정인 '연애박사'다. 추영우와 김소현이 주연한 이 작품은 고등학교 때 수영선수였지만 병으로 한 쪽 다리를 잃은 박사과정생 민재와, 진로를 잃고 방황하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석사과정생 유진이 로봇 연구실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로맨스물이다. 이 작품은 촬영과 편집을 모두 마친 상태다.
'연애박사' 측은 "고인 가시는 길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깊은 슬픔에 빠진 유가족이 고인과 조용히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장례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하고자 하니 협조 부탁드린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준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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