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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해체한 음악의 영토…그래도 '인간의 서사'는 남는다

등록 2026.09.28 05:00:00

[AI & 음악]

'0원 저작권'부터 조각난 음원까지

알고리즘이 닿지 못할 '진짜 경험'의 프리미엄

[매사추세츠=AP/뉴시스] 2026년 1월13일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수노(SUNO)에서 AI 음악 곡이 만들어지는 동안, 다양한 악기의 오디오 파일 파형이 컴퓨터 화면에 표시돼 있다.

[매사추세츠=AP/뉴시스] 2026년 1월13일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의 수노(SUNO)에서 AI 음악 곡이 만들어지는 동안, 다양한 악기의 오디오 파일 파형이 컴퓨터 화면에 표시돼 있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의 물성(物性)이 다시 한번 거대한 해체의 용광로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바이닐(LP)과 카세트테이프, CD를 지나 디지털 스트리밍의 영토에 안착했던 대중음악은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AI)'이라는 알고리즘 안에서 무수한 데이터 파편으로 분해되고 재조립된다.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의 떨림이나 목을 긁어 나오는 가수의 숨소리 없이도, 단 몇 줄의 텍스트 프롬프트(명령어)만으로 매끄러운 멜로디와 화성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러나 멜로디의 무한한 팽창 뒤편에서는 '예술이란 무엇이며, 창작의 권리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문명사적 질문이 묵직하게 입을 벌리고 있다.

기술의 진보와 법·제도적 공백, 그리고 인간 본연의 예술적 진정성이 격돌하는 현주소와 향후 음악 생태계의 지각변동을 짚어봤다.

차트 진입 AI 음원…그러나 저작권은 '0원'

현실의 균열은 이미 차트 한복판에서 목격된다. 유튜브 채널 '조선힙합'을 운영하는 AI 작곡가 조선힙합이 지난 5월 생성형 AI로 제작해 발표한 곡 '마음의 숲'은 최근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의 톱100 및 일간 차트에 진입했다.

그러나 현행 국내 저작권법상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만을 저작물로 인정하기에, 조선힙합에게 돌아가는 '저작권료'는 0원이다. 그가 수령하는 몫은 오직 음반을 기획하고 음원을 출력·유통한 주체에게 주어지는 '음원 제작자로서의 저작인접권료'뿐이다.

음악의 형태를 띠고 차트에서 소비되지만, 법적으로는 그 누구의 '저작물'도 아닌 유령 같은 음악. 기술이 실재하는 현실과 제도의 지체(Time-lag)가 만들어낸 이 불협화음은 산업 전반에 거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기여'는 어디까지인가…음저협 규정 철회와 국회의 공론화

[매사추세츠=AP/뉴시스] 2026년 1월13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보스턴의 얼어붙은 보도에 대한 노래를 써줘…'라고 입력한 후 AI 음악 곡이 만들어지고 있는 초기 단계를 컴퓨터 화면이 보여주고 있다.

[매사추세츠=AP/뉴시스] 2026년 1월13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보스턴의 얼어붙은 보도에 대한 노래를 써줘…'라고 입력한 후 AI 음악 곡이 만들어지고 있는 초기 단계를 컴퓨터 화면이 보여주고 있다.

이 혼란을 수습하려던 국내 음악계의 첫 시도는 진통 끝에 멈춰 섰다. 국내 최대 저작권 신탁 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지난달 인간 창작자가 작사·작곡·편곡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경우 AI 활용 음악의 신탁 등록을 허용하겠다는 개정안을 발표했다가 불과 한 달 만에 전면 철회했다.

프롬프트만 입력해 만든 이른바 '딸깍 음원(100% AI 자동 생성물)'의 무분별한 유입을 막고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취지였으나, "사회적 합의와 입법적 결론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잘못된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국회와 주무부처 문화체육관광부의 제동에 부딪힌 것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지난 22일 열린 'AI 활용 음악 신탁 기준 마련 토론회'에서는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판별하는 정밀한 잣대가 집중 논의됐다. 발제자로 나선 김혜창 한국저작권위원회 정책연구본부장은 생성형 AI 산출물의 저작물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창작자의 '통제가능성'과 '예측가능성'을 짚었다.

단순 명령어 입력은 배제하되, 인간의 고유 저작물을 인풋으로 반영하거나 AI 산출물에 독자적인 수정·배열·선택을 가했을 때 비로소 창작적 기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곡 전체가 아닌 작사·작곡·편곡 등 파트별로 인간의 기여도를 분리 심사하고 허위 신고 시 위약벌을 부과하는 등 실무적인 정량·정성 평가 체계가 수면 위로 올랐다. '인간이 어디까지 개입해야 창작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법적 기술의 영역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파편화되는 음악 그리고 '귀속의 위기'

글로벌 산업 생태계 역시 근본적인 구조 재편에 직면했다. 이달 초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대음협)가 연 음악산업 전문 콘퍼런스 '2026 MWM'과 기술 포럼 등에서 공유된 지표들은 변화의 속도를 실감케 한다.

중국 최대 음악 플랫폼 텐센트 뮤직(TME) 도라 진(Dora Jin) 비즈니스 총괄에 따르면 플랫폼 내 신규 등록 음원 중 AI 비중은 2024년 5.2%에서 2026년 상반기 44.1%로 폭증했다. 불과 2년 만에 8배 이상 치솟은 수치다. 프랑스 스트리밍 서비스 디저(Deezer) 역시 하루 유입 음원의 절반에 가까운 7만 5000여 곡이 AI 생성 음원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고윤화 연구원. 2026.09.05. realpaper7@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고윤화 연구원. 2026.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문제는 이러한 양적 팽창이 원작자의 권리를 증발시키는 '귀속의 위기(Attribution Crisis)'를 낳는다는 점이다.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은 2028년까지 창작자에게 돌아가지 못할 글로벌 저작권 손실 규모를 약 18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음악의 정의 자체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데이터 표준화 기구(DDEX)에 참여하고 있는 AI 음악 기술 스타트업 뉴튠의 이종필 대표는 지난 6월 '뉴타입 엔터 서밋 2026'에서 "음악은 이제 고정된 성채가 아니라, 레고 블록처럼 쪼개져 AI의 '재료'로서 기능하는 파편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멜로디와 리듬, 보컬이 스템(Stem) 단위로 해체돼 새로운 AI 생성물의 원료로 쓰이는 생태계에서는, 미세한 단위까지 출처를 추적하는 '음악 단위 식별 구조(ISBC)'나 C2PA(콘텐츠 출처 추적) 같은 정교한 메타데이터 표준화가 생존의 전제조건이 된다.

투명성과 공존의 메커니즘…라벨링과 탐지 기술

산업계의 대응은 '금지'가 아닌 '투명한 통제와 공존'으로 수렴하고 있다. 텐센트 뮤직은 AI 음원과 인간 창작자의 정산 예산 풀(Pool)을 아예 분리하는 'AI 단독 업로드 채널'을 구축하고, 자체 플랫폼 '비너스'를 통해 합법적 데이터 학습과 워터마크 기술을 의무화했다.

글로벌 오디오 인식 기술 기업 에이시알클라우드(ACRCloud)의 토니 리 공동 창업자가 강조하듯, 기술의 역할 역시 사후적 단속을 넘어선다. AI 음악 탐지 엔진은 음원의 스템을 분리해 어느 구간에 AI가 개입했는지, 어떤 소스 플랫폼(수노(Suno) 등)을 거쳤는지를 가려내며 유통사와 플랫폼이 올바른 저작권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통계적 신호'를 제공한다.

표기(Labeling)의 표준화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와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등 글로벌 음악 단체들은 30년 전 '노골적 가사(Parental Advisory)' 경고문처럼 음원에 AI 개입 여부를 명시하는 2단계 라벨 도입을 제안했다. 텍스트 프롬프트 위주로 생성된 트랙에는 대문자 'AI(AI generated)', 인간이 주도하고 일부 표현적 요소에 기술을 빌린 트랙에는 소문자 'ai(AI assisted)'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투명성을 담보해 창작자와 리스너 모두에게 건강한 정보와 선택권을 건네겠다는 취지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알링턴 공연.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9.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알링턴 공연.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9.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풍요의 역설'…알고리즘이 닿지 못하는 '진짜 경험'과 서사의 프리미엄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완벽해질수록 예술의 가장 원초적인 가치는 반작용처럼 솟구쳐 오른다. 최선 하이브(HYBE) 헤드 오브 체어맨 크리에이티브 스태프 오피스(Head of Chairman Creative Staff Office)는 이를 경제학의 '풍요의 역설'로 설명한다. 자원이 무한히 흔해지면 그 물질의 한계 효용은 급락한다. AI가 매끄럽고 흠잡을 데 없는 멜로디 수십만 곡을 매일 찍어낼 수 있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인간 본연의 IP'와 '진짜 경험'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프리미엄을 획득한다는 통찰이다.

상반기 전 세계 상위 100개 투어 매출이 약 32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스트리밍의 양적 성장이 둔화하는 반면 피지컬 음반과 라이브 무대가 폭발하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와 결합된 도시형 축제 '더 시티(The City)' 프로젝트처럼, 특정 시공간에서 아티스트와 함께 호흡하며 새겨 넣은 '대체 불가능한 기억과 유대감'은 알고리즘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성역이다.

문화산업 사회학자인 고윤화 서울대 한류연구센터 연구원은 대중이 AI 음악 앞에서 느끼는 이질감의 근원으로 '서사(Narrative)'의 부재를 꼽는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이 전 세계 청자들의 심장을 울린 까닭은 일곱 청년이 현실 속에서 깨어지고 고뇌하며 부딪쳐 온 진솔한 삶의 궤적이 멜로디 이면에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만 부유하는 AI 음악에는 결핍과 고통, 치열한 극복이라는 인간적 맥락이 탈락해 있다.

고 연구원은 K-팝이 다자간 공동 창작과 디지털 플랫폼, 능동적 팬덤을 갖춘 '거대한 실험실'로서 AI를 가장 유연하게 흡수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신뢰는 기술의 개입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가시성(Visibility)', '설명 가능성(Explainability)' 그리고 수용자의 '선택권(Choice)'에서 피어난다고 짚었다.

결국 AI 시대의 음악은 기술과 인간의 적대적 대결이 아닌, 창작의 외연을 넓히는 도구와 그 도구를 쥐고 고뇌하는 인간의 관계 맺기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정제된 가상의 소리들이 디지털 광장을 가득 메울 때, 대중이 마지막 순간까지 갈망할 대상은 불완전한 인간이 땀 흘리며 토해낸 단 한 줄의 진솔한 노랫말과 그 삶의 궤적이다.

음악의 영토가 조각나고 재편되는 이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법 제도의 정비와 기술적 투명성의 확립은 기계를 통제하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깃든 '오리지널리티'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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