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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차려야 정성?…전통 차례상은 오히려 간소했다

등록 2026.09.24 07:00:00수정 2026.09.24 07:08:24

차례는 예를 올리는 의식…술·차·과일 정도

일반가정 차례음식, 종가보다 5~6배 많아

전통예법은 모자람 보다 넘치는 것 경계

[안동=뉴시스] 퇴계종가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6.02.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퇴계종가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2026.02.1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김진호 기자 = "차례는 본래 기일에 지내는 제사처럼 많은 음식을 차려 고인에게 대접하는 의례가 아닙니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돌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고 예를 올리는 의식에 가깝습니다. 차례상에 음식을 많이 올리는 것이 예의라는 인식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은 "차례와 제사는 애초부터 같은 의례가 아니며, 전통적인 차례 역시 지금처럼 수십 가지 음식을 차리는 형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차례(茶禮)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을 맞았다는 사실을 조상에게 알리고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반면 제사는 돌아가신 분의 기일에 고인을 추모하고 음식을 올리는 의례다. 그래서 설과 추석에는 '제사를 지낸다'기보다 '차례를 올린다'고 표현한다.

차례라는 이름도 차를 올리는 예에서 비롯됐다. 전통 예법서인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정초와 동지, 초하루와 보름 등에 사당을 찾아 햇과일과 차, 술 등을 올리는 내용이 나온다. 기일에 지내는 제사처럼 밥과 국을 비롯해 여러 제물을 차려놓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주자가례'에서 차례는 제례와 구분되는 '예(禮)'의 성격이 강했다. 술도 한 번 올리고 축문을 읽지 않는 등 절차 역시 비교적 간단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차례상에는 왜 이렇게 많은 음식이 올라가게 됐을까.

진성이씨 노송정 종택 설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진성이씨 노송정 종택 설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유통이 발달하면서 명절에 구할 수 있는 음식이 많아진 데다 조상을 잘 모셔야 한다는 마음까지 더해지면서 음식 종류와 양이 점차 늘어났다. 여기에 기일 제사상의 형식이 차례상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차례와 제사의 구분마저 흐려졌다는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2017년부터 제례문화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통 예서와 종가, 일반 가정의 설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를 비교·조사한 결과에서도 이런 변화가 확인됐다.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은 전통 예서와 종가의 차례상에 비해 평균 5~6배 가량 많았다.

반면 전통 예법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르는 종가에서는 지금도 술과 떡국,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비교적 간소한 형태의 차례상을 마련하는 사례가 있다. 진성이씨 문중에서는 퇴계종가가 '주자가례'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는 사례로 꼽힌다.

김 연구위원은 "저의 강의를 들은 분 가운데 '무조건 많이 차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강연을 듣고 며느리에게 차례상 음식은 줄이라고 했다'는 분도 계셨다. 같이 모여서 먹는 명절 음식이나 조금 준비하고, 먹지도 않는 탕 종류는 아예 빼기로 했다는 분도 있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광산김씨 유일재 종택 설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산김씨 유일재 종택 설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차례상을 둘러싼 대표적인 통념 가운데는 전통 예서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것들도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와 '조율이시(棗栗梨柿)'가 대표적이다.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고 대추·밤·배·감을 차례로 놓는다는 방식이다.

하지만 '주자가례'에서는 대추·밤·배·감 등 특정 과일을 지정하지 않고 '과(果)'라고 표현한다. 생선 역시 조기나 방어 등 특정 생선이 아니라 '어(魚)'라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세세한 진설법 상당수가 '주자가례'에 그대로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후대 관습이나 지역·가문별 전승이 더해지면서 현재의 차례상 문화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차례와 제사는 시간과 대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차례는 설과 추석 등 명절에 조상 전체를 대상으로 아침에 올리는 반면 제사는 돌아가신 날의 전날 밤 자정 무렵에 지낸다.

차례가 명절이라는 절기의 도래를 알리는 의식이라면 제사는 고인을 추모하는 의례이다.

[안동=뉴시스]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동=뉴시스]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차례상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상의 덕을 기리고 친족 간 화합을 다지는 것이 전통적인 제례문화의 의미였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과도한 음식 준비가 명절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소가족화로 모이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제사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세대가 주류가 된 만큼 차례상을 기일 제사상처럼 가득 채워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소가족화로 모이는 사람도 갈수록 적어지고 제사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세대가 주류가 됐다"며 "제사상에는 더 좋은 것을 올려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음식 준비에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고 크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예법에서는 모자라는 것보다 넘쳐나는 것을 경계했다"며 "차례상의 본래 모습을 되살린다면 예법도 지키고 차례음식 장만을 둘러싼 가족 갈등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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