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의 원류] 해녀의 기원은?
등록 2026.09.28 08:00:00
세계 여러 바다에서 이어져온 나잠…제주에는 선사·고대 전복 이용 흔적
탐라 진주채취 이어 조선시대 남성 포작·여성 잠녀…문헌에 등장
일제강점기 '해녀' 공식 명칭으로 자리…감소하는 공동체 전승은 과제로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19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19회 해녀축제'에서 해녀들과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2026.09.19. woo1223@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19/NISI20260919_0021443969_web.jpg?rnd=20260919105552)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19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해녀박물관 일원에서 열린 '제19회 해녀축제'에서 해녀들과 축제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2026.09.19. [email protected]
제주는 오랫동안 '변방의 섬'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제주문화의 깊은 층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래전부터 한반도와 동아시아 해역을 잇던 해상교류의 거점이었으며 제주 사람들은 화산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돌과 바람, 불과 흙을 다루며 고유한 생활문화를 일궈왔다. 문헌과 유적, 생활문화와 구술, 자연환경과 생업의 흔적을 따라가며 제주가 지닌 독창성과 개방성을 살펴보고 문화콘텐츠로 확장될 가능성을 함께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을 맞아 제주 곳곳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전승을 모색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살아있는 문화유산,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리다'를 주제로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 포럼이 열렸다. 19일에는 구좌읍 해녀박물관 일대에서 제19회 제주해녀축제와 제9회 해녀의 날 기념식이 열렸고, 10월부터 해녀의 밥상과 해녀스테이, 물질 체험 등을 묶은 해녀주간도 이어진다.
제주해녀문화는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다. 유네스코는 산소공급장치 없이 바닷속에 들어가는 물질 기술뿐 아니라 바다와 해양생물에 관한 지식, 상·중·하군으로 이어지는 전승, 공동어장 관리, 여성의 경제·사회적 역할과 공동체문화 등을 주요 가치로 평가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글로벌 히트를 하면서 해녀를 향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올해 8월23일까지 해녀박물관을 찾은 외국인은 4만383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늘었다. 전체 관람객 11만1587명 가운데 약 40%가 외국인이었다.
해외에서도 해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물질 장면 자체를 넘어 바다를 이용하는 생태지식, 공동체 문화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2025년 5월 제주해녀를 집중 조명하면서 공동물질과 자원관리, 할망(할머니)바다 등 공동체문화를 소개하고 수온 상승과 해조류 감소 등 해녀들이 맞닥뜨린 바다의 변화도 비중 있게 다뤘다.
지난 18일 포럼에 참석한 필리핀의 생태관광 전문가 호실리토 코스타스는 "유산은 잠수 그 자체만이 아니라 잠수 뒤에 있는 지식이다"고 말했다. 물때와 조류, 바람을 읽고 생물의 계절과 산란기를 파악하는 경험, 필요한 만큼 채취하는 방식, 기술과 노래·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과정까지 해녀문화에 포함된다는 설명이다.
해녀들이 오래전부터 바다에서 무조건 많이 채취하기보다 물때를 따르고 금채기를 두며 공동어장을 관리해온 방식은 자원 고갈과 기후위기를 고민하는 시대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23년 '제주해녀어업시스템'이 FAO 세계중요농어업유산에 오른 것도 생물다양성과 전통지식, 여성의 생계, 공동체적 자원관리를 하나의 체계로 인정받은 결과다.
전복이 남긴 단서, 동아시아 나잠(裸潛)의 오래된 역사
페르시아만에서는 기원전 6000년대부터 진주어업의 고고학적 흔적이 확인되고, 지중해에서는 해면을 얻기 위한 잠수가 발달했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의 만나르만에서는 진주와 소라를 채취하는 잠수어업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섬 지역에서도 숨을 참고 물속에 들어가 어류와 해삼, 패류 등을 잡는 어업이 이어져 왔다.
나잠은 특정 지역에서 만들어져 다른 곳으로 전파됐다기보다 사람들이 바다의 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해역에서 발달한 생업기술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동아시아에는 3세기에 이미 잠수 채취를 직접 묘사한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전'은 지금의 일본 규슈 북서부로 추정되는 말로국(末盧國) 사람들을 두고 "물고기와 전복 잡기를 좋아해 물이 깊든 얕든 모두 잠수해 잡는다(好捕魚鰒 水無深淺 皆沉沒取之)"고 기록했다.
제주와 가까운 규슈 해역에서 적어도 3세기에는 전복 등을 잡기 위한 잠수가 일상적인 생활기술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같은 시기 탐라 사람들이 잠수해 전복을 잡았다고 명시한 문헌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제주 곳곳의 패총과 선사·고대 유적에서는 훨씬 오래전부터 전복을 비롯한 해양자원을 이용했던 흔적이 나온다.
전복은 조간대에서도 채취할 수 있지만 서식처가 수면 아래 암반까지 이어진다.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많은 양을 확보했다면 물이 빠졌을 때 드러나는 해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물속까지 채취 범위를 넓혔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제주=뉴시스] 수중 바위에 붙어 있는 전복.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6/NISI20260926_0002248858_web.jpg?rnd=20260926224644)
[제주=뉴시스] 수중 바위에 붙어 있는 전복.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바다에서 얻은 전복이 먹을거리이면서 도구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패총에서는 대형 전복껍데기가 출토됐다.
김경주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전복 껍데기는 매우 단단하고, 석기에 비해 가공이 수월해 동물 해체용이나 패각류 채취용, 토기 제작용 등으로 다양하게 쓰였을 것이다"고 말했다.
김녕리 궤네기동굴에서는 초기철기시대 전복껍질을 가공해 만든 화살촉이 30여 점 출토됐다.
제주에서 전복을 오랫동안 중요한 자원으로 이용했다는 고고학적 흔적과 가까운 규슈에서 3세기에 이미 잠수해 전복을 잡았다는 문헌 기록은 당시 동아시아 해양사회의 나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고려 진주채취에서 조선 포작·잠녀로
조선시대에는 바다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1483년 성종실록에는 제주에서 나온 '포작인(鮑作人)'들이 전라도와 경상도의 바닷가에 흩어져 생활한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기록에서도 포작은 고기잡이와 전복 채취 등에 종사했던 해양생활 집단으로 나타난다.
1601년 제주에 온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과중한 전복 진상 등에 시달린 포작들이 도망하거나 익사하면서 크게 줄었다고 적었다. 이어 17세기 들어 여성 잠수인의 활동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인조 때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건은 '제주풍토기'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여자를 잠녀라 한다(採藿之女 謂之潛女)"고 쓰고, 잠녀들이 물속에 들어가 미역을 캐며 생복도 같은 방식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17세기 후반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의 '지영록'에서는 역할이 더욱 세분화된다. 전복을 채취하는 '채복잠녀(採鰒潛女)'와 미역을 채취하는 '채곽잠녀(採藿潛女)'가 따로 등장해 여성 잠녀가 미역뿐 아니라 전복 채취에도 본격적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남성 포작과 여성 잠녀가 상당 기간 공존했고, 여성 잠녀가 미역에서 전복 등으로 채취 영역을 넓히면서 제주 나잠어업의 중심적인 주체로 자리 잡았다.
1702년 제주 순력 모습을 담은 이형상의 탐라순력도에서는 물속에서 작업하는 잠녀들의 모습도 그림으로 남았다. 문헌 속 '잠녀'가 실제 제주 바다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회화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이다.
박찬식 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조선 전기에는 포작이 전복 채취와 진상역의 중심이었지만 과중한 역과 출륙 등으로 포작이 줄고, 17세기 후반에는 잠녀의 전복 채취와 진상 부담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제주 나잠어업이 점차 여성 중심으로 재편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뉴시스]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해녀 모습(왼쪽 원안)을 확대했다. 한자로는 잠녀로 쓰여 있다. (사진=제주도 누리집 탐라순력도에서 캡처)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6/NISI20260926_0002248861_web.jpg?rnd=20260926225115)
[제주=뉴시스]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해녀 모습(왼쪽 원안)을 확대했다. 한자로는 잠녀로 쓰여 있다. (사진=제주도 누리집 탐라순력도에서 캡처) [email protected]
해마다 줄어드는 제주해녀
오랫동안 바다에서 자원을 채취해 온 생활기술이 역사시대에 포작과 잠녀라는 전문적인 해양생업 집단으로 구체화됐고, 여성 잠녀가 전복과 소라, 해조류를 채취하는 중심 주체로 자리 잡으면서 오늘날의 해녀문화로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잠녀'에서 '해녀'로의 변화는 언제일까. 제주 여성 잠수인을 가리키는 공식·대외적인 명칭으로 ‘해녀’가 자리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다. 1920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행정문서와 언론 등에서 해녀라는 이름이 널리 쓰였지만 제주
현장에서는 잠녀와 잠수라는 말도 계속 이어졌다.
근대 이후 제주해녀들은 한반도 남·동해안은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연안까지 바깥물질에 나서 활동 영역을 넓혔고, 1932년에는 일제의 수탈에 맞서 대규모 항일운동을 벌이는 등 제주 여성 노동사와 해양사의 주체로 자리를 넓혀갔다.
세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바다에서 물질하는 제주해녀는 빠르게 줄고 있다. 1970년 1만4143명이었던 제주해녀는 2000년 5789명, 2015년 4377명, 2020년 3614명을 거쳐 지난해 2371명까지 감소했다.
숙련된 해녀가 바다를 떠날 때마다 어느 '여(礖)'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어떤 물때에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지, 바람과 조류를 어떻게 읽는지 몸으로 쌓아온 경험도 전승의 기회를 잃게 된다.
![[제주=뉴시스] 제주 서귀포시지역 해안에서 물질하는 해녀.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6/09/26/NISI20260926_0002248860_web.jpg?rnd=20260926224909)
[제주=뉴시스] 제주 서귀포시지역 해안에서 물질하는 해녀.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송정희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원은 "해녀문화는 박물관이나 기록만으로 온전히 전승되는 문화가 아니다"며 "실제 물질과 바다밭 관리, 물때 판단, 서로의 안전을 살피는 과정에서 기술과 공동체 규범이 함께 이어진다"고 말했다.
가파도에서 물질하는 유용예 해녀도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양성해도 그들이 들어갈 바다가 더 이상 생업의 터전이 될 수 없다면 해녀라는 명맥은 이어지기 어렵다"며 "해녀를 알리는 일과 해녀가 실제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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