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농지 47%는 '빌린 땅'…숫자로 보는 '경자유전'의 현실 [세쓸통]

등록 2026.10.11 09:00:00

농업법인도 농업용지 30% 임차…영농의 한 축

전수조사, 투기 가려내고 실제 경작자 보호해야

[진주=뉴시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지전수조사.(사진=경남농관원 제공).2026.08.16.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진주=뉴시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농지전수조사.(사진=경남농관원 제공)[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세종=뉴시스]임소현 기자 = 가을 들녘에서 벼를 거두는 농민은 그 논의 주인이기도 할까요. 농사짓는 사람이라면 자기 땅에서 일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 농지의 절반 가까이는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땅입니다.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려면 이 숫자부터 볼 필요가 있습니다. 땅을 가진 사람과 농사짓는 사람이 반드시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투기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땅을 빌린 농민까지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지임대차 시장 분석과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농지임대차조사 기준 2024년 전체 농지 150만5000㏊ 가운데 임차농지는 70만7000㏊로, 47.0%를 차지했습니다. 농지 100㎡ 가운데 47㎡는 소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빌려 농사를 짓는 땅인 셈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임차농지 비율은 불법 임대차 비율이 아닙니다. 법적으로 허용되는 임대차도 포함돼 있어, 이 숫자만으로 농지법 위반이나 투기 규모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농식품부도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경우, 상속받은 농지를 보유한 경우 등은 법에서 정한 요건에 따라 임대차가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땅 주인과 경작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농업법인의 통계에서도 빌린 땅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식품부의 2024년 농업법인조사에 따르면 농업법인이 소유한 농업용지는 5만6622㏊, 임차한 농업용지는 2만4562㏊입니다. 소유·임차 면적을 합한 8만1184㏊ 가운데 임차 비중은 30.3%입니다.

농업법인이 이용하는 농업용지 역시 10㏊ 중 약 3㏊는 빌린 땅인 셈입니다. 다만 이 통계는 개인 농가를 제외한 농업법인 대상이고 초지도 포함돼, 전체 농지의 임차 비율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농업법인이라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전북의 소유·임차 농업용지 합계 중 임차 비중은 11.9%지만, 전남은 39.0%입니다. 제주 영농조합법인만 보면 임차 면적이 1601㏊로 소유 면적 548㏊의 약 2.9배에 달합니다.

농업용지를 확보하는 방식이 지역과 법인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농업 현장을 '자기 땅에서 직접 농사짓는 모습'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농지를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은 각각 누구일까요.

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서는 농업소득, 특히 쌀 소득이 높고 경영주가 50대 이하인 농가에서 임차 수요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습니다. 부채가 많은 농가도 땅을 직접 사기보다 빌려서 영농규모를 늘리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농지를 빌려주는 쪽은 농외소득과 자산이 많고 농업소득이 낮은 고령농이나 은퇴 준비농이 중심이었습니다. 농사를 줄이려는 사람의 땅을 농사를 더 지으려는 사람이 빌려 쓰는 구조입니다.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21일 대구 북구 학정동 들녘에서 농민들이 벼 사이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2026.09.21. lmy@newsis.com

[대구=뉴시스] 이무열 기자 = 21일 대구 북구 학정동 들녘에서 농민들이 벼 사이 자라고 있는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2026.09.21. [email protected]


하지만 빌릴 수 있는 농지가 모든 농가에 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연구진이 농림어업총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영규모 10㏊ 이상 농가가 전체 임차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에서 2020년 25%로 높아졌습니다. 대규모 농가의 몫이 20년 사이 4배 이상 커진 것입니다.

연구진은 농지임대차 시장이 축소되는 가운데 대규모 농가에 임차농지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농사를 시작하거나 규모를 늘리려는 농업인이 필요한 땅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라는 뜻입니다. 이는 올해 전수조사 이전부터 나타난 변화입니다.

이번 전수조사에서도 소유자에 대한 조치와 실제 경작자의 영농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유자가 임대차를 갑자기 종료하면 해당 땅에서 농사를 짓던 임차농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투기가 명백한 사안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되, 고령·상속 등 농촌 현실에서 발생한 관행적 위반은 정상화·양성화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임차농 보호 신고센터와 임대차 특별 정비기간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지은행에 임대를 맡기는 면적도 늘었습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5월18일부터 9월14일까지 농지은행 임대 위탁 계약 면적은 1만909㏊로, 지난해 같은 기간 5899㏊보다 84.9% 증가했습니다. 농식품부는 관행적인 임대차가 적법하고 안정적인 관계로 전환되는 과정으로 설명했습니다.

농지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땅의 소유와 농사의 주체가 상당 부분 나뉘어 있다는 현실입니다. 전수조사가 투기를 바로잡는 동시에, 실제 농사짓는 사람이 계속 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쓸통' = '세상에 쓸모없는 통계는 없다'는 일념으로 통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알기 쉽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재판매 및 DB 금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