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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송일곤 감독 "김혜자 선생 얼굴엔 우주가 있어요"

등록 2026.10.22 07:03:06

새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 연출 맡아

"소녀감성 위해 중년남성 시선 배제"

"김혜자가 가진 감정의 결 대체 불가"

"이 영화 단순히 연기만 잘하면 안돼"

"최주은·박서경, 태도·심성 보고 선택"

"도파민 시대 정반대에 서있는 영화"

"우리 영화 가장 큰 무기는 진정성에"

[인터뷰]송일곤 감독 "김혜자 선생 얼굴엔 우주가 있어요"


[서울=뉴시스]박재민 인턴 기자 = "제가 사실 여성 서사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10월21일 개봉)는 사전 정보가 필요 없다. 관객은 소녀 '순옥'과 '정임'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60년 우정이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을 관객에게 전하려고 한다.

영화는 겨울 산 정상에서 정임이 가수 최정희의 노래 '이태리 정원'(1936)을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뛰어난 노래 실력에 감탄한 단짝 순옥은 함께 서울에 가서 국민가요 마당에 나가자고 제안하고, 정임의 두 눈은 반짝인다. 두 소녀가 함께 서울행을 꿈꾸는 모습에서 관객은 이들의 순수함을 마주한다.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꿈이지만 두 소녀는 함께 미래를 그린다. 단짝 순옥과 정임은 서로 떨어질 줄 모른다. 연극을 볼 때도 산에서 나물을 캘 때도 두 소녀의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산에서 우연히 '두영'이라는 남자를 만난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소녀들과 달리 두영은 글을 배운 사람이다. 두영은 가사를 읽고 싶어 하는 정임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고 두 사람은 풋풋한 사랑의 감정도 나눈다. 순옥은 둘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러나 세 사람의 평화로운 일상은 1942년 비극적인 일을 맞으며 달라진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비극적인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유일한 내용은 아니다. 위안부 피해 상황이 아닌 소녀들의 찬란한 시절을 조명했다는 점은 송일곤(55) 감독이 기존 위안부 소재 영화·다큐와 차별화한 지점이다. 그렇다면 소녀들의 빛나던 과거를 그려내기 위해 어떤 접근이 필요했을까. 극 중 소녀들과 나이도 다르고 성(性)도 다른 송 감독에게 '소녀 감성'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송 감독은 "여성 서사에 관심이 많다. 여성이 갖고 있는 일종의 마이너리티(소수성)를 향한 시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저는 다른 세대이기도 해서 촬영 전에 오히려 젊은 배우들과 시간을 많이 가졌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중년 남성이 바라보는 여성이 되면 안 된다'라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순옥, 정임, 두영을 맡은 배우들과 영화 런스루를 7번 정도 했다. 그 아이들이 가진 시선도 되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송 감독은 영화관에서 1942년 소녀들의 모습을 마주할 현대 관객의 시선도 고려했다. 그는 "괴리감이 있으면 안 됐다. 당시를 살았던 소녀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꿈꿨고 웃었고 울었고 장난쳤고 일을 했고 이런 게 잘 드러나야 했다. 그래서 지금 세대가 이 영화를 봤을 때 대상화하지 않고 '아, 이거 우리 이야기네'라며 봤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화에는 1942년의 소녀들,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소녀, 그리고 소녀의 후세대가 등장한다. 송 감독은 할머니가 된 소녀가 1942년의 기억을 되짚는 과정을 담기 위해 대과거·과거·현재라는 세 가지 시점을 활용했다. 과거와 현재를 감성과 기억으로 연결했다는 점을 작품의 두 번째 차별점으로 꼽았다.

배우 김혜자가 출연을 결정한 이유 역시 영화의 차별성이었다. 김혜자는 앞서 출연 제안을 여섯 차례 고사했다. 송 감독이 김혜자 집에서 여러 차례 식사하며 설득하고 손편지까지 전한 뒤에야 출연이 성사됐다. 김혜자는 지난해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출연 이후 연기 활동을 마무리하려 했다. 남은 시간은 '집 앞에 핀 이름 없는 꽃처럼 살고 싶다'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소녀들이 가진 찬란한 기억의 힘이었다.
[인터뷰]송일곤 감독 "김혜자 선생 얼굴엔 우주가 있어요"


"요즘 극단화 된 갈등이 많아요. 김혜자 선생님이 늘 하는 말씀이 '가여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된다'입니다. 가엾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죠. 세상에 대한 연민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에 선생님도 이런 의미에서 작품 출연에 대한 명분을 찾으신 것 같아요." 그는 "단순히 과거의 어떤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순수하고 찬란한 꿈을 꿨던 소녀·소년들이 마땅히 누려야 했을 이야기. 이 작품에서 아이들이 당시 역사적인 사건 때문에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연민의 시선을 보셔서 출연을 결정하셨다"고 설명했다.

송 감독은 김혜자가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가장 달라졌을 부분으로 "감정의 결"을 꼽았다.

"감성과 감정의 결. 다른 배우가 해도 잘했겠지만 선생님이 가진 대체불가한 그 깊이의 감정, 그건 김혜자 밖에 없습니다. 김혜자라는 배우를 통해 인식됐던 우리 어머니·누이·할머니·여인 등 65년 동안 보여준 연기가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죠. 이 사랑의 이유에는 일종의 원형이 있는 것 같아요. 깊은 사랑의 원형이라고 해야 하나. 대한민국 사람이 떠올리는 엄마의 원형도 김혜자 선생님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고요. 때문에 선생님이 큰 액션 안 하고 바라보거나 미소 짓거나 눈물 흘리시면 감정이 몇 배는 증폭됩니다. 그런 힘을 가지신 거죠. 그건 대체 불가입니다."

대배우 김혜자를 어렵게 설득해 출연을 성사한 송 감독에게 현장에서 배우에게 반복해서 다른 연기를 요구하는 데 부담은 없었는지 물었다. 연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어도 그대로 넘어간 적은 없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송 감독은 "오히려 반대"라고 답했다.

그는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지 현장에서 김혜자 선생님은 모드가 완전히 바뀐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감독의 디렉션을 명확하게 듣길 원한다. 아무리 본인이 준비했어도 디렉션을 안 주면 불안해하신다. 본인이 다 만들어낸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배우가 해내고 그 이상을 하길 바라는 배우"라고 설명했다.

딱 한 장면. 김혜자가 유일하게 고집을 내세운 단 한 장면은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송 감독은 "마지막에 어린 정임과 만나는 장면이다. 계속 더 하시고 싶다고, 이게 아닌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몇 테이크 더 갔는데 그 장면이 제가 찍은 최고의 클로즈업이다. 툭 던지는 대사인데 거기에 온 우주가 다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어린 배우하고 80대 대배우가 만나는 장면인데 친구처럼 보여야 했다. 어려운 장면이었다. 어린 정임을 연기한 최주은 배우도 엄청나게 긴장했다. 선생님이 일부러 촬영장에 내려오셔서 젊은 배우랑 합을 맞춰주시고 교감을 많이 하시더라.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최주은과 함께 호흡 맞춘 배우 박서경은 극 중 김혜자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송 감독은 오디션 때 젊은 배우들의 심성과 태도가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단순히 연기만 잘하면 절대 안 된다. 태도가 제일 중요했다. 그래야 이런 작품을 할 때 훨씬 더 성의 있게 최선을 다해서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디션에서 박서경 배우가 저를 웃게 했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때 진심을 담아서 연기하는 게 느껴졌다. 정말 이 아이라면 충분히 잘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인터뷰]송일곤 감독 "김혜자 선생 얼굴엔 우주가 있어요"


영화는 인물의 비극적 현실 속에 뮤지컬 장면을 넣어 꿈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일본군이 순옥과 정임을 데려가기 위해 온 마을을 찾아다니던 때, 정임은 두영 삼촌의 소각장에 숨어 지내며 한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 속에서 순옥과 정임, 두영은 말끔한 차림으로 함께 노래를 부른다. 세 사람이 꿈꾸던 서울행이 이뤄졌다면 마주했을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노래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이들이 머무는 곳은 차가운 소각장이다.

송일곤 감독은 이 짧은 뮤지컬 시퀀스를 "핍진성 있는 장면"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뮤지컬이 갑자기 나오면 어떤 분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이 아이들이 꿈꾸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영화가 무거운 소재이기 때문에 관객이 이것을 감성적으로 마음을 열고 보면 좋겠다. '노래가 많네' '이 영화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정임은 노래를 잘하는 캐릭터인데 이 아이의 구체적인 꿈이 실현되는 걸 볼 기회가 없다. 뮤지컬로 보여주면 '이 아이들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예쁜 아이들이네'라며 관객은 체험하게 된다"고 했다.

영화는 여러 면에서 도전적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등장하지만 그 피해 상황을 전면적으로 다루지 않고 밝게 빛났던 시절을 조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뮤지컬로 담아낸다. 자극적인 장면과 빠른 전개로 관객 시선을 사로잡는 영화가 주목받는 시대지만 이 작품은 정반대 길을 택했다. 장르 영화도, 젊은 스타가 나선 작품도 아니다. 송일곤 감독은 이야기가 가진 진정성에 기대를 걸었다. 

"저도 '체인소맨' 같은 도파민 영화 좋아하죠. 하지만 반찬을 김치만 먹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은 썰고 죽이고, 사람들을 웃기는 영화도 많이 보죠. 특히 이 영화는 장르 영화도 아니고, 젊은 스타가 출연하는 작품도 아니에요. 그럼에도 우리 팀은 이 영화의 진정성을 믿습니다. 도파민의 시대에 이 영화를 보고 따뜻한 마음이나 위로를 받으셨으면 해요. 영화 속 주인공의 선한 마음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여주길 바랄 수밖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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