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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유어 아워 케미컬 로맨스, 죽음을 연기해 삶을 붙드는 법 [선율의 밑줄]

등록 2026.11.08 08:33:30

MCR, 18년 만의 내한공연 현장 리뷰

7일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서 20주년 맞은 '더 블랙 퍼레이드' 완주

제라드 웨이 "한국은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

[인천=뉴시스] 이재훈 기자.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7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공연하고 있다. 2026.11.0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뉴시스] 이재훈 기자. 마이 케미컬 로맨스가 7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공연하고 있다. 2026.11.0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뉴시스]이재훈 기자 = 20년 전 '사춘기의 과잉'이라 불리던 음반이 있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은 2006년 이 앨범을 두고 크고 산만하고 허세스럽지만 뜻밖에 무척 재미있다고 평했다. 동시에 죽음과 피, 배신으로 가득한 단어의 과잉을 약점으로 꼽았다. 그 음반,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MCR)의 정규 3집 '더 블랙 퍼레이드(The Black Parade)'가 최근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발매 20년 만, 차트 역사상 가장 긴 기다림이었다.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그 깃발을 든 MCR이 지난 7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컬처파크에서 내한공연을 열었다. 2008년 1월22일 서울 올림픽홀 첫 단독 콘서트 이후 18년 만이다. 밤 기온이 5도 안팎까지 떨어진 야외 무대였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추억을 꺼내 보이는 '노스탤지어 쇼'에 머물지 않았다. 한때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이모(Emo)가 어떻게 세대의 공용어가 됐는지 증언한 한 편의 록 오페라였다. 공연의 양식미와 연출의 조형미는 마니아들이 빠져드는 비장미와 골계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드라그'의 국가가 울리고, '환자'가 행진을 시작하다

막은 가상의 독재 국가 '드라그(Draag)'의 국가 '오버 필즈(Over Fields)'로 올랐다. 2025년 북미 스타디움 투어부터 MCR이 앨범 위에 덧입힌 권위주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다. 밴드는 독재자의 '국립 악단' 블랙 퍼레이드를 연기하고, 관객은 입장하는 순간 이 허구 국가의 국민이 된다.

1부는 3집 전곡을 앨범 순서 그대로 완주했다. 죽음을 앞둔 '환자(The Patient)'를 호객꾼처럼 소개하는 '디 엔드(The End.)'와 그의 죽음을 펑크 리듬으로 알리는 '데드!(Dead!)'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 '더 샤피스트 라이브스(The Sharpest Lives)'는 이번 투어용 인트로 '디 아이(The Eye)'를 달고 나왔다.

피아노 단음 하나가 울렸다. 2006년 영국 오피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빌보드 핫100 9위를 기록한 밴드의 유일한 톱10 곡,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Welcome to the Black Parade)'의 전주다. 객석은 첫 음에 무너졌다.

연출은 집요했다. '마마(Mama)'에선 샬럿 켈소(Charlotte Kelso)가 '간호사 실비아(Nurse Sylvia)'로 등장해 투어용 '대거(Dagger)' 브리지를 제라드 웨이와 듀엣으로 불렀다. '슬립(Sleep)'에선 투어 세계관의 흐름을 압축한 전광판 영상이 무대 뒤를 채웠다. '디스인챈티드(Disenchanted)'는 독재 정권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개사 아웃트로로 세계관과 맞물렸다. '페이머스 라스트 워즈(Famous Last Words)'는 '웰컴 투 더 블랙 퍼레이드'를 다시 불러내는 확장 아웃트로로 1부의 정점을 찍었다.

피아노만 남긴 '디 엔드'의 짧은 리프라이즈가 장례 행렬을 정리했다. 이어 앨범 끝에 숨어 있던 '블러드(Blood)'가 라이브로 불렸다. 이번 투어에선 줄곧 녹음으로 틀던 곡이다. 샬럿 켈소와 찰리 색스턴(Charlie Saxton)이 보컬을 맡았는데, 색스턴의 마이크가 나오지 않는 해프닝마저 이 블랙 코미디의 일부처럼 보였다.

'핫토픽 애들 음악'이라는 낙인, 그리고 20년 뒤의 1위

2000년대 중반 마이스페이스와 워프드 투어를 타고 번진 이모 붐에 평단은 냉담했다. 미국 음악 매체 피치포크는 2012년 칼럼에서 당시 많은 이들이 이 밴드들을 '핫토픽 다니는 애들 음악'으로 여겼고, 80년대 헤어메탈처럼 곧 증발하리라 봤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그 예측이 놓친 것으로 1990년 전후 태어난 거대한 세대를 꼽았다. 이 세대가 그 음악을 평생의 감각으로 지니고 갈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MCR이 그 신(scene)에서 유독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야망에 있다. 밴드는 '이모'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려 했고, 퀸과 데이비드 보위의 연극성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미국 매체 스테레오검의 평론가 톰 브레이핸은 20주년 회고에서 발매 당시 이 앨범을 가볍게 여겼던 자신이 틀렸다고 고백했다.

숫자도 그 재평가를 뒷받침한다. 2006년 이 앨범은 첫 주 24만 장을 팔고도 '한나 몬타나' 사운드트랙(28만1000장)에 밀려 2위로 데뷔했다. 20년 뒤, 지난달 23일 나온 20주년 디럭스 에디션에 힘입어 전주 139위에서 1위로 뛰어올랐다. 루미네이트 집계로 7만8000 유닛 가운데 실물 음반이 6만8000장, LP만 4만2000장이었다. 스트리밍 시대에 기꺼이 음반을 손에 쥔 이들 중에는 이 앨범을 오래 간직해 온 3040과, 처음 이 세계에 발을 들인 1020이 함께 있다.
[서울=뉴시스] 마이 케미컬 로맨스. (사진 = 워너뮤직 제공) 2026.10.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마이 케미컬 로맨스. (사진 = 워너뮤직 제공) 2026.10.2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18년 전 한국의 호텔 방, 그리고 '더 월드 이즈 어글리(The World Is Ugly)'

제라드 웨이는 추운 게 마음에 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곡 하나를 마치자마자 "너무 춥다"며 몸을 웅크려 객석의 웃음을 샀다. 그리고 공연 중반 마이크를 잡았다.

"잊어버리기 전에 꼭 말하고 싶었어요. 여긴 제가 가본 나라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예요. 18년 동안 오지 못했네요. 오늘 아침 차를 타고 들어올 때도, 산책을 나갔을 때도 그랬어요. 여러분은 정말 아름다운 곳에 살고 계세요."

그는 그 아름다움이 한 곡의 영감이 됐다며, 오늘 그 노래를 부르진 않겠지만 대신 '끝내주는 곡'을 들려주겠다고 웃었다. 그가 말한 곡은 '더 월드 이즈 어글리(The World Is Ugly)'다. 웨이는 2013년 이 곡을 블랙 퍼레이드 투어 중 한국의 호텔 방에서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8년부터 라이브로 불렸고, 정식 음원은 2012년에 나왔다. 세상이 아무리 추해도 그 세상이 당신을 바꾸게 두지 말라는 노래가, 18년 전 이 땅의 겨울에서 시작된 셈이다.

마이크가 꺼진 '헬레나', 그래도 멈추지 않은 2막

군복을 벗은 2부는 MCR 그 자체로서의 무대였다. 첫 곡 '헬레나(Helena)'에서 음향사고가 났다. 곡 중반까지 제라드 웨이의 마이크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형제의 노래가 소리 없이 흘러가는 동안 엔지니어들이 무대로 뛰어올랐고, 객석은 술렁였다. 마이크가 살아나 웨이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에야 객석의 숨이 풀렸다.

이어 1집의 '아워 레이디 오브 소로우스(Our Lady of Sorrows)', 2집의 '투 디 엔드(To the End)'와 '아임 낫 오케이(I’m Not Okay (I Promise))'가 쏟아졌다. 4집의 '디스트로이아(DESTROYA)'와 '제로 퍼센트(Zero Percent)'가 뒤를 이었다. 2집의 '잇츠 낫 어 패션 스테이트먼트, 잇츠 어 퍼킹 데스위시(It's Not a Fashion Statement, It’s a Fucking Deathwish)'와 1집의 '뱀파이어스 윌 네버 허트 유(Vampires Will Never Hurt You)'는 데뷔 초 지하실 시절의 날것을 불러냈다.

입에서 피를 뱉고 얼굴에 문어 모양 촉수를 붙인 채 노래하는 쉰 살 가까운 프런트맨을 두고, 한 관객은 "나이 먹어서 못 한다는 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적었다. 마지막은 4집의 '나 나 나(Na Na Na)'였다.

3040의 향수, 1020의 현재

이날 객석은 단일 세대의 동창회가 아니었다. 블랙 퍼레이드 제복을 갖춰 입은 관객이 있었고, 추위 속에서도 맥주를 든 중장년층과 유독 많은 외국인 관객이 있었다. 그 사이사이를 10~20대가 채웠다. 최근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엑디즈) 같은 국내 밴드를 통해 이모 록의 문법이 젊은 층에 다시 회자되는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기 줄의 공기는 서브컬처 행사에 가까운 '농도'를 띠었다. 2000년대 감수성이 예민했던 세대가 품고 자란 감각은 장르의 경계를 넘어 곳곳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 감각은 앨범이 나올 즈음 태어난 세대에게로 건너가고 있다.

MCR의 무대는 늘 죽음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파국을 먼저 펼쳐 놓고, 그 어둠을 향해 폭죽과 합창을 쏘아 올린다. 20년 전 사춘기의 과잉이라 불리던 그 과잉이, 지금은 서로 다른 세대가 한목소리로 버티는 방식이 됐다. 즉 마이(My) 케미컬 로맨스는 이제 유어(Your) 케미컬 로맨스, 아니 아워(Our) 케미컬 로맨스 시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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