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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남자배구 역대급 챔프전, 아쉬운 '옥에 티'

등록 2021.04.19 10:52:28수정 2021.04.19 11: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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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김주희

스포츠부 김주희

[서울=뉴시스] 김주희 기자 = 존중과 예우는 없었다. 프로배구 V-리그의 가장 큰 축제인 챔피언결정전이 상대 감독 저격과 맞대응 비난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7일 열린 2020~2021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5차전은 대한항공 승리로 끝났다. 대한항공은 우리카드를 시리즈 전적 3승2패로 물리치고,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이번 챔프전은 매 경기 치열한 혈투가 펼쳐쳤다. 역대급 명승부라 평해도 과하지 않다. 그러나 코트 밖 설전은 이러한 챔프전의 품위를 떨어뜨렸다. 

시작은 지난 14일 열린 3차전이다.

1세트 종료 후 서브 에이스로 세트를 마무리 지은 우리카드 알렉스와 산틸리 대한항공 감독이 충돌했다. 정규리그 중에도 심판 판정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고성을 내지르는 등 다혈질적인 성격을 내비쳤던 산틸리 감독은 챔프전에서도 화를 참지 않았다.

경기 중 상대 선수와 감독이 싸우는 모습은 종목을 불문하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V-리그 최강자를 가리는 자리에서 희귀한 장면이 나왔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나 서 있는 무대는 잊은 채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후 산탈리 감독은 "알렉스가 이탈리아어로 쓸데없는 농담을 했다"고 했고, 알렉스는 "상대 벤치에서 내 이름을 계속 불러서 그만하라고 했다"고 다른 해명을 내놨다.

이 사건은 5차전에서의 더 큰 신경전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이 불을 지폈다.

신 감독은 5차전 사전 인터뷰 중 "4차전을 앞두고 알렉스가 산틸리 감독에 인사하러 갔더니 '두고 보겠다'고 했다더라"며 산틸리 감독을 향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오늘부터 악수할 생각도 없다. 감독의 자질이 없지 않느냐"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그렇게 시작된 5차전에서 양 팀 감독의 악수는 없었다. 산틸리 감독이 경기를 앞두고 악수를 청했으나, 신 감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프로배구의 가장 큰 잔칫날, 그것도 최후의 무대를 앞두고 양 팀 감독은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어쩌면 양 팀 감독은 상대를 자극해 분위기를 끌고 오려는 심리전을 펼친 것일 수도 있다. 이는 프로 스포츠에서 승리를 따내기 위한 방법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심리전이라 하더라도 필요 이상의 멘트가 오갔다. 선을 넘는 심리전은 비매너로 비칠 수 있다. 

"악수할 생각도 없다", "감독으로 자질이 없지 않나" 등의 말이 5차전을 앞두고 나와야 했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만약 산틸리 감독이 외국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신 감독이 이런 날선 단어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었을지 또한 의문이다.

승자가 된 산틸리 감독도 끝내 앙금을 털어내지 못했다. 산틸리 감독은 챔프전 우승 후 인터뷰에서 "4차전을 앞두고 만난 알렉스에게 '나와 대화할 생각을 하지 말고, 너의 플레이만 해라'라고 말했다. 알렉스의 기분을 상하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신영철 감독은 오늘 경기 전 악수를 하지 않았다.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해 달라. 여러 나라에서 감독을 했지만, 악수를 거절한 감독은 신영철 감독이 처음"이라며 비판했다.

최고 지략가들의 경쟁으로 챔프전은 5경기 내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과도한 막판 설전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일으켰다. 챔피언 대한항공을 축하하고, 끝까지 잘 싸운 우리카드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시즌을 마무리하기엔 무언가 찝찝함이 남는 이유다.

산틸리 감독은 다음 시즌 해외행이 유력하다. 이제 신 감독과 산틸리 감독이 다시 만나 화해할 일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감독들의 역대급 신경전으로 남을 법한 2020~2021 챔프전. 당사자들인 두 사령탑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새겨질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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