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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선 후보 운명을 검찰에 맡기는 한심한 정치권

등록 2021.09.27 14:25:03수정 2021.09.27 22:4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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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선 후보 운명을 검찰에 맡기는 한심한 정치권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 축제라고들 부른다. 5년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대통령선거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최고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선거 중 선거라 할 수 있다. 대선의 계절이 다가옴에 따라 유권자를 위한 축제도 5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번 20대 대선에선 불행한 투표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 선거철이면 도지는 정치권의 고질병인 고소·고발 때문이다. 
 
현재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여야 대선주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와 국민의힘당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다. 두 예비후보가 지금 지지율을 경선 끝까지 유지한다면 각자 당 내에서 최종 대선후보로 확정돼 본선에서 맞붙게 될 확률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고소·고발이 횡행하면서 이 지사나 윤 전 총장은 유력 대선주자인 동시에 잠재적 범죄자 신분이 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윤 전 총장은 고발사주 의혹으로 친여 성향인 열린민주당으로부터 검찰에 고발됐고, 이 지사는 국민의힘·국민의당에 의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 및 특별검사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된 상태다. 두 후보는 특정 성향의 시민단체에 의해 별도의 고발장이 공수처나 검찰에 접수되기도 했다. 정치적 성향의 시민단체들까지 '대리전'에 가세한 셈이다.

이른바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은 지난해 4·15 총선 직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거쳐 야당을 통한 여권 정치인 등의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 쟁점이다. 민주당은 손 검사가 윤 전 총장의 측근이라고 주장하며 윤 전 총장의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나 구체적인 정황은 제시하지 못한 채 '윤석열=공정과 상식' 프레임 흔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공영개발 사업 특혜의혹은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와 관계사인 천화동인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둔 과정에서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 지사가 특혜를 제공했을 것으로 국민의힘은 의심하고 있지만 역시 이 지사의 연결고리는 찾지 못한 채 '이재명=기득권 타파' 이미지를 무력화하기 위한 정치 공세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통상 선거가 임박한 시기에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지 않는 것이 검찰의 불문율이다. 설사 기존 사건이더라도 정치인이 연루된 경우에는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거나 수사의 속도를 조절한다. 수사결과가 유권자들의 투표나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더군다나 대선주자를 직접 수사한다는 건 정관계 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검찰 입장에서도 상당히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요즘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여야 유력 대선후보를 사정(査定)의 칼날 위에 올려놓기 위해 혈안이 된 듯한 모습이다. 이를 두고 법치만능주의에 빠진 정치권이 수사의뢰나 고발 등의 방식으로 검찰을 대선 한복판에 끌어들여 오히려 선거의 승패를 검찰에 넘긴 꼴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묻지마식 의혹 제기나 고소·고발을 남발하게 되면 정작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검찰과 법원이 정치권에 의해 사적(私的)으로 이용당하는 것과 다름 없다.

선거철만 되면 폭증하는 이같은 고질병은 특정 후보에 대한 고발장이 제출되는 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은 해당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을 정치인들이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와 무관치 않다.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못할 경우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기 때문에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고소·고발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선거가 끝난 뒤 서로 합의하에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마저도 갈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20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태 당시 여야는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 양극단의 고소·고발로 치달았고, 결국 국회의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된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사안의 경중에 따라 고발장이 접수되지 않더라도 사정기관이 인지수사를 할 수 있는데도 언론 보도나 의혹만을 토대로 제출한 고발장을 가지고 공수처와 검찰이 동시에 수사에 착수하는 것도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수사기관이 자칫 선거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와 잡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발사주 의혹,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과 같이 각종 의혹 제기에만 몰두하며 수사기관에 고소·고발 접수를 남발한 정치권이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더 크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정치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노력보다는 법적 공방으로 쟁점화하는데 혈안이 되어가는 것은 정치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내년 대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의 신경이 온통 수사기관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민주주의 축제를 제대로 즐기고 투표할 맛이 나겠나.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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