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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장기수 서옥렬씨 "추석 때면 가족이 더 사무치게 그립죠"

등록 2017.10.01 05: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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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가 지난달 27일 광주 북구 자신의 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1.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가 지난달 27일 광주 북구 자신의 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1.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보고 싶죠. 명절 때면 더 사무치게 가족이 그립죠."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인 서옥렬(90)씨는 추석을 사흘 앞둔 1일 "여생을 북한에 있는 처자식의 품에서 보내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씨의 삶은 이념 대결로 이어져온 남북 관계의 모순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남 신안에서 5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만나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5년 북녘에서 교원 생활 도중 결혼했다.  
 
 1961년 8월9일 아내와 두 아들(당시 5살·3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안내원들과 함께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고향에서 동생들을 만나고 한 달 뒤 월북하다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구형과 선고를 합해 사형 소리만 6번을 들었지만, 최종 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아 90년 9월까지 29년간 옥살이를 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가 지난달 27일 광주 북구 자신의 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1.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광주지역 마지막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가 지난달 27일 광주 북구 자신의 집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0.01.  [email protected]


 사상 전향을 강요한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는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민주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는 준법 서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2000년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북한으로 송환될 때 가지 못했다.

 서약서가 전향서처럼 왜곡된 것이다. 사상전향제도와 준법서약서는 1989년과 2003년에 폐기됐다. 

 사실상 동족 대결 정책에 희생당한 그는 '아내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에 품은 채 고독한 삶을 이어오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에도 밥 한 끼 함께 먹을 가족 없이 쓸쓸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는 "형제들에게도 연좌제가 씌워져 교류하는 식구들도 없다"며 "명절도 고독과 그리움의 연속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명절 때마다 무안에 있는 부모의 산소에 성묘를 갔지만, 10여년 전부터는 건강이 악화돼 1년에 한 차례 정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자식들에게 전해주려고 출소 당일부터 일기를 써온 그는 명절 때도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글로 남겼다.

 1998년 1월28일·10월5일에 쓴 일기에서 "온 겨레가 옛부터 축하한 명절, 그러나 남북은 갈라져 있다. 썰렁한 단칸방에 명절은 없다. 언제 하나로 즐거워할 때가 오려나"라고 적었다.

 5개월 전 지병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서씨는 "아내가 살아있다면 꼭 함께하고 싶다. 가족과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을 누리고 싶다"며 인도주의적 차원의 송환이 이뤄지길 거듭 바랐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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