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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으로 불이행" 고 문형순 서장 이제서야 국립묘지로

등록 2024.05.10 16: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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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전 제주 4·3때 양민 200여명 구해

10일 국립제주호국원서 최고 예우 안장식

윤희근 청장 "따뜻한 인간미·당당한 리더십"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후 국립제주호국원에서 고 문형순 서장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 고 문형순 서장은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붙잡힌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거부해 생명을 구해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6·25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2024.05.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후 국립제주호국원에서 고 문형순 서장 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 고 문형순 서장은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붙잡힌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거부해 생명을 구해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6·25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2024.05.10.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부당함으로 불이행'

70여 년 전 국가로부터 무고한 양민 학살이 자행됐던 제주4·3 당시 총살 명령을 거부하고 200여명의 목숨을 살린 고 문형순 경찰서장(1987~1966)이 공문에 적었던 말이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된 고 문형순 서장이 10일 최고의 예우 속에서 국립묘지에 잠들었다.

제주경찰청은 10일 오후 2시 국립제주호국원 현충관에서 고 문형순 경찰서장 안장식을 개최했다.

안장식에는 윤희근 경찰청장, 김창범 제주4·3희생자 유족회장,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문 서장의 거부 명령으로 목숨을 부지한 당시 생존자도 자리했다.

이날 고 문형순 서장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의 조사, 김애숙 제주도 정부부지사와 윤희근 경찰청장의 추모·추도사가 이어졌다.

윤 청장은 이날 "고 문형순 서장을 기억하고 존중하자는 경찰의 노력이 보상을 받은 것 같아 뜻 깊은 마음"이라며 "제주도민을 지켜내신 고 문형순 서장님의 따뜻한 인간미와 당당한 리더십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국립제주호국원에서의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후 국립제주호국원에서 열린 고 문형순 서장 안장식에서 강순주(왼쪽) 생존자와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이 분향하고 있다.고 문형순 서장은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붙잡힌 강순주씨 등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거부해 생명을 구해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6·25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2024.05.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0일 오후 국립제주호국원에서 열린 고 문형순 서장 안장식에서 강순주(왼쪽) 생존자와 김창범 제주4·3유족회장이 분향하고 있다.고 문형순 서장은 70여 년 전 제주4·3 당시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붙잡힌 강순주씨 등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거부해 생명을 구해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광복 이후 6·25전쟁에도 참전한 바 있다. 2024.05.10. [email protected]

70여년 전 고 문형순 서장의 총살 거부 명령에 의해 목숨을 부지한 제주4·3 생존자 강순주씨는 이날 지팡이를 짚고 문형순 서장 앞에서 헌화와 분향했다.

현충관에서 약 300m 떨어진 5묘역까지 영현 봉송이 진행됐다. 유가족 등 이북5도민회 측은 마지막으로 경찰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앞서 제주경찰청은 이날 새벽 제주시 오등동에 위치한 고 문형순 서장 묘를 찾아 파병제를 지낸 후 유골을 양지공원으로 옮겨 화장했다. 이 과정에서 싸이카 4대, 순찰차 1대 등 에스코트가 이뤄졌다.

고 문형순 서장의 호국원 안장은 지난 2월29일 결정됐다. 올해 1월3일에는 6·25 참전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2018년 경찰청은 고 문형순 서장의 업적을 기리고자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경찰청 한 켠에는 그의 흉상이 조성돼 있다.

4·3의 광풍이 불던 1949년 제주 모슬포경찰서장이었던 고 문형순 서장은 아무런 이유 없이 군경에 의해 끌려온 100여명의 도민들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자수를 권유, 훈방시켰다.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950년 8월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고 문형순 서장이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 지시서에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적고 돌려보낸 문서. 2024.05.10. oyj4343@newsis.com

[제주=뉴시스] 오영재 기자 = 1950년 8월 성산포경찰서장이었던 고 문형순 서장이 제주 양민 200여명에 대한 총살 명령 지시서에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적고 돌려보낸 문서. 2024.05.10. [email protected]

다음 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예비검속이 이뤄졌다. 과거 좌익 혐의자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잡아 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학교에 다니던 젊은 사람들이 아무련 이유없이 군경에 끌려갔다.

당시 고 문형순 서장은 성산포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들에 대한 군의 총살 명령 지시서에 '부당(不當)함으로 불이행(不履行)'이라고 거부, 295명의 목숨을 구했다.

고 문형순 서장은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수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해 1920년대 만주로 넘어가 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군사교관 등으로 활동했다. 1947년 5월 경찰에 '경위'로 입문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퇴직 직전인 1952년 지리산전투경찰대 소속으로 전쟁에도 참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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