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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 속 면역세포로 뇌전증 진단…"세계 첫 발굴"

등록 2026.05.26 15:5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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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 감별 진단 마커 세계 최초 발굴

뇌전증 중증도 평가 복잡…피검사로 해결

[서울=뉴시스] 건강 대조군과 뇌전증 환자군의 면역 바코드 비교. 건강 대조군에 비해 뇌전증 환자군(특히 약물 난치성 및 신경염증 관련 뇌전증)에서 전반적인 면역 다양성은 뚜렷하게 감소(파란색 박스)하는 반면 특정 면역세포의 비정상 증식은 가파르게 증가(빨간색 박스)하는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건강 대조군과 뇌전증 환자군의 면역 바코드 비교. 건강 대조군에 비해 뇌전증 환자군(특히 약물 난치성 및 신경염증 관련 뇌전증)에서 전반적인 면역 다양성은 뚜렷하게 감소(파란색 박스)하는 반면 특정 면역세포의 비정상 증식은 가파르게 증가(빨간색 박스)하는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사진= 서울대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장시간 걸리는 뇌파 검사나 고가의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없이 뇌전증 환자의 혈액 속 면역세포를 분석해 질환을 감별하고 뇌의 구조적 위축까지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진단 마커가 세계 최초로 발굴됐다.

뇌전증은 뇌 신경망의 비정상적인 전기 활동으로 경련과 발작이 반복되는 복잡한 신경 질환이다. 그동안 주로 뇌 자체의 문제로만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전신 면역 체계의 이상이 발병에 깊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질환을 진단하고 중증도를 평가하려면 긴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검사에 의존해야만 해 간편한 혈액 검사 방식의 진단 지표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주건·이상건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신용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홍상빈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은 뇌전증 환자와 건강한 일반인 총 100명의 말초혈액을 채취해 혈액 내 면역세포인 'T세포'의 고유 수용체 서열(면역 바코드) 대규모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연구팀은 외부의 병원균과 싸우는 우리 몸의 핵심 방어군인 T세포에 주목했다. 혈액 속 T세포 표면에는 적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한 유전자 서열 구조인 수용체(TCR)가 존재하는데, 이는 마치 상품마다 각기 다른 정보를 담고 있는 바코드와 같아 일종의 '면역 바코드'로 불린다.

평상시 건강한 사람의 혈액에는 다양한 적에 대비하기 위해 수많은 종류의 면역 바코드가 골고루 존재한다. 그러나 몸속에 특정 병원균이 침입해 이를 인식한 맞춤형 T세포 군대만 비정상적으로 집중 증식하게 되면, 한정된 혈액 내에서 전체 면역 바코드의 가짓수와 다양성은 오히려 줄어드는데 이를 면역학적으로 '클론 확장'(Clonal expansion) 현상이라 한다.

연구팀은 뇌전증 역시 전신적인 적응면역 체계의 활성화를 동반하는 질환이라면, 환자의 혈액 속에서도 이처럼 특정 면역 바코드만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전체적인 다양성이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될 것으로 가설을 세웠다.

연구팀은 전신 적응면역 체계의 활성화가 뇌전증 발병과 관여한다는 가설 아래, 뇌전증 환자 45명을 질환 중증도에 따라 세분화(약물 조절 양호 14명, 난치성 22명, 신경염증 관련 9명)하고 이를 건강 대조군 55명과 비교해 면역 바코드의 다양성과 증식 정도를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뇌전증 환자군은 건강 대조군에 비해 전반적인 면역 바코드 다양성이 현저히 낮았다. 특히 약물이 듣지 않는 난치성이나 신경염증 동반 환자일수록 특정 면역세포만 비정상적으로 집중 증식해 다양성이 더욱 감소했다.

이는 뇌전증이 단순 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신 면역 체계가 불균형해진 상태임을 뜻한다.

나아가 이 T세포 수용체의 유전자 조합 패턴만을 학습한 최적의 인공지능(AI) 모델은 평균 80%의 높은 정확도로 뇌전증 환자와 일반인을 감별해 내며 비침습적 진단법의 성능을 입증했다.

하위 뇌 영상 데이터 분석에서도 전신 면역 패턴 변화와 실제 뇌의 물리적 구조 변화가 직접 연결돼 있음이 확인됐다. 면역 바코드의 다양성이 낮아질수록 뇌에서 발작이 발생하고 퍼져나가는 핵심 부위인 '시상'과 '기저핵'의 부피가 뚜렷하게 감소하는 뇌 위축 현상이 관찰됐다.

이번 연구를 통해 뇌전증은 단순 뇌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면역 시스템의 불균형 상태임이 세계 최초로 규명됐다.

연구진은 향후 간단한 피검사만으로 환자의 경과를 모니터링하고  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신용원 교수(중환자의학과)는 "혈액 속 면역세포의 변화가 뇌의 구조적 위축과 연관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의미가 크다"며 "뇌전증 환자의 경과를 모니터링하고, 향후 면역 조절을 통한 새로운 치료 전략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건 교수(신경과)는 "뇌전증은 그동안 뇌 자체의 문제로만 국한돼 인식돼 왔으나, 이번 연구는 전신 면역 시스템의 관점에서 질환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환자 개개인의 면역 상태에 기반한 정밀 의료를 실현하는 데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우수신진연구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국제 학술지 '임상 및 중개 신경학 연보'(Annals of Clinical and Translational Neur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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