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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의 정원'에 다시 밀려온 27년 만의 '파도'… 노이즈가든 윤병주, 30년의 시간을 연주하다

등록 2026.05.26 07:27:10수정 2026.05.26 07: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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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가든 1집 발매 기념 윤병주 서면 인터뷰

오늘 밴드 해체 27년 만의 신곡 '파도' 발매

30~31일 아팝페 출연…12년 만의 페스티벌

[서울=뉴시스] 노이즈가든. (사진 =밴드 측 제공) 2026.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노이즈가든. (사진 =밴드 측 제공) 2026.05.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국내 대중음악 역사의 거대한 비석으로 굳어진 앨범이 있다. 세상의 정돈된 질서와 융합하기를 거부했던 육중한 소음(Noise)들을 긁어모아 기어이 자신들만의 철저히 고립된, 그러나 완벽한 생태계(Garden)로 일궈냈던 밴드 '노이즈가든(Noizegarden)'의 첫 앨범 '노이즈가든'이다.

이 전설적인 명반의 발매 30주년을 맞아 26일 오후 12시 신곡 '파도'가 세상에 발표된다. 1999년 밴드 해체 이후 무려 27년 만의 신곡이자, 2014년의 단발성 리유니언 공연 이후 12년 만에 기지개를 켜는 재시동의 신호탄이다. 현재 준비 중인 EP '2026 데모(Demo)'의 선공개 싱글이기도 한 이 곡은, 그들의 음악이 완벽하게 보존된 과거의 신화로 박제되기를 거부하고 기어이 '현재'의 시간을 맹렬히 관통하겠다는 치열한 의지의 표명과도 같다.

노이즈가든의 귀환은 단순히 회고주의적인 낭만에 기대는 행위가 아니다. 오는 30~31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6(아팝페)' 무대에 오르는 이들의 발걸음에는 "과거의 재현으로 시작해 새로운 결과물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서늘한 현재성이 짙게 배어 있다. 밴드의 구심점인 기타리스트 윤병주는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덤덤한 진실을 증명하듯, 특유의 건조한 냉소와 깊은 여유를 잃지 않은 채 다시 한번 무거운 리프를 벼려낸다.

누군가의 영원한 부재를 안고 다시 기타를 잡는 일은, 때로는 남겨진 적막과 침묵마저 음악의 일부로 수용해야 하는 고단한 과정일 테다. 압도적인 절규를 남기고 떠난 고(故) 박건과, 특유의 사운드 결을 직조했던 고(故) 이상문의 묵직한 빈자리는 새로운 멤버들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 또 다른 질감의 록으로 피어날 준비를 마쳤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묵묵히 고유의 미학적 영토를 지켜온 윤병주와 서면으로 문답을 주고 받았다. 2026년의 한가운데서 그가 툭툭 던지는 쿨하고 무심한 활자들 사이로, 결코 닳지 않는 록의 원초적 에너지와 세상을 마주하는 단단한 삶의 태도가 소금처럼 반짝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1996년에 발표하신 첫 앨범은 한국 록의 기원이자 절정으로 남았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노이즈가든의 음악이 동시대의 청자들에게 여전히 생생한 타격감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느끼시는지, 혹은 완벽하게 보존된 하나의 신화로 남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저에게는 과거의 작업일 뿐이고 말씀하신 부분은 노이즈가든의 음악을 접했던, 혹은 새로 알게 된 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해 주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요. 제 입장에서는 제 음악에 공감해 주는 분이 많아진다면 만족스럽겠습니다."

-2014년 리마스터 앨범 기념 공연 당시 '어쩌다 한 번씩 하는 밴드가 좋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아시안 팝 페스티벌 무대 역시 그 '어쩌다 한 번'이 주는 반가운 우발성인지, 아니면 1집 30주년이라는 시간 앞에서의 자연스러운 필연’이었는지요. 몇 년 만의 페스티벌 무대인지도 궁금합니다.

"2014년에는 '1994 데모' 발표 20주년을 기념하여 '디럭스 리마스터 에디션(Deluxe Remastered Edition)'으로 노이즈가든이 발표했던 대부분의 작업을 한 데 모아 발표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로다운 30으로 한창 활동할 때였고 건이도 캐나다에서 밴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런 추억의 밴드 리유니언은 일회성인 게 딱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올해엔 사실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 씨가 1집 발표 30주년을 맞아 다시 음악을 만들고 무대에 서겠다고 해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러고 보니 노이즈가든도 30주년이네? 뭐라도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마침 아시안팝페스티벌에서 관심을 보여주어 준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4년에 노이즈가든으로 두 번의 공연을 했었는데 4월의 '디럭스 에디션' 발매 기념 공연과 6월에 잠실에서 있었던 사운드홀릭 페스티벌이었습니다. 페스티벌 역시 12년만이네요."

-과거 인터뷰에서 단순히 추억에 기대는 무대는 피하고 싶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2026년 지금 '현재'를 맹렬히 살아가는 밴드 로다운 30의 리더로서, 노이즈가든의 30주년 무대에 오르시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조율하셨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건이도 없는 상황에서 예전 곡들만을 부르고 연주한다면 그냥 '제가 포함된 트리뷰트 밴드'가 아닐까도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팝페는 급작스레 결정된 일이라 일단은 일회성으로 일을 벌였는데 준비를 하다 보니 역시 욕심이 생기더군요. 새로 함께하는 멤버들과 신곡, 가능하면 새 앨범을, 나아가 좋은 앨범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컴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아팝페 무대는 처음 생각했던 대로 1996년의 재현과 건이의 추모의 의미를 담은 무대가 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일회성 추모의 무대만으로 끝내기엔 아까우니 좀 더 창의적인 활동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노이즈가든은 세상의 타협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묵묵히 고유의 길을 걸었던 팀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서게 된 이번 무대가, 치열했던 과거의 자신과 나누는 부드러운 화해의 시간으로 다가가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저나 현재의 저나 큰 틀에서 보면 바뀐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그 외 작은 부분들은 꽤 바뀌기도 했거든요. 저는 노이즈가든 1집을 듣는 게 좀 힘든데 당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너무나도 큰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때론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공연 준비를 하다 보니 듣기엔 힘들어도 하는 건 좋더라고요. 자신과 싸운 적이 없어서 화해의 시간은 필요치 않은 것 같습니다."

-밴드에서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였던 고(故) 박건 님의 부재가 여전히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압도적인 헤비함과 위태로운 서정성을 동시에 품었던 그의 빈자리를 이번 무대에서는 어떤 분과 함께, 어떤 방식으로 채워가실 계획이신지요.

"대체 불가능한 인물의 자리는 다른 스타일의 대체 불가능한 인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러면 모창가수밖에 안되겠죠.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와의 음악적인 공감대가 있느냐, 그리고 존중할 만한 자신만의 음악세계가 있느냐 입니다. 노이즈가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들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더 좋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건 결코 단순한 역할의 교체일 수 없을 텐데요. 새로운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는 이번 무대는 과거 노이즈가든의 완벽한 재현에 무게를 두셨는지, 아니면 2026년의 새로운 주석을 더하는 과정이 될지 궁금합니다.

"2026년 노이즈가든의 계획은 '과거의 재현으로 시작해 새로운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박건 님이 떠나신 후, 합주실에서 노이즈가든의 곡을 다시 연주하실 때 남다른 감회가 드셨을 것 같습니다. 기억 속의 목소리를 마주하며 기타를 잡으셨을 때, 연주하시는 사운드의 질감이나 감정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다지 특별한 감정은 없었습니다. 12년 만에 연습을 하는데도 노이즈가든 곡들은 손이 기억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멤버들과 합을 맞추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감회가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은 언젠가 뜻하지 않게 찾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고(故) 이상문 님이 빚어냈던 사운드의 결, 그리고 박건 님의 절규. 병주 님께서 쌓아 올리신 묵직한 리프 위로 겹쳐지는 그 소중한 흔적들을 이번 무대 위에서 어떻게 아름답게 피어내실지 기대가 됩니다.

"이번에 함께하는 멤버들이 모두 노이즈가든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커서 재현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보컬의 경우 목소리는 다르지만 팬들에게 다가오는 울림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베이스의 김락건 씨는 세상을 떠난 그 두 분과도 친했던 사이라 또다른 자신만의 의미를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하네요."

-1집 발매 당시 '우리 음악이 대중적이라 인정받는다면 비로소 문화선진국이 될 것'이라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노이즈가든의 그 묵직함을 자연스럽게 품어낼 수 있는 토양을 어느 정도 갖췄다고 보시는지요.

"데뷔 앨범을 내놓은 20대다운 패기가 느껴지네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바뀌어 버려서 록 음악이 메인스트림도 아니고 헤비한 록 음악은 더더욱 마이너해졌네요. 1집 발매 당시의 저에게 안타까운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우레 같은 떼창이 쏟아졌던 2014년 브이홀 무대에서도, 노이즈가든의 거대한 사운드 이면에는 특유의 깊은 고독이 배어 있었습니다. 기타와 앰프의 거친 울림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었던 깊은 침묵이나 메시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런 걸 느끼셨다면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에 따른 저희들의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들이겠죠. 어쩌다 보니 멤버들이 다 일희일비 하는 성격들이 아니라서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오히려 관객들이 더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것 같습니다."
[서울=뉴시스] 윤병주. (사진 =노이즈가든 측 제공) 2026.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윤병주. (사진 =노이즈가든 측 제공) 2026.05.2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많은 분들이 윤병주 님의 '기타 톤'에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본인께서는 '톤은 직접 부딪혀 얻는 기본'이라며 겸손하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단순한 기술적인 담론을 넘어, 병주 님의 연주가 최종적으로 가닿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형태나 미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객관적인 좋은 톤'이라는 건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연주자가 추구하는 게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음악에 맞는 개성인 거죠. 그 개성에까지 다다르는 게 힘든 면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자기가 추구하는 게 뭔지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입니다. 물론 누가 들어도 안좋은 소리라는 것도 존재하고요. 결국 나의 음악을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어울리는 소리를 찾고 그 소리로 연주하는 것이 연주자와 청자, 관객 모두에게 이상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연주에서 느껴지는 60-70년대 블루스 록 특유의 농밀한 질감이 참 매력적입니다. 노이즈가든 시절의 폭발하던 에너지와 지금 로다운 30에서 보여주시는 여유로움 사이에서, 2026년의 윤병주가 가장 맞닿고 싶은 음악적 감각은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는지요.

"저는 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예전 노이즈가든이나 지금의 로다운 30이나 제가 만드는 음악, 또는 제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은 거의 비슷합니다. 하지만 그걸 그 밴드 멤버 구성이나 추구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형해서 내보내는 거죠. 제가 현재 가장 관심 있고 하고 싶고 도전해 보고 싶은 음악이 로다운 30의 음악입니다. 90년대의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노이즈가든의 음악이었고요. 올해 노이즈가든의 신곡을 작업하면서는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했겠지?'라는, 어떤 의미로는 꽤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한국 록계에 노이즈가든의 등장은 그 자체로 새롭고 완벽한 충격이었습니다. 장르가 다변화되고 파편화된 작금의 인디 신에서도, 당시 노이즈가든이 만들어냈던 것과 같은 깊은 울림과 파장의 가능성을 여전히 발견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 시절엔 '내가 듣고 싶고 좋아하고 싶은 음악이 없으니 내가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정보 교류가 힘들던 때라 국내와 해외 뿐 아니라 각 나라, 지역별로 개성있는 신이 형성되고 개성있는 음악이 나오던 때였는데, 최근에는 전세계가 같은 걸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90년대엔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게 '국내엔 없는 것'이라는 개념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걸' 만들어야 하는 시대인 듯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런 패기 있는 젊은 뮤지션들이 많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서 음악팬으로서 즐겁습니다."

-인디 신이 점차 산업화되고 음악이 짧은 플레이리스트 위주로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과거 '음악을 깊이 듣는 저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표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마주한 2026년의 음악 시장을 보실 때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지요.

"꼭 길고 어려운 곡을 깊게 들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남들보다 음악을 좋아한다면 시대의 사조를 넓은 시각으로 둘러보거나 관련 있는 다른 음악과의 연결고리, 좋아하는 음악에 녹아 든 흥미로운 요소들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반대로 플레이리스트를 듣다가도 관심 가는 아티스트의 음악세계를 깊고 파고 들어가 본다든가. 그런 게 음악을 듣는 재미니까요. 음악시장에 대해서까지 제가 이야기를 꺼낼 만큼의 식견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타의 육중한 리프가 온몸의 감각을 두드리는 록 음악 특유의 원초적인 경험이, 숏폼과 알고리즘에 익숙해진 지금의 대중에게 어떤 신선한 충격과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록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이 같은 음악을 듣고 공감하곤 했는데 요즘엔 아티스트나 청자나 모두 너무 다양해져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정말 마이너할 것 같은 아티스트의 공연이 매진되기도 하고 꽤 대중지향적인 음악이 외면받기도 하니까, 역시 대중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어요. 그 이전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대중'인지도 모르겠어요."

-노이즈가든은 팬과 대중을 향해 '알아서들 해라'라는 쿨하고 다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습니다. 유행이 빠르게 변하는 매끄러운 음악 시장 속에서도, 시류와 타협하지 않는 독립적인 음악가가 지켜나가야 할 내면의 중심이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미 시류와 타협하지 않는 독립적인 음악가라면 알아서 다 갖추고 있지 않을까요? 시류와 타협하지 않는 독립적인 음악가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그렇게 되긴 틀렸다는 것일 테고. 그런 건 각자 다른 생각과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예전 인터뷰에서 '창의적이고 피해의식 없는 음악인'으로 남고 싶다 하신 말씀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지난 30년의 궤적을 찬찬히 돌아보실 때, 노이즈가든이라는 거대한 이름은 병주 님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남아 있는지, 혹은 언젠가는 덜어내고 싶은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실 때도 있는지요.

"로다운 30이라는 밴드를 하고있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노이즈가든을 언급할 때는 덜어내고 싶었죠. '노이즈가든이 잊혀질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해왔던 것 같은데… 이젠 많이 잊혀져서 홀가분 합니다. 잊혀졌으니 다시 초심으로 시작하고 싶어지네요."

-모든 곡이 명곡이지만, 특히 '기다려' 후반부에 쏟아지는 짙은 서정성은 노이즈가든 특유의 또 다른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평소 강인하게 팀을 이끄시는 병주 님께서 음악 안팎으로 무장 해제된 채 스스로의 감정을 온전히 쏟아내시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거나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중용의 미덕을 중시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그리 진지한 성격도 아니고요."

-이번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시며 1996년의 치열했던 20대의 윤병주를 다시금 마주하게 되실 텐데요. 시간을 건너뛰어 그 젊은 시절의 본인에게 다정하게 건네고 싶은, 혹은 역으로 듣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알아서 해라.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20대에게 굳이 듣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페스티벌 무대의 마지막 곡이 끝나고 앰프의 전원이 내려간 뒤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을 때, 노이즈가든 1집 30주년이라는 긴 여정의 끝에 개인적으로 남겨두고 싶은 단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96년생이 벌써 서른 하나가 됐구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리(Sound)'가 세상의 질서에 부합하는 정돈된 언어라면, '소음(Noise)'은 그 질서와 융합되지 못하고 불화하는 날 것의 저항이자 불순물일 텐데요. 그 거칠고 배제된 소음들을 긁어모아 기어이 자신만의 '정원(Garden)'으로 가꿔냈다는 것은, 세상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철저히 독립적인 미학적 생태계를 완성하려 했던 치열한 윤리적 선언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1990년대 인디 신의 황무지에 뿌려졌던 그 불온한 씨앗이 30년의 세월을 통과하며 한국 록 역사상 가장 독보적이고 굵직한 '소음의 정원'으로 자라났습니다. 지금 그 울창한 정원의 한가운데 서서 지난 궤적을 돌아보실 때, 처음 그 땅을 일구던 20대의 윤병주가 종국에 이 정원을 통해 피워내고 싶었던 단 하나의 숭고한 아름다움, 혹은 도달하고 싶었던 궁극의 정원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다고 기억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너무 좋게 말씀해 주셔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네요. 위에도 이야기했듯이 그땐 '내가 듣고 싶고 좋아할 만한 음악이 주위에 없으니 내가 만들어 보자'고 시작을 했고 해 나가면서는 '기왕 시작한 거 가장 극단적으로 한 번 해 보자'라는 패기만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가장 무겁고 가장 서정적이면서도 가장 혼란스럽기도 한 그 무언가. 이 음악을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도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원하는 걸 다 펼쳐보자는 마음이었고 그 결과물이 노이즈가든의 음악이었습니다. 말해 놓고 보니 거창한 의도에 비해 좀 초라한 결과물인 듯도 하네요. 하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고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은 크게 변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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