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이 한국에서도 성공한다면…

물론 대단한 기록이긴 하다. 그러나 딱히 어마어마하달 것까진 없다. 비평계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영화비평집계 사이트 ‘로튼 토마토(www.rottentomatoes.com)’에 따르면 ‘인셉션’은 영어권 237명의 비평가들 중 204명이 호평, 33명이 혹평을 내놓아 호평률 86%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대단한 비평적 성과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달 것까진 없다. 당장 ‘인셉션’ 개봉 주 5위에 231명 비평가들 중 혹평을 보낸 이가 단 3명에 불과한 호평률 99%의 ‘토이 스토리 3’가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인셉션’을 ‘잇(It)’ 영화로 만들고 있을까. 인터넷 영화 여론을 선도하는 영화 마니아층의 반응이다. ‘인셉션’은 현재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의 네티즌 폴에서 평점 9.3을 기록, 역대 영화들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는 ‘쇼생크 탈출’, 2위는 ‘대부’고, 바로 아래 4위는 ‘대부 2’다. 놀런의 전작 ‘다크 나이트’가 개봉 초기 2위까지 올라갔다가 현재 12위에 랭크된 상황에 비춰보면, ‘인셉션’ 역시 개봉이 마무리되고 블루레이 등이 출시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20위 내에 랭크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모든 영화들 중 20위 내’라는 이야기다.
‘인셉션’은 영화흥행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www.boxofficemojo.com)의 독자 폴에서도 전체 투표인원 중 89.8%가 A등급을 줘 통합 A등급을 얻고 있다. 역대 1위다. 폴이 일단락된 뒤에도 10위 내에 랭크될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도 ‘인셉션’이 일으킨 영화 마니아층의 열광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어마어마한 양의 네티즌 포스트들, 영화 스쿠프 사이트 에인트잇쿨뉴스(www.aint-it-cool-news.com)에 미친 듯이 게재되는 찬양성 리뷰들, 벌써부터 등장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평상복’ 코스튬 플레이 등 어마어마한 양의 문화현상들이 일거에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열띤 분위기가 감지되자 일반 대중도 점차 ‘인셉션’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딱히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플롯이 아님에도 흥행수익 면에서 고른 진행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미국 내 2억 달러 이상 흥행도 가능하리라는 예상이다.
이쯤부터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미국 내 영화 마니아층은 ‘인셉션’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는 걸까. 이유는 많다. 일단 영화 자체가 견고하다. 액션 연출이 창의적이다. 비주얼적인 상상력이 압도적이다. 플롯이 복잡하긴 하지만 시계태엽처럼 착착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이런 여러 장점들에 불구, ‘인셉션’의 결정적 흥행코드는 역시 한 가지로 압축될 수밖에 없다. 서구 영화 마니아층은 ‘원래’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영화’란? 꿈과 현실 사이, 혹은 가상현실과 실제현실 사이 경계를 넘나드는 SF 블록버스터들, 장자의 호접몽을 블록버스터적 감수성으로 풀어낸 영화들을 가리킨다.
유사 성공사례들은 워낙 많다. 일단 1999년작 ‘매트릭스’부터 시작해야 한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와 그 할리우드판 ‘바닐라 스카이’, 꿈속에서 살인자의 은닉된 범죄 장소를 찾는 ‘더 셀’, 베트남전 망상 ‘제이콥의 사다리’, 역시 꿈의 침입자를 그린 ‘드림스케이프’, 가상현실 세계를 다룬 ‘엑시스텐즈’, 돌이켜보면 ‘나이트메어’ 프랜차이즈의 프레디 크루거도 분명 ‘꿈의 학살자’였다.
이런 영화들은 1980년대 즈음부터 조금씩 마이너 시장에서 기능해오며 마니아들의 애착 아이템으로 자리 잡다, 기억의 테마를 비튼 1990년작 ‘토탈 리콜’을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트릭스’가 절대적 도화선이 됐다.
왜 서구 영화 마니아층이 꿈과 현실 사이 경계를 다룬 영화들에 그토록 열광하는지는 여전히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몇 가지 가설은 세워볼 수 있다. 먼저 서구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에 지루함을 느낀 서구 젊은 세대는 지난 1960년대 이후 꾸준히 동양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에 매료돼 왔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기말의 대중적 불안감을 타고 현실세계로부터의 도피욕구가 발현됐다는 가설이다.
실제로 꿈과 현실, 가상현실과 실제현실 외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허구의 것이었다는 전제의 영화들이 1998년과 1999년 사이 일제히 쏟아져 나온 바 있다. ‘다크 시티’, ‘트루먼 쇼’, ‘13층’ 등이 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통해 또 다시 대중적 불안감이 퍼져나가자 또 다시 현실로부터의 도피욕구를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영화들은 특이하게도 서구에서 주로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세기말이건 금융위기 상황이건 모두 그랬다. 창의적 액션 시퀀스들로 그득한 ‘매트릭스’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유사 콘셉트 영화들은 아시아 시장에서 별달리 반응을 얻어낸 바가 없다. 미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트루먼 쇼’, ‘바닐라 스카이’, ‘더 셀’ 등도 아시아에서는 모두 패배했다. ‘인셉션’의 아시아 시장 성과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원인은 뭘까. 아시아는 기본적으로 장자의 호접몽 같은 사고에 익숙해있어 별달리 매력을 못 느낀다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아시아 시장은 꿈과 현실이 교차되는 복잡한 플롯을 즐기지 않다는 점도 있다. 단순하면서도 선도 굵고 명확한 플롯을 선호한다. 아시아 전체가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며 도피욕구 충족보다 현실적 저항의지 유도가 오히려 상업적인 코드로 재편됐다는 점도 짚어볼 만하다.
그래서인지 아시아 시장에서 꿈과 현실 간 경계를 다루는 영화들은 대부분 상업영화화 되지 못한 채 예술영화 영역에서만 머물고 있다. 그 숫자도 적다. 한국영화를 돌이켜봐도, 배창호의 1990년작 ‘꿈’, 김기덕의 근작 ‘비몽’, 이명세의 ‘M’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퍼펙트 블루’, ‘천년여우’, ‘파프리카’ 등을 연출한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 정도가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고 있으며, 역시 대중적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장자의 고향 중화권에서는 딱히 예를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다.
그렇다면 아시아권에서 등장한 많지 않은 이들 영화는 서구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김기덕 감독의 ‘비몽’은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에서 평점 6.6를 얻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8.1, ‘빈 집’이 8.0, ‘시간’이 7.2를 기록하는 등 김기덕 전작들이 대부분 높은 평가를 얻은 데 비하면 형편없는 평점이다. 이명세의 ‘M’은 그보다도 낮은 6.3이다. 반면 보다 장르화된 곤 사토시의 ‘파프리카’는 7.6, ‘천년여우’는 7.9를 얻고 있다.
결국 서구 영화 마니아층이 즐기는 것은 명확한 상업적 장르로 재편된 꿈과 현실 사이 경계 영화들이지, 그 개념 자체를 심오하게 짚고 들어간 예술영화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결국 앞으로도 미국을 위시로 한 서구 영화시장은 꾸준히 유사 콘셉트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주로 자국 시장 내에서 소비하고, 반면 아시아 시장은 꾸준히 이를 외면하리라는 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서구와 아시아가 다르게 돌아가는 코드들은 많다. 해외수출뿐 아니라 자국 영화시장의 라인업을 짜는 데 이런 코드들을 분명히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서로 상반된 흥행코드들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한 마디로 왜 아시아는 ‘다크 나이트’를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아시아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인셉션’의 흥행결과에 따라, 만약 성공한다면 ‘매트릭스’와의 연관성을, 실패한다면 ‘더 셀’과의 연관성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對) 할리우드 전략이란 결국 문화소비 패턴의 차이에 대한 이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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