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전성시대'…남성경찰 들러리 아닌 '민생지킴이' 자리매김

여경 수사관들이 담당한 사건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자 각 수사팀에서 여자경찰관들만 뽑아 수사팀을 시범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여자들끼리만 팀을 잘 꾸려갈 수 있겠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조사를 받고 돌아가는 민원인들의 편안한 뒷모습을 보면서 우려는 불식됐다.
1일 여성 경찰이 창설된 지 65돌을 맞았다. 여경은 한때 남성 경찰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경찰 조직 내에서도 그 역할과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소위 '우먼 파위'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여경 이렇게 변했다
여경의 시초는 60여년 전에 창설됐던 '여자경찰서'다. 1947년 2월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서울여자경찰서(초대 서장 양한나)가 설치됐다. 같은해 인천, 부산, 대구까지 4곳에 여자경찰서가 만들어졌다.
여자 서장에 서장 전용 지프차 운전요원까지 모든 직원들이 여자들로만 구성됐던 여자경찰서는 1957년 7월까지 약 10년간 존속됐다.
여자경찰서와는 달리 우리나라에 여자경찰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해방 직후인 미군정기였다. 1946년 5월 경찰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여자경찰제도의 창설이 논의됐다.
1946년 7월1일 경무부 공안국 안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됐다. 초대 과장에 고봉경 총경이 임명됐다. 이 여자경찰과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경찰 조직이었다.
편제된 경무부 여자경찰과는 정부수립 뒤인 1948년 11월 치안국 여자경찰과로 개편되고 1950년 3월31일 행정간소화 조치에 따라 치안국 보안과 여자경찰계로 다시 격하됐다.
초기 여경은 중학교 이상의 학력에 단정한 용모를 갖춘 원조 '엄친딸'격인 인재들이었다. '여경이 떴다'하면 구경꾼들이 몰려들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구가했다고 한다.
여경은 좌익단체의 벽보를 떼어내는 일로 업무를 시작했다. 대도시 교통혼잡지점에서 교통정리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순찰 하면서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해방되기 전까지 두려웠던 순사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청량제가 된 셈이다.
미군정 시대에는 미신타파, 문맹퇴치(한글강습), 구정과세 철폐 등 계몽사업에 앞장섰다. 오갈 데 없는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을 돕기 위해 구호품을 모집하기도 했다.
◇여경 역량 갈수록 강화…진정한 민싱지킴이
여경의 역량은 서서히 강화되고 있다.
1989년 경찰대학에 여학생이 입학한데 이어 1999년에는 여경기동대가 창설됐다. 2000년에는 경찰특공대에 여경이 배치됐고 간부후부생에도 여성이 채용됐다.
2005년부터는 여경채용목표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사법고시 여성 경정특채 등도 실시됐다.
올해 5월 현재까지 7013명의 여경이 근무하고 있다. 전체 경찰의 6.9%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의 특정분야에만 한정됐던 업무영역은 전 분야로 확대됐다.
실제로 7013명의 여경 중 수사분야 1471명, 교통분야 627명, 경비분야도 454명이 근무 중이다.
여자경찰의 활동 영역이 본격적으로 정비되면서 여경은 성매매 여성을 단속하고 조사·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주로 내근직 업무와 교통경찰이 여경에 다수였지만 이제는 형사·경비 등 여경의 업무영역이 확대됐다. 경찰 조직 곳곳에서 남성 경찰 못지않은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시위 현장 일선에 투입돼 질서 유지부터 불법시위자 연행에 이르기까지 다각도로 활약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불법 안마시술소 등 변종 성매매업소 단속에는 여경기동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동·청소년·여성·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경의 역할이 재조명 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체적인 강인함을 요구하는 경찰 분야의 업무 특성상 여경이 진정한 파트너로 인정받기에 종종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며 "그러나 여경 특유의 섬세함과 열정을 통해 진정한 민생 지킴이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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