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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궁중음악에서 한국을 듣다

등록 2011.10.29 08:21:00수정 2016.12.27 22: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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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일 오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우리민속한마당 특별공연 '후에 전통궁정예술공연단의 베트남 궁정무용과 음악'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윤소희의 음악과 여행<70>  

 아침잠이 유독 많은지라 침대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든 체질인데 프놈펜에 머물렀던 몇 일간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뷔페식으로 차려지는 아침 메뉴 중에 베트남국수가 맛있다는 소문이 객실 손님들 사이에서도 자자했던지라 일찍 일어나지 않고는 국수 맛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물에 살살 녹는 가느다란 면발이며, 가지가지 야채와 고기들을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었던 그 맛이 어찌나 기막히던지 한국에 와서도 베트남 쌀국수집이라면 빠지지 않고 가 봤다. 서울 시청 앞 모 처의 식당부터 부산의 해운대, 심지어는 미얀마와 태국에서도 쌀국수를 사먹어 봤지만 프놈펜 호텔에서 먹은 그 맛은 아니었다.   

 일찍이 아침을 먹었으니 시간이 넉넉해 매콩 강가로 나가 아이들과 놀기도 했었다. 항시 붉은 황토 빛 강물인지라 이곳 아이들은 강을 그릴 때면 황토색으로 칠한단다. 푸른 강가에 나무와 들판이 아롱다롱 어여쁜 한국의 산새들에 비하면 황토빛 메콩강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느껴지니 우리네 강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지 모르겠다.  

 프놈펜의 메콩강은 폭이 어찌나 큰지 강이라고 일러주지 않으면 바다로 여길 정도였다. 황토물이 벌건 강에는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배들이 수시로 다녔다. 그나저나 저 배를 타고 가면 베트남이라는데 한번 가 볼까나?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여러 가지 짜인 일정들로 해서 꿈을 접어야 했으니 아직도 베트남은 숙제로만 남아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월남전 파병을 비롯해 동남아의 어떤 나라보다 인연이 깊은 곳인데 이상하게도 그 곳에 갈 인연이 닿지 않아 아카이브지 자료를 통해서만 베트남의 악가무들을 봤다. 그러다 태국에서 베트남 악단과 함께 연주를 하게 됐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미얀마, 태국, 베트남, 한국의 음악을 번갈아 연주한 그때에 베트남음악은 유난히 빠르고 기교적이라 다소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 중에 초절기교적인 테크닉으로 현란한 잔가락을 구사 하던 사오(Sao)의 연주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2, 3일 계속되는 연주회에서 비슷한 패턴의 베트남음악을 듣자니 나중에는 은근히 싫증이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느린 음악에 익숙한 한국사람 특유의 반응이려니 생각했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한자(漢字)를 쓰는 베트남인지라 공자의 예악(禮樂) 정신 또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음악의 번차함을 피하기 위해 명주실을 양잿물에 삶아 소리를 눅눅하게 하고, 금(琴)과 슬(瑟)의 줄 간격을 넓게 해 빠른 음악을 피했다. “가장 낮음 음을 궁(宮)으로 해 황제의 자리로 삼았던 예악을 숭상한 나라가 저리도 기교적인 음악이라….” 그제야 생각해 보니 사회주의 혁명을 겪은 중국의 요즈음 음악과 비슷하지 않은가.  

 베트남 궁중음악은 한국과 관련되는 면이 많다. 우선 궁중음악을 ‘냐낙(雅樂)’이라 부르는 것부터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내는 제례음악 ‘쟈오낙’에다 대뜰 위 아래서 연주하는 등가와 헌가며, 거기에 편성되는 편종·편경, 중국식 월금과 비파, 한국의 가야금과 유사한 ‘단짠’에 이르기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10일 오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민속한마당 특별공연 '베트남 궁정무용과 음악' 공연에서 후에 궁정예술공연단이 열연하고 있다.  chocrystal@newsis.com

 베트남 여인들의 전통 복장인 ‘아오자이’가 중국의 ‘치빠오’를 개량한 것이다 보니 궁중 악가무에서 여인들이 춤출 때 입는 무복에도 중국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도 대륙을 따라 이곳에까지 이르렀으니 베트남의 풍류도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그랬듯이 베트남도 늦어서야 전통문화의 가치를 알고 되찾으려니 옛 노래와 춤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다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리하여 얼마 전에는 편종·편경을 복원하기 위해 한국의 악기 제조법을 배워가기도 했단다.  

 베트남의 악기들을 보면 중국 계통 못지않게 동남아의 토속 악기들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동남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가장 독특한 악기를 들자면 ‘단 바오(dan bao)’라는 일현금(一絃琴)을 둘 수 있다.

 가느다란 버팀 목에 하나의 줄을 메달아 연주하는 이 악기는 왼손으로 줄의 버팀목을 당기고 밀면서 선율을 연주하는데 외줄로 된 악기에서 울려나오는 선율이 어찌나 간드러지는 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은근한 멋을 좋아하는 우리네 감성으로 보면 너무 자극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베트남의 음악을 살펴 본 중에 필자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일본의 후지 도모아키 선생이 1970년대에 촬영한 어느 마을 악사들의 연주였다. 대나무 실로폰이라 할 수 있는 ‘단 터릉(dan t’rung)’과 베틀 모양의 틀에 대나무 관대를 메단 악기에 퉁소 모양의 관악기가 어우러진 합주였던 그 연주는 일정한 음형을 반복하는 단 터릉의 반주 위에 퉁소의 바람소리가 일본의 샤쿠하찌와 비슷하기도 하여 더욱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무한히 반복되는 단 터릉의 음형이 신비롭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그 위에 어우러지는 퉁소 선율의 농담이 역동적이면서도 운치가 있어 근간에 들은 음악들과는 사뭇 다른 고전미가 있었다.  

 70년대, 그때만 해도 옛날이어서 그럴까? 아니면 태국에서 본 베트남 전통 음악단이 유독 기교적인 악곡들만을 연주해서일까? 베트남을 찾아 그들 음악의 현실을 살펴보지 않고는 무어라 시원하게 말 할 수 없지만 하여간 프놈펜 호텔에서 먹었던 맛있는 쌀국수의 본고장 베트남인지라 더욱 조급히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작곡가·음악인류학 박사 http://cafe.daum.net/ysh3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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