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부모는 스물두살 딸의 베드신을 허락했다

【서울=뉴시스】홍찬선 기자 = 영화 '은교'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김고은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데뷔작인 멜로 ‘은교’에서 70대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그의 젊은 제자 ‘서지우’(김무열) 사이에서 벌이는 외줄타기와 같은 위험한 사랑도 모자라 전라로 이들과 차례로 격정적인 베드신까지 펼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왠지 추하지 않다. 값싸게 느껴지도 않다. 박범신(66)이라는 작가의 원작에 기초했다는 가치 덕일 수도, 아니면 ‘해피엔드’(1999)의 정지우(44) 감독 연출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고은이라는 생짜 신인이 영화에서 외모와 연기로 표현해낸 ‘은교’의 캐릭터가 가치 있고, 신뢰할 수 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를 지켜본 관객이라면 작품을 위해 용기를 냈고, 훌륭한 연기를 한 이 신예를 향해 무한 찬사를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동시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이 아무리 연기라도 대중 앞에 치부를 드러내며 베드신을 치러야 하는 것을 묵묵히 허락한 그녀의 부모에게도 더없는 경외심을 바친다.

【서울=뉴시스】홍찬선 기자 = 영화 '은교'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김고은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오디션을 본 뒤 감독님이 제가 마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나흘의 시간을 주셨어요. 그때 부모님과 상의를 했죠. 마침 ‘은교’라는 소설은 오디션 얘기가 나오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봤거든요. 어떤 내용인지 이미 알고 계신 상태였죠. 거기에 제가 어떤 연기를 하게 되는지까지 설명해드렸어요. 당연히 반대하셨죠. 꼭 해보고 싶다고 계속 말씀을 드렸지만 방에 들어가시더니 나오시지 않더군요.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려고 하는데 20분 가량 지난 뒤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셨어요. 그리고 ‘꼭 하고 싶느냐’고 물으셨고, 저눈 ‘네’라고 대답했죠. 그러자 ‘꼭 하고 싶으면 해라’고 하시는 것이었어요.”
김고은 스스로도 놀라울 수 밖에 없었을 부친의 허락은 어쩌면 부친 역시 ‘은교’라는 소설을 읽으며 좋은 인상을 갖게 된 것과 더불어 사업(건설업)을 하면서도 평소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품고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제가 어렸을 적부터 DVD장에 수많은 영화를 소장하고 계시면서 제게 곧잘 보여주셨고, 서로 영화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예고를 가겠다고 했을 때나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나 반대 없이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셨죠. 이번 허락 역시 그랬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홍찬선 기자 = 영화 '은교'에서 열연을 펼친 배우 김고은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 뉴시스에서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무대 인사를 하려고 섰는데 가운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4번째 줄에 앉아 활짝 웃고 계셨어요. 문득 보시고 난 다음에 마음이 어떠실까, 얼마나 아프실까, 그때도 저렇게 밝게 웃으실까 걱정도 되고, 속상도 했어요. 시사회가 끝나기만 초조하게 기다렸죠.그리고 부모님을 만났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어머니도 옆에서 아무 말씀 안 하고 계셨구요. 다행히 두 분 다 표정이 밝으셨어요. 그때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냥 헤어졌는데 아버지가 집으로 가시면서 제게 긴 문자를 보내주셨답니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니. 대견하게 생각한다. 자랑스럽다’고요. 그동안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소중함을 잘 모르고 지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어요.”
딸의 용기를 존중해준 부친이 있었기에 “‘은교’를 발판삼아 뜨고 싶어 했던 300명의 여배우와 다르게 김고은은 ‘은교’ 자체가 목표였다”는 정 감독의 말처럼 진정성 자체인 연기를 우리는 지금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그런 부친의 뜻이 호되지만 아름다운 신고식을 치른 김고은을 우리 눈 앞에 반짝 떠올랐다가 곧 사라지고 마는 ‘스타’가 아니라 오래도록 우리의 애환을 대변해줄 ‘배우’로 자리 잡게 해줄 것이다.
“아버지가 ‘은교’ 출연을 허락하시면서 덧붙이신 말씀이 ‘너는 이제 풋풋한 신인이라는 수식어도, 예쁘게 포장될 수도 없다. 연기로 밀고 나갈 수 밖에…’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이 제게 ‘은교’를 허락해주시는 조건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게 ‘은교’가 평생 데뷔작으로 남듯이 그 조건도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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