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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동학농민혁명 부안 '백산봉기', 혁명 중 가장 위대한 사건

등록 2013.07.08 15:05:10수정 2016.12.28 07: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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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뉴시스】부안군의회 의장 박천호. 2013.07.08.

【부안=뉴시스】부안군의회 의장 박천호. 2013.07.08.

【부안=뉴시스】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된 농민의 수가 30만에 이른다는 말이 전한다. 30만이면 그 당시 인구로 보아 엄청난 백성이 혁명에 참가한 것이며 폐정을 개혁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그리 많은 백성들의 피가 강산에 흘렀다. 선열들의 희생으로 우리나라의 봉건사회가 마무리됐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서적 바탕이 됐으며, 자유와 민주를 외칠 수 있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동학농민혁명을 프랑스 대혁명 및 중국 태평천국혁명과 함께 인본주의가 바탕이 된 세계 3대 시민혁명으로 주저 없이 꼽는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이때의 희생을 고귀하게 여겨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을 골자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본격적인 선양사업에 나선 상태다.

 '앉으면 죽산, 일어서면 백산'으로 대변되는 우리 부안 백산은 혁명 초기에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반봉건·반외세'가 결합한 완성된 격문이 발표됐고 동학농민군의 행동강령 등 비로소 군대의 직제를 갖추게 된 곳이 백산이며 이것이 바로 '백산봉기'이다. 동학농민혁명과 관계된 수많은 지역 중에서 부안의 백산은 그 어느 지역의 사건보다 가치적 측면에서 절대 뒤에 서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백산봉기 이전의 모든 사건들이 백산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기념일 제정을 두고 인근 정읍과 고창이 치열한 각축을 벌이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부안의 백산봉기는 한없이 묻혀가고 있다. 더구나 일부 인사들은 기념일 제정 각축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백산봉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등 선열들을 욕보이고 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은 혁명 당시 백산이 고부군에 속했었다는 이유로 현재 우리 부안군민들마저 동학농민혁명과 그 속의 백산봉기를 남의 일처럼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수년간 개최된 '동학농민혁명백산봉기기념대회'가 부안군민 모두가 인식하고 참여하는 행사로 발전되지 못한 채 가로막힌 가장 큰 장애요인이기도 하다.  

 폐정을 개혁하고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피 흘렸던 우리 선열들, 이들과 뜻을 같이해 백산에 총집결했던 전국의 동학농민군에게 더 이상 부안의 군민으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기념일을 제정하는 문제에서 주도권을 잡진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 지고 있는 역사 왜곡의 분위기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법에 따라 선양사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될 때, 또는 현시대를 넘어 후대가 선양사업을 이어받을 때, 이때만큼은 우리 부안군민도 선열께 송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 부안에 와서 선열들의 고귀한 정신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부안군민이 적극적인 자세로 선양사업에 나설 때이다.

/부안군의회 의장 박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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