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 단독]이슈진단 '말많은 전자개표기, 이번엔 서류위조 수출 의혹'-선관위 홈페이지에 8개 명칭 '아리송'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지난 2003년 필리핀에 자동개표기(일명 전자개표기)를 수출하면서 위조된 납품실적증명서(사진)가 제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한국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은 위원회 및 당시 위원장 이름 등의 영문 표기가 한국에서 사용되는 것과 달라 위조 여부 등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mail protected]
한 마디로 말하면 현재 사용되는 전자개표기는 투표지자동분류기로서 개표의 보조장치일 뿐 자동개표기가 아니다. 분류기는 투표지를 단순히 후보자별로 구분해 주는 것으로서, 사람이 수작업으로 다시 투표 매수를 확인하는 과정을 분명히 거쳐야 한다. 이에 비해 자동개표기는 수작업이 필요 없이 곧바로 후보자별로 득표수를 밝혀내는 기계이다. 엄연히 다른 기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거법상 개표를 전적으로 기계에 맡기는 자동개표기 사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앙선관위가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에 사용하기 위해 조달청의 국제입찰을 통해 구입할 때도 ‘투표지자동분류기(Ballot Paper Sorting Machine)’로 명시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개표 관리방침은 공직선거법 제178조 제4항에 의해 위임된 공직선거관리규칙 제99조 제3항에 규정돼 있다. 선관위 홈 페이지에는 이 법률에 의거해 ‘투표지를 유·무효별, 또는 후보자별로 구분하고 계산하는데 필요한 기계장치나 전산조직’으로서 투표지분류기를 도입했음을 밝히고 있다.
선관위 한글 홈 페이지에는 “투표지분류기가 1차적으로 유효투표지를 후보자별로 구분하면 이 유효투표지를 심사·집계부에서 수작업 방식으로 한 장씩 한 장씩 전량 재확인하여 개표 상황표에 그 결과를 수기(手記)로 작성합니다. 기표의 부정확 등으로 투표지분류기가 분류하지 못한 투표지는 육안으로 유·무효를 판별하여 유효표를 후보자별로 합산합니다”라고 적시해 놓고 있다.
그런데 선관위 영문 홈페이지 2011년 10월15일에는 ‘자동개표 및 분류기’라는 명칭으로 소개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 “잘못돼 있다. 국내에서는 분류기로 사용했으면서 외국인에게는 자동개표기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항의하자 5일 후인 20일에는 ‘투표지분류기’로 바꿨다.
중앙선관위 영문 홈페이지에서 2013년 1월15일에 확인한 바 ‘Counting Machine(자동개표기)’으로 표기해 다시 자동개표기라고 바꿨고, 다시 1월29일엔 ‘Ballot Sorting Machine(투표지분류기)’이라고 고쳤다. 6월24일엔 개표기에 대한 설명 자체가 사라졌고, 7월17일엔 또 다시 ‘Ballot Counting Machine’이라고 바뀌었다.
또 7월29일엔 ‘Optical Scan Counter(광학검색개표기)’라고 표기돼 있어 투표지분류기라는 의미는 전혀 담겨있지 않은 상태이다.
중앙선관위가 영문판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이유는 국제화 시대에 선거관리에 대한 국제교류에 기여하고, UN 등의 선거감시 모니터링에 편의를 제공하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선관위는 이렇게 영문 홈페이지에 ‘Ballot Paper Sorting Machine’이라는 적절한 표기를 두고 ‘Counting Machine(자동개표기)’ 등 다른 명칭을 써왔을까.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영문 표기를 변경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한글판에는 분명히 투표지분류기라고 원래대로 밝혀놓고 있다. 여기에는 “이 기계는 ‘투표지분류기’이며, 과거에 투표지를 손으로 분류하던 작업을 대신해 주는 단순한 기계장치입니다. 그 기능은 투표지를 후보자별로 분류·집계하는데 한정되고, 최종 개표결과는 심사·집계부 및 위원 검열석의 육안검사를 거쳐 위원장이 확정·공표하기 때문에 투표지분류기가 개표를 단번에 자동적으로 대행해주는 전산시스템이 아닙니다”라고 명시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문판에서는 ‘Counting Machine’(자동개표기) 등으로 표기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 밖에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항의했다는 한 시민은 “‘Ballot Paper Sorting Machine’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자꾸 영문표기를 바꾸고, 급기야 ‘Optical Scan Counter’라는 기계작동원리를 그대로 적은 명칭까지 동원했을까를 음미해봐야 한다”며 “영어 잘하는 직원의 개인적인 견해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콩고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 3,4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부재자 투표소를 방문, 한국의 선거 시스템에 대한 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있다. [email protected]
두 기계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들이다. 조달청이 입찰에 부칠 당시는 ‘Ballot Paper Sorting Machine’이라고 명시돼 있다. 같은 신발이라도 구두와 운동화는 전혀 용도가 다르다. 운동화를 구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다.
적절한 명칭이 있는데도 전혀 의미가 다르고 부적절한 명칭을 붙이는 것은 혼란과 의혹만 부추긴다. 국내에선 분류기, 외국인에겐 개표기라고 ‘이중 표기’를 하는 이유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관계자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필리핀에 납품한 업체에 입찰 자격을 부여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개표에 보조적 장치로 사용했느냐, 개표를 전적으로 수행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 장치는 투표지를 후보자별, 혹은 미분류표로 분류하는 기계장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논어 자로(子路)편에서 공자가 이름의 중요성을 역설한 부분을 음미할 만하다.
자로가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께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라고 묻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을 하겠다(子曰 必也正名乎)”고 답변했다.
또 자로가 “선생님 말씀은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잡히겠습니까?(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라고 반문하자 공자는 “천하고 속되구나! 군자는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는 법이니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못하는 못한다.(子曰 野哉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고 꾸짖었다.
이어 공자는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도리에 맞지 않고, 형벌이 도리에 맞지 않으면 백성들은 손발을 어디 놓을지 모르게 된다.(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라고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군자는 명분이 서면, 그것에 대해 반드시 바른 논리를 세워야 하고, 바른 논리를 세우면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군자가 그 말에 관한 한 어디에도 구차스러움이 없어야 한다.(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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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40호(8월13일~19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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