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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삶]카투사 1세대 이춘락 할아버지의 6·25전쟁

등록 2014.06.04 10:33:22수정 2016.12.28 12: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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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중구 복산동에 사는 이춘락(87) 할아버지가 1950년 6·25전쟁 당시 카투사 1세대로 참전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 2014.06.04. (사진=울산 중구 제공)  phot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중구 복산동에 사는 이춘락(87) 할아버지가 1950년 6·25전쟁 당시 카투사 1세대로 참전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 2014.06.04. (사진=울산 중구 제공)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전쟁터에서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닌 잘 생긴 백인 청년이 생각납니다"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하얗게 샌 눈썹과는 달리 가지런히 빗은 머리카락만큼이나 노병의 자태는 꼿꼿했다.

 울산 중구 복산동에 사는 이춘락(87) 할아버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카투사 1세대로 참전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할아버지는 전쟁이 발발하고 그해 9월 입대해 일본에서 미군을 지원하는 카투사 훈련을 받고 국군의 북진이 한창이던 11월 북한땅 원산에 배치됐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 졸업식이 6월에 있어 담임을 맡은 6학년 애들을 졸업시키고 9월 새학기 준비도 못 한 채 곧바로 입대했어. 양키(미군)들과 함께 일본에서 2개월 정도 훈련을 받고 곧장 전쟁터로 보내졌지."

 아무런 준비 없이 닥친 난리에 국가도, 국민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달랑 총 쏘는 법만 배우고 쫓기다시피 미군과 함께 전선으로 향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할아버지는 인민군을 쫓아 함흥을 지나 개마고원을 넘어 백두산 근처까지 밀고 올라갔다.

 "한번은 밤에 근무를 서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야. 놀라서 다른 초소에 연락해 보니 거기서도 똑같이 들린다는 거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민군이 후퇴하며 무고한 양민을 학살해서 눈비가 올 때면 원혼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어."  

 그해 12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국군과 UN군은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할아버지는 그 유명한 흥남철수작전과 장진호 전투를 직접 경험했다.

 "정말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지. 배에서 보니 미처 배에 올라타지 못한 피란민들의 인파가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야. 꼭 돌아오겠노라 약속했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팠어."

 그때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지 1·4후퇴를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가 할아버지의 애창곡이 됐다고.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중구 복산동에 사는 이춘락(87) 할아버지가 1950년 6·25전쟁 당시 카투사 1세대로 참전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 2014.06.04. (사진=울산 중구 제공)  phot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중구 복산동에 사는 이춘락(87) 할아버지가 1950년 6·25전쟁 당시 카투사 1세대로 참전했던 일을 회상하고 있다. 2014.06.04. (사진=울산 중구 제공)  [email protected]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 참 후인 1955년 제대해 다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와 교편을 잡았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4주년을 맞아 할아버지는 꼭 만나고 싶은 전우가 있다고.

 1953년 휴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펼쳐지던 강원도 오성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미군병사를 찾고 싶어 했다.

 "신병을 받았는데 미국 코넥티커주 출신 스미스(kenneth,c, smith)라는 친구야. 대학 2학년으로 지원 입대를 했는데 키도 크고 미남형이었지. 그 친구가 대뜸 나에게 전투 중에 다친 적이 있느냐고 묻길래 없다고 하니 그때부터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녔지. 불사신으로 생각했는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

 할아버지는 일본인 여자친구를 둔 스미스를 위해 일본어편지를 번역해주기도 하고 답장도 대필해 줄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고 웃음지었다.

 전쟁이 끝나고 한 참 후인 1999년 스미스의 군번과 당시 다녔던 대학교를 알고 있어 주미한국대사관 등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아직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이맘 때가 되면 그때 사진을 보며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어. 살아 있다면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어"

 이 할아버지는 현재 6·25 국가유공자회 울산지부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의 집에는 지난 4월 중구청에서 제공한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커다란 문패가 걸려있다.

 "대부분 유공자들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다 보니 어렵고 힘들게 살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참전했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바라는 것은 우리 후손들이 선대들이 어떠한 고난과 희생으로 이 나라를 지켰는지 알아줬으면 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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