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금도 필요없다"…일본의 사과 못받고 눈 감은 안점순 할머니

【수원=뉴시스】이정선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30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장례식장에 안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1928년에 태어나 14세가 되던 해에 강제 연행돼 고초를 겪은 뒤 최근까지 평화인권 활동가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섰던 안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29명으로 줄었다. 2018.03.30. [email protected]
【수원=뉴시스】 장태영 기자 = 30일 향년 90세로 세상을 떠난 안점순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는 서울 마포구에서 유년시설을 보냈다.
3남매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돕던 안 할머니는 14살이던 1942년 어느 날 "마포 복사골 큰 방앗간 앞으로 여자들은 다 모이라"는 동내 방송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방앗간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있던 일본인들은 안 할머니를 포함해 동내 여성들을 쌀가마 저울로 몸무게를 잰 뒤 강제로 트럭에 태웠다. 당시 안 할머니는 어렸지만, 몸무게가 어느 정도 나간다는 이유로 끌려갔다.
기차를 타고 평양, 중국 베이징, 톈진을 거쳐 모래만 보이는 곳으로 끌려간 안 할머니는 지옥같은 삶을 살게 됐다. 일본군은 이동할 때마다 안 할머니와 여성들을 데리고 다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는 "안 할머니는 그때 상황을 떠올리면서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지'라고 말했다"라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한 안 할머니는 무작정 고향을 향해 걸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 수도 없을 어느 날 우연히 윤씨 성을 가진 광복군을 만났다.
윤씨의 도움으로 중국 톈진에서 인천항을 통해 고향으로 온 안 할머니는 자신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수원=뉴시스】김경호 기자 = 안점순 위안부 할머니가 현지시간 8일 오후 3시께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2017.03.09(사진= '독일 평화의 소녀상 수원시민 건립 추진위원회' 제공) [email protected]
귀국 후 수십 년 동안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강원도, 대구 등을 떠돌며 생계에만 매달린 안 할머니는 1992년 조카(오빠의 큰아들)와 경기 수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안 할머니는 지난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1924년 10월~1997년 12월)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막내 조카딸의 신고로 자신이 겪었던 '성노예'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위안부 피해자로는 1993년 등록됐다.
이후 안 할머니는 2002년부터 인권 캠프, 수요시위, 아시아연대회 등에 위안부 피해 증언과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평화인권 활동가로 활동했다.
정대협 관계자는 "생전 안 할머니는 항상 '저들이 스스로 반성을 해야 되는데, 그놈들 웬수를 어떻게 갚겠노'라고 했다"고 전했다.
수원시가 제작, 지난 8일 공개한 '안점순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의 헌정 영상에서도 안 할머니는 "억만금을 우리한테 준들 내 청춘이 돌아오지 않는데, 가해자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당당하고, 피해자인 우리는 고통을 받고 있다"라며 일본의 사과를 요구했다.

【수원=뉴시스】 이정선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된 30일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학교 장례식장에 안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email protected]
안 할머니는 30일 오전 10시 30분께 마지막 소원이던 일본의 사과를 끝내 받지 못하고 한(恨) 많은 생을 마감했다. 안 할머니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9명으로 줄었다. 올해에만 안 할머니를 포함해 3명이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아주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4월 1일, 추모제는 31일 오후 7시30분 열린다. 수원시청에도 분양소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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