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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전 예천 지보에 '말무덤' 만들었다. 왜?

등록 2021.04.03 06:00:00수정 2021.04.03 06: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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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간 사소한 말이 큰싸움으로 번지는 등 불화 잦아

싸움의 발단 '말(言)', 사발에 담아 묻어 '말무덤' 조성

말무덤 만든 뒤 마을엔 싸움 없어지고 정 두터워져

"말할 때는 상대방 배려하고 가려서 해야 교훈"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소재 '말무덤'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소재 '말무덤'

[예천=뉴시스] 김진호 기자 =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막말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암환자' '중증 치매환자' '쓰레기' '적반하장의 화신' 등 상대방을 흠집내기 위해 거친 말이 동원됐다.

이 같은 네거티브 전략은 통상 후진적인 선거운동 방법으로 비판 받곤 한다.

하지만 경쟁 후보자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반사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에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한다.

그 때마다 '정책 대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지만 여태껏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웃 또는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도 거친 언어가 종종 등장한다.

선거판이든, 이웃간이든 정제되지 않고 쏱아낸 거친 말의 후유증은 크고 오래 간다.

예천 지보면 대죽리 소재 말무덤

예천 지보면 대죽리 소재 말무덤

다툼이 일단락되더라도 당시 절제되지 않은 '말' 공격으로 인해 생긴 생채기는 평생 기억에 잔상으로 남아 상대방을 불신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무심코 뱉은 말이 불신이나 다툼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선현들은 항상 말을 조심하라고 후대에게 경고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전해진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가 그렇다.

이 마을은 60여 가구에 주민 120여명이 살고 있다.

70~80년 전에는 300여 가구에 달했지만 경제발전과 함께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면서 빈집도 많고,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예천 말무덤 조각탑

예천 말무덤 조각탑

마을 앞에 나즈막한 주둥개산에는 400~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말무덤'이 있다.

이동수단으로 타고 다니는 '말(馬)'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말(言)'의 '무덤(塚)'이다.

예천군에 따르면 당시 이 마을에는 김녕김, 밀양박, 김해김, 경주최, 진주류, 인천채씨 등 많은 성씨들이 함께 모여 살았다.

많은 성씨들이 거주하다 보니 문중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등 말썽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 찾기에 골몰했다.

어느 날 한 과객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를 보고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말무덤 주변 바위에 '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금언이 새겨져 있다.

말무덤 주변 바위에 '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금언이 새겨져 있다.

그는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이다.마치 개가 짖어대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을이 항상 시끄럽다"며 예방책을 일러주고 떠났다.

실제로 대죽리를 둘러싸고 있는 야산은 그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는 듯해 '주둥개산'이라 불렸다.

마을 사람들은 과객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에 해당하는 논 중앙에는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재갈 바위를 세웠다.

이어 마을사람 모두에게 사발을 하나씩 가져오게 한 뒤 주둥개산에 큰구덩이를 파놓고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과 비방과 욕을 모두 각자의 사발에 뱉어놓으라"고 했다.

싸움의 발단이 된 '말(言)'들을 사발에 담은 뒤 깊이 묻어 '말무덤(言塚)'을 만들었다.

이런 처방이 있은 뒤부터 마을에서는 싸움이 없어지고 지금까지 두터운 정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500년전 예천 지보에 '말무덤' 만들었다. 왜?

예천군은 1990년부터 몇 차례에 걸쳐 말무덤 주변을 정비했다.

말무덤 주변에 배치한 10여개 바위에는 '말'과 관련된 다양한 격언과 금언을 새겨 말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했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 뜨린다'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가 두부 사온다'

'비단이 아무리 곱다 해도 말처럼 고운 것은 없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500년전 예천 지보에 '말무덤' 만들었다. 왜?

'화살은 쏘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줍는다'

'혀 밑에 죽을 말이 있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라'

'길 아니면 가지 말고, 말 아니면 듣지 마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 갚은다'

김진영(67) 대죽리 이장은 "말무덤 조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문헌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며 "말무덤을 만든 이후부터 문중간 싸움도 없어지고 마을도 화합이 잘됐다고 한다. 지금도 주민들간 분쟁이 전혀 없다"고 들려줬다.

이재완 예천박물관장은 "말무덤은 말을 할 때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고, 가려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며 "정치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품격있는 말로 대할 때 다툼과 불신, 불화는 크게 줄어 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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