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간 美 전투기 사격장, 매향리는 지금…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화성시 매향리 평화기념관 전경.2025.03.18.sonanom@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1794120_web.jpg?rnd=20250318105629)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화성시 매향리 평화기념관 전경[email protected]
[화성=뉴시스] 문영호 기자 = 지난 6일 훈련 중이던 공군 KF-16 전투기의 오폭으로 경기 포천시 이동면 민가에 포탄이 떨어져 민간인을 포함한 4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승진과학화훈련장과 영평훈련장 등 7곳의 군사격훈련장이 있는 포천지역에서는 시민사회단체가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위험한 일상에 대해 비판하고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화성시에는 지상 50m에서 굉음을 내며 날아 다니는 전투기의 소음과 전투기가 떨어뜨린 포탄의 굉음 속에서도 55년간 침묵으로 살아야 했던 마을이 있다. 화성시 우정읍 고온리(koon-ni). 영어표기를 미군이 그대로 읽으면서 '쿠니'로 불리던 곳, 미군 쿠니 사격장이 있던 매향리(梅香里)다.
2017년 성공회대 산학협력단이 발간한 '매향리의 역사·문화, 현대사 백서'에 따르면 1956년 불발탄 폭발로 어린이 4명이 숨진 것을 비롯해 1951~2005년 미군의 전투기 사격훈련장 사용 55년간 8명 사망·11명 부상, 주택파괴·난청·가축유산 등의 피해가 이어졌다. 1988년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돼 사격장 폐쇄 청원을 시작했고, 18년만인 2005년 8월, 이곳에 주둔했던 미군 제7공군 51전투비행단 소속 쿠니 에인져스 부대가 마을을 떠났다.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외부 옛 사격통제실에서 바라 본 농섬. 표적 안에 미군의 포격으로 사라진 농섬의 중심이 정조준돼 있다.2025.03.18.sonanom@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1794130_web.jpg?rnd=20250318105918)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외부 옛 사격통제실에서 바라 본 농섬. 표적 안에 미군의 포격으로 사라진 농섬의 중심이 정조준돼 있다[email protected]
폐쇄된 지 20년. 17일 기자가 찾은 쿠니사격장 부지에는 폐쇄 당시 농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매향리 평화생태공원과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들어섰다.
퇴역전투기 2대와 갯벌에 파묻혔던 포탄을 쌓아놓은 포탄더미, 사격장 운영 당시 사용했던 사격통제실과 위병소 등 6개의 시설이 과거 이곳이 쿠니사격장이었음을 알려준다. 사격통제실에 들어서면 50여년 간 전투기의 집중포화를 받으며 제 몸의 한가운데를 잃어버린 농섬이 표적 안에 정조준돼 있다. 포화 속에 풀 한 포기 없었던 농섬에 비죽비죽 위로 솟은 나무들이 보인다. 평화생태공원을 향해 지그재그로 갯벌길이 드러나 있다. 한 두 시간 후면 평화생태공원 평화의소녀상 앞 갯벌까지 이어질 터다.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 멀리 농섬을 바라보고 서 있다.2025.03.18.sonanom@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1794125_web.jpg?rnd=20250318105753)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 설치된 평화의소녀상. 멀리 농섬을 바라보고 서 있다[email protected]
사격통제실에서 농섬을 바라보다 뒤로 돌아서면, 일직선 상에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서 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55년간 매향리 주민들의 고통과 마을을 되찾기 위한 주민들의 역사를 기록·보존하고 미래 세대에 평화를 전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세계적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가 설계했다. '바다'와 '아픔'에서 설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원형 고리가 7개의 층으로 연결된 콘크리트 마감의 백색 건축물은 추모의 위령비다. 사격통제실을 가운데 놓고 농섬과 일직선상에 배치했다. 기나 긴 세월 동안 이뤄졌던 폭격과 그로 인한 피해 등을 층층이 쌓아올려 추모하는 뜻이리라.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회랑.2025.03.18.sonanom@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1794122_web.jpg?rnd=20250318105708)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회랑[email protected]
붉은색 작은 벽돌을 여러 개의 M자로 촘촘하게 쌓아 올린 기념관 입구 긴 회랑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건축업계 관계자들이 붉은 벽돌과 천장 벽돌마감 등을 보며 보타의 설계에 감탄한다고도 하지만 기자에게는 회랑 끝 하늘과 바다를 액자처럼 담은 구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한 발 다가설 때마다 M자형 기둥과 함께 과거의 아픈 기억을 뒤로 하고, 액자가 커지면서 탁 트인 하늘과 바다가 상징하는 희망이 가득 들어오도록 설계한 것일까.
매향리 평화기념관 내부에는 매향리의 아픈 과거, 쿠니사격장이 주민의 품으로 돌아왔던 과정 등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설치돼 있다. 또 매향리의 역사와 문화를 미래세대와 방문객에게 알려주는 세미나·교육실도 마련돼 있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매향리의 역사를 미래세대에게 상기시키고, 이를 통해 평화의 가치와 소중함을 공유하고 함께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바람을 담았다.
마침 3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유아 대상 생태교육과 학부모 대상 평화교육을 준비 중이란 안내문이 보인다. 미래세대와 함께 군 비행기 폭격으로 잃어버린 매향리의 생태계를 다시 되돌리겠다는 소소한 시작으로 읽힌다. 역사적 아픔의 원인을 알게 하고, 평화가 왜 중요한지 깨닫게 하겠다는 의지일 게다.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정원 매실나무에 몽우리가 맺혔다. 멀리 매향리 평화기념관 추모의 위령비가 보인다.2025.03.18.sonanom@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3/18/NISI20250318_0001794127_web.jpg?rnd=20250318105831)
[화성=뉴시스]문영호 기자=매향리 평화기념관 정원 매실나무에 몽우리가 맺혔다. 멀리 매향리 평화기념관 추모의 위령비가 보인다[email protected]
꽃샘추위에 더해 바닷바람까지 매섭다. 정원에 심어놓은 매화나무는 추위에 아랑곳 없이 싹을 틔우려는 듯 가지마다 몽우리를 피워냈다.
올해는 쿠니사격장 폐쇄 20주년이다. 주민의 손으로 되찾은 상징적 공간, 매향리 평화기념관은 내달 중순 정식 개관한다. 개관식에는 매화꽃이 무더기로 피어서 이곳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에 매화향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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