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주소록 아닌 주소력"…봉주연 시집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
![[신간]"주소록 아닌 주소력"…봉주연 시집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https://img1.newsis.com/2025/09/15/NISI20250915_0001944070_web.jpg?rnd=20250915190550)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봉주연 시인의 두번째 시집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첫번째 시집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현대문학, 2024)를 통해 무한한 마음을 띄워 보낸 시인은 시 52편을 총 4부로 나눠 묶은 이번 시집을 통해 그 마음이 닿고자 했던 곳곳의 주소들을 열어 보인다.
"식탁 아래에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해. 호텔 로비에 있는 그랜드피아노 아래에 들어가기도 했다. 벙커 침대를 갖고 싶어. 어디서 그런 말을 알아 온 건지. 나는 갖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말하는 사람을 보면 스스럽게 느껴져.//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 천에서, 유연함 속에서.//(중략)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면 장소들이 남는다./ 잘 자라다 가요." (42쪽, '주소력(住所歷)' 中 )
모든 장소는 이야기를 가진다. 우리가 여러 장소를 거치며 살아가고, 머무는 장소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웃고 떠든 자취가 남는다고 시인은 말한다.
수많은 장소로 구성되는 이 "세상이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손다운 손')음을 이해하는 시인은 장소들의 좌표를 위치가 아닌 내력으로 표시하고, 그 좌표들로 씌어진 시는 단순히 주소를 모아 적은 '주소록(錄)'이 아니라 그곳에서 지내며 겪은 시간까지 내포하는 '주소력(歷)'에 가깝다.
또한 봉주연 시인은 "주변도 장소의 범주에 포함"('This video is playing in picture in picture')시킴으로써 도로명이나 지번이 아닌 개개인의 역사로 주소를 읽어낼 때, 장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지라도 진실일 순 있다"('식물 식별 의지')고 강조한다.
"오래된 동화책을 펼치면 집냄새가 난다. 누구의 사랑을 받다가 여기로 오게 되었니. 부드러운 두 다리 사이에서. 정수리 위에서 목소리가 울린다. 내용을 기억할 필요가 없는 작은 방 안에 나뭇가지가 뻗쳤다. 방은 세상 전체가 된다. (중략) 눈을 떴을 때 방은 먼 곳까지 떠내려가 있었다. 시간이 몇 년은 흐른 것 같아. 방 안의 나무가 더 무성하게 자라 모퉁이마다 가지가 꺾였다." (49~50쪽, '정전 설계 도면' 中)
"해상도가 낮은 빗줄기에도 유리창엔 자국이 남는다.// 여름은 주머니가 없고// 벽은 경관을 끌어들인다.// 걷는 방향을 결정짓는 건 목적지가 아닌 것 같아. 벽을 따라서 걷는 것뿐입니다. 벽은 풍경을 전부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51쪽, '미술관 관람 속력' 中 )
시인 봉주연은 1995년 서울 공릉동에서 태어나 2023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모두 이불에서 태어난걸요'에서 '시인의 말'을 통해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거기에 돌부리가 있다는 말을 다섯 번쯤 듣고도 같은 곳에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당신은 내가 넘어질 곳에 습기 머금은 흙을 덮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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