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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등록 2026.01.29 16: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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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존 버거×장 모르의 '세상 끝의 기록'

세상의 끝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다워진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경이로움과 고유함이 스며든 그의 여행담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미술비평가인 존 버거의 이 문장은 곧 '세상 끝의 기록'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이자 태도다. 이 책 속 이야기에는 누구도 제외되지 않으며, 그 무엇도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가슴은 피를 흘리지만, 끝내 과장하지 않는다.

존 버거의 말처럼, 이 책은 글과 사진이 서로를 설명하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드문 균형 위에 서 있다. 글은 사진을 해석하지 않고, 사진은 글을 증명하지 않는다. 둘은 나란히 걷는다.

‘세상의 끝’이라는 말은 지리적 종착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장 모르가 말하는 끝은 모든 길이 막힌 듯한 지점에서 마주하는 공허이자, 동시에 한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문턱이다. 성취와 상실, 해방과 고독이 동시에 깃든 자리. 그곳에서 인간은 가장 취약해지고, 동시에 가장 인간다워진다.

세상 끝의 기록 *재판매 및 DB 금지

세상 끝의 기록 *재판매 및 DB 금지



장 모르의 사진은 흑백으로 남은 삶, 꾸미지 않은 인간의 얼굴을 기록한다.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 스리랑카의 농장, 멕시코의 반란군 집회…. 세속적 중심에서 벗어난 장소들에서 그는 삶을 견디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는 연민도, 영웅화도 없다. 다만 함께 서 있으려는 태도만이 있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40여 년의 기록 속에서 두 작가는 유독 소외된 이들에게 시선을 건넨다. 인권과 노동, 일상 속 인간 존엄의 문제를 탐구해 온 존 버거의 글과, 인본주의 다큐 사진의 거장 장 모르의 이미지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기록’이 아닌 ‘관계’로서의 예술을 마주하게 된다.

1999년 오리지널 초판 이후 20여 년 만에 출판사 더퀘스트가 국내 최초 양장본으로 복간한 이번 판본은 단순한 재출간이 아니다. 사진 에세이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예술 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해 왔다. 국내에서는 절판 이후 중고 서적으로만 회자됐으나, 이번 복간을 통해 텍스트와 사진을 보정하고 고급 양장본으로 재탄생했다.

존 버거와 장 모르는 50년의 우정을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사진과 글 사이의 새로운 대화 형식을 꿈꾸며 협업해 왔다. 이 책은 20세기가 끝나가던 1990년대 말, 노년에 이른 두 거장이 ‘세상의 끝’이라는 주제로 함께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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